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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Oct 21. 2020

예쁜 엄마, 못생긴 나

각자의 아름다움은 비교 불가이다.

"네가 엄마를 닮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엄마와 함께 다니면 자주 듣던 말이다. 엄마는 쌍꺼풀이 진 눈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셨다. 그런데 난 아빠 판박이다. 아빠를 보면 내가 보이고, 나를 보면 아빠가 보인다. 어렸을 때 난 그게 너무 싫었다. '내가 엄마를 닮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얼굴에 내 눈이 아닌 엄마 눈을 넣어본다. 엄마 닮은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다시 거울을 보면, 아빠 판박이다.


어렸을 때, 난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참 신은 공평하게도 각자에게 재능을 주시고, 각 사람에게 그만이 지닌 매력과 아름다움을 숨겨놓으셨다. 내가 받은 재능은 목소리였다. 어린 시절, 아빠를 닮아 난 노래를 잘했다. 노래 대회를 나가 1등을 거머쥐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때에는 학교 학예회에서 대표로 독창을 했다.  아빠는 학창 시절 굉장히 명민하셨다고 한다. 난 아빠만큼 영리하지는 않지만,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타고난 성실함으로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는 편이었다. 그렇게 아빠의 좋은 점을 많이 닮았지만 그래도 난 아빠를 닮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를 닮은 날 좋아하는 남자를 만났다. 내 넓은 이마를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 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남편을 만났다. 날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난 것은 기적과 같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해 주는 것이 경이로웠다. 내 외모에서 밉게 보이던 부분들이 점점 밉게 보이지 않았다. 거울 속에 날 보니, 참으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비록 엄마를 닮지 않아 세상의 기준으로 예뻐 보이지 않지만, TV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날 사랑해주는 사람으로 인해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가 된다. 실은, 모든 사람이 원래부터 그래 왔는데, 우리는 나의 가치를 인정해 줄 누군가를 외부에서 찾는 것 같다. 내가 예쁜지, 못생긴 지도 외부의 평가에 의해 내 정체성이 되어버린다. 실은, 미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데, 획일화된 미의 기준으로 이 땅의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이 잠식당한 채, 힘들어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조물주는 자연을 창조한 그 경이로운 능력으로 실은 각자에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시선, 그건 사랑의 시선이 아닐까?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날 예쁘다고 해 주셨다. 내 눈에는 하나도 안 예쁜데. 그것은 내가 날 사랑의 시선으로 보지 못했음이고, 엄마는 사랑의 눈으로 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날 사랑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자, 아빠를 더 사랑하게 된다는 점이다. 내 모습 속에서 보이는 아빠, 지금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아빠의 흔적이 나에게 있다. 트로트를 맛깔나게 부르시던 아빠, 음악을 사랑하시던 아빠, 글을 즐겨 쓰시던 아빠, 그런 아빠의 예술성이 나의 피에 흐르고 있다. 난 어찌할 수 없는 아빠의 딸인가 보다. 아빠를 향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예쁘고 못생긴 게 어디 있어? 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본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애씀이 보인다. 인생의 무게로 늘어났을 주름, 그 주름도 그 인생의 흔적이다. 그 속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TV 속 연예인들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것인데 그걸 잊고 있었다. 나중에 내 자녀가 태어난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 아기는 놀랍고, 아름답고, 경이로움 그 자체일 것이다. 각자의 아름다움은 비교 불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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