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52. 지나치게 이기적이게도, 혹은 이타적이게도 살지 말라
자신이나 타인에게 완전히 예속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둘 다 저속한 폭정과 같다. 자신에게 예속되면, 모든 걸 자기만을 위해 가지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들이 찾을 때도 나를 찾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는 혹은 나를 통해 얻는 이익을 찾는 중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청소년기에는 친구였다. 부모님의 걱정에도 친구가 부르면 만사를 제쳐 두고 집 밖으로 나갔다. 함께 이야기하고, 놀고, 공감대를 나누고 돌아오면 든든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허무한 마음도 남았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함께 보낸 것뿐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다.
회사에 입사한 뒤에는 회사가 중심이 되었다. 돈을 번다는 이유로 우리는 ‘충성’을 배운다. 동료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한다. 상사가 퇴근하며 회식이 있다고 하면, 집에 어린 자녀가 있어도 가족이 당연히 돌봐 줄 것이다. 거래처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며 협업을 이야기한다. 그 자리에서 듣는 이야기를 우리는 정보라고 부른다. 집으로 돌아오면 쌓여 있는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고, 불편한 속은 화장실을 찾게 만든다. 그렇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간과 추억과 돈을 소비하고 마지막에 남은 것은 결국 가족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아픈 엄마가 있고, 늦깎이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암 치료 중이다. 가족이라는 둘레는 때로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의지가 된다. 저녁 일곱 시쯤 산책하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온다. “오늘 뭐 먹어요?”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춘천 닭갈비 포장해 온 거 조리해서 먹자.”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면 양념 냄새가 먼저 반긴다. 부엌에 가보니 닭고기와 양배추, 떡볶이 떡, 고구마가 이미 프라이팬 위에 올라가 있다. 아들은 조용히 묻는다. “양념장 조금 더 넣을까요?” 아무 말 없이 저녁을 준비하는 아들이 있다. 하지만 내일이면 그는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이사를 간다. 집에는 아픈 사람들만 남는다. 그래도 그 선택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가족의 애틋함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된다.
집에 남은 사람들이 아프다고 해서 삶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나와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 된다. 가족구성원 각자가 잠시 이기적인 삶을 살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이타적인 삶만 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 속에는 분명한 깨달음이 있다. 사람마다 깨닫는 시점과 속도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어느 순간 삶을 수정하며 살아간다.
불행과 고통이 찾아올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생각의 깊이는 달라진다. 자신에게 돌아와야 비로소 타인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질문을 던진 뒤에야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족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삶이 우리에게 돌려주는 것은 결국 공평하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