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015. 당신이 자주 만나는 현자는 누구인가
도움이 될 만한 현자들을 곁에 두라. 권력자들의 행운은 똑똑하고 용감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 있다. 이들은 모든 무지한 곤경에서 그들을 구해주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현자들은 활용할 줄 아는 이런 특볋란 위대함은 항복한 왕들을 종으로 삼기를 즐기는 티그라네스 왕의 야만적인 취향보다 훨씬 훌륭하다.
내가 자주 만나는 현자는, 따로 머리 희끗한 노승도 아니고, 유명 작가의 문장도 아니다.
그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삶의 방향을 조정한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어느덧 4개월. 약을 바꾸며 두 번이나 의식을 잃고 나서부터는, 전화를 놓치기만 해도 회사 동료들에게서 연락이 빗발친다.
내 건강 상태를 서로 묻고, 누군가 나와 통화라도 되면 그 소식을 주고받는 모양이다.
그들의 그 마음이 고맙다.
아픈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는지, 미처 내가 알지 못했던 온기가 전해진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반대 입장이었다면 그만큼 못했을 것이다. 그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안부 문자 하나 보내는 정도였을 테다.
그런 생각에 더욱 고마운 마음이 깊어진다.
멀리 떨어진 자녀들은, 항암치료 중 가장 자주 떠오르는 존재다.
힘들어도 먼저 안부를 묻는 쪽은 늘 나다.
그러면 “건강 잘 챙기세요”라는 짧은 메시지가 돌아온다.
어디가 아픈지,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묻지는 않는다.
이전엔 서운했지만, 이제는 그마저 다행이다 싶다.
그들은 내가 더 강해지도록 돕고 있다.
표현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것이다. 기대를 내려놓게 하고, 감정을 덜 기대게 하고, 오롯이 스스로를 다독이게 해준다.
형제자매는 내가 아픈 모습을 보며 자신의 건강을 더욱 챙기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여전히 그들 기준이다.
입안이 헐고 미각을 잃은 내게 매운 코다리찜을 권하며, 안 먹는다고 화를 낸다.
“이런 것도 먹어야 기운 나지!” 라며.
나는 그 말이 거칠게 들렸지만, 그 또한 표현 방식일 뿐이다.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다.
부은 다리를 보며 본인의 고통을 덧붙여 말하고, 소금 간을 하지 않았다고 밥이 싱겁다고 하신다.
입맛이 없어 밥을 못 먹는 나에게 “안 먹으니 더 아프지”라고 하신다.
그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될 수도,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안다. 그들 나름의 걱정이다.
나는 그렇게 배우고 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는 ‘현자’다.
처음에는 서운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말들이 이제는 조금씩 다르게 들린다.
그들도 나처럼 아플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 역시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나는 그들에게 바랄 수 없다.
대신, 그들의 반응을 통해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다.
견디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 나는,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현자들’은 오늘도 나를 깨우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