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갚을 수 없을 만큼 과한 선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선을 베푸는 일에도 배움이 필요하다. 조금씩, 자주,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건네야 한다. 지나친 선물은 호의라기보다 부담이 되고, 때로는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건네고 대가를 기대하는 ‘거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절제된 선물은 서로를 편안하게 한다.
가끔 감정에 이끌려 ‘선물하는 사람’이 된다. 고마운 이들에게 커피 쿠폰을 보내고, 치킨과 디저트를 고르고, 과일을 챙긴다. 얼마 전 화이트데이에는 몸이 아픈 친구들에게 소고기를 보냈다. 놀란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놓였다. 그 순간 문득 깨닫는다. 어쩌면 그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정작 집 식탁은 소박했다. 있는 반찬에 계란후라이 하나를 더해 먹었다. 가족끼리는 작은 선물 하나 주고받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대비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부담이 될 수 있는 가격의 선물을 보냈을 때, 대부분은 고맙게 받았다. 한 조카는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화장품을 보내왔다. 혼자 사는 아이를 챙기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에겐 무거운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일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상대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기보다, 내 마음을 앞세우고 있었음을. 마음은 흐름을 따라야 한다. 필요한 때, 부담되지 않는 방식으로 전해질 때 오래 남는다.
유방암 치료를 함께하는 친구에게도 과일과 떡, 소고기를 보냈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가끔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답장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 처음에는 서운함이 스쳤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더 큰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곧바로 답하고, 다시 돌려주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이어지는 주고받음 속에서 통장잔고는 바닥이다. 마음의 여유도 함께 준다.
왜 이렇게까지 애쓰며 ‘빚지지 않으려’ 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 마음을 가족에게는 충분히 쓰지 못하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마음의 바닥에는 몇 가지 이유가 겹쳐 있었다.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마음, 약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더 빨리, 더 많이 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에 안도하는 순간들 속에서, 마음이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받고 싶었던 심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흔들리는 감정을 행동으로 달래고 있었다. 불면과 피로, 아픔 속에서 선물을 건네는 일은 상대를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진정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표현은 더 어려웠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혹은 쌓여 있는 감정들이 오히려 행동을 멈추게 했는지도 모른다.
정리 해 보면, 사랑을 주고 싶었고, 동시에 관계 속에서 안전하고 싶었다. 마음이 괜찮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직은 답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의 방식이 충분하게 편안함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다시 배우려 한다. 선을 베푸는 일도, 사랑을 전하는 일도 조금 덜 애쓰고, 조금 더 가볍게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