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좋은 지식이 나쁜 의도와 결합하면 광기가 된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016. 좋은 지식이 나쁜 의도와 결합하면 광기가 된다.

좋은 의도가 담긴 지식을 지녀라. 이것은 백발백중 성공을 보장한다. 하지만 좋은 지식이 나쁜 의도와 결합하면 늘 괴물 같은 고통을 낳았다. 나쁜 의도는 완벽함을 해치는 독이 되고, 여기에 지식의 도움이 더해지면 더 교묘하게 해를 끼친다.


좋은 의도가 담긴 지식을 지녀라


며칠 전부터, 수업을 같이 듣는 동네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 번이나 받지 못했다. 내가 다시 전화했을 땐 받지 않았다. 또 연락이 왔지만, 나는 그때도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요즘은 전화 한 통 받는 것도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보통은 문자라도 남기기 마련인데, 그런 흔적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톡을 보냈다.

“무슨 일 있어요?”

잠시 후, 동료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전화를 건 듯했다. 집이 가까우니 수업 내용과 공지사항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책이 필요하면 사물함에서 꺼내 가져다주겠다는 말도 했다. 여섯 권이나 되는 책을 들고 오는 건 무리라고 말했지만, 그 마음만은 고마웠다.


며칠 뒤 월요일,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하필이면 위내시경 예약이 잡힌 날이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료의 말투엔 뭔가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전에 병원에 다녀온 후, 잠시 쉬고 만나기로 했다.


동료는 교수님이 나를 잘 챙기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항암 부작용으로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고, 그 이후로 응급실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약속 시간 오 분 전, 전화가 왔다.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결국 나갈 수 없었다. 동료는 집으로 올라왔다. 지인이 보낸 양파 몇 개와 총무가 정리한 프린트를 들고 있었다. 프린트는 이미 내가 메일로 받은 내용이었다. 과일을 함께 먹으며 학교 생활과 가정사 이야기를 나눴다. 정작 내가 필요한 과목 자료는 없었다.

메일을 확인해 보려 하자, 동료는 USB에 담아 왔다며 출력하러 가겠다고 했다. 십 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미안해서 내가 말렸다. 자꾸 혼자 다녀오겠다는 말에, 결국 “그럼 같이 천천히 가자”고 했다. 밖을 나가본 지 오래였다. 걷는 동안 중심을 잘 못 잡아 자꾸 넘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동료 덕분에 용기를 내서 발을 내디뎠다.


걷는 내내 동료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혼자 있는 내가 심심했을까 봐 계속 이야기해 준다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드디어 복사실에 도착했을 때, 발은 무겁고 몸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동료는 “이게 왜 안 보이지?”를 반복하며 USB를 들여다봤다. 가까이서 모니터를 보니, 정작 찾는 파일은 없었다. 대신 본인이 필요한 자료를 조용히 출력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한참 후, “그 파일은 없네”라는 말을 했다.


메일을 다시 확인해 보니 그 파일은 내게 있었다. 나는 그 자료를 동료 것까지 출력해서 건넸다. 순간, “그거 난 있어”라고 말하고는, 곧 “아, 아니다, 없어”라고 얼버무렸다.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름 햇빛 아래 긴 우산을 지팡이 삼아 터벅터벅 걸었다. 손잡이를 오래 잡고 있자니, 얇아진 손 피부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온몸에 땀이 흘렀고, 숨이 차 죽을 지경이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기분 좋은 산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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