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다른 방향에 서 있었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56. 어리석은 자들의 공격에 자기 평판을 내어주지 말라.

무례한 자, 완고한 자, 교만한 자 등 온갖 어리석은 자들을 늘 주의하라. 단, 조금씩 그리고 자주 해야 한다. 또한, 선을 배풀 때 결코 상대가 갚을 수 없을 정도로 과하게 배풀어서는 안된다. 과하게 배푸는 사람은 주는 게 아니라, 뭔가를 판매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어제 결혼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말이 이어진다. 몸은 아프고 힘들다. 마음은 그 자리를 향해 있다. 걷지 못하는 엄마와 연세 많은 어른들의 “죽기 전에 한 번은 봐야지”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수업을 마친 뒤 따로 이동할 계획을 세운다. 엄마를 맡길 사람을 찾는다. 가까이 사는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옷을 입히고 씻기고 함께 모셔갈 수 있는지 묻는다. 답은 늦어지고, 돌아오는 말은 각자의 사정이다. 함께 가는 일은 어렵고 일부만 도와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화를 끊고 나면 마음이 멈춘 듯하다.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는 상황이 낯설다. 필요하면 하겠다는 말은 있지만,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다른 가족들의 연락도 없다. 평생 베풀고 참아온 엄마의 시간이 떠오른다. 지금의 모습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오빠가 온다. 엄마는 안도한다. 기다림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던 마음이 조용히 풀린다. 요청 전에 움직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누군가는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각자의 사정을 먼저 둔다.

결혼식장에서는 형제들이 엄마 주위로 모인다. 손을 잡고 안부를 묻는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의 안부를 묻는 사람은 없다.


조용한 시간 속에서 감정이 가라앉는다. 서운함과 실망이 지나가고, 그 아래 남는 것은 외로움이다. 같은 상황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온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남는다. 해야 할 일을 했고, 마음을 다해 움직였다는 점이다. 아이들 또한 그 모습을 따라 자연스럽게 함께했다. 그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붙잡는다.


이 일을 지나며 알게 된다. 가족이라고 해서 같은 마음, 같은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선택일 수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커진다. 그래서 방식을 바꾼다. 당연함 대신 요청으로 남기고,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둔다. 응답이 없더라도 무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각자의 한계로 이해하려 한다. 감당할 범위를 정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그 이상은 짊어지지 않는다.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외면하지도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을 다했다. 그 사실은 누구의 평가와 상관없이 남는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다만 그 안에서도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스스로 지치지 않게 돌보는 것. 그 두 가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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