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감정과 화해하다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다. 이유 없이 우울해진다. 사실 이유야 많겠지만, 이유를 세고 있으면 더 우울해질뿐이다. 우울한 감정이 찾아오면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최대한 경계한다.
"너, 위험한 감정이잖아, 저리 가!"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햇빛을 쬐며 걷는다. 유튜브에서 우울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영상을 찾아본다. 영상에서는 우울증의 원인을 심리적 원인, 신체적 원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무엇보다 호르몬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고 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한 거야. 코티솔 분비를 줄여야 해!'
이것저것 마음먹어 보지만 호르몬이 내 맘대로 조절되는 것은 아니다.
최대한 날 우울하게 하는 환경과 습관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난임이라서 우울한 것일까? 인생이 힘겨워 우울한 것일까?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뇌를 스치기 시작한다. '난임 우울증'을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여러 영상이 나오지만 굳이 클릭해서 보기에는 내 뇌가 이미 너무 피로하다. 에너지가 가라앉았다. 사람들의 사소한 한 마디에도 눈물이 쭉 난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지인들 모임에 갔다. 안부를 묻고,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나의 안부를 묻는 한마디에, 그동안 혼자서 지내면서 우울했던 여러 마음과 아픔을 쏟아놓는다. 부끄러운 이야기들이지만 내 속의 말들을 쏟아놓았더니 후련하다. 아마 내가 이렇게 글을 끄적이는 것도 아픈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아우성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참 감사한 것은 인간은 마음을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고,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보고 반응해 주는 이웃들이 있다는 점이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지인이 건네준 따뜻한 말 한마디, 그 온기에 어두웠던 내 마음에 다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축 처졌던 어깨가 다시 펴진다. '그래, 그분 말대로 난 소중한 사람이야.'
아기가 내 맘대로 찾아오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난임 덕분에 그동안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달려온 내 삶에 쉼이 허락되었다. 꼭 직선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구불구불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지만, 그래야 인생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지인이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누구나가 다 우울해. 우울할 때, 버티면 되는 거야. 버티면 우울하던 감정도 다 지나가."
맞다. 지금은 우울하지만, 또 우울한 감정도 지나간다. 인생에 태어나서 얼마나 많은 우울한 감정 가운데서 허덕였는가? 그러나 그 우울한 감정이 끝나지 않는 터널과 같이 날 괴롭힐 때에도, 빛이 비치는 때가 결국은 오더라. 우울, 슬픔이 있기에 기쁨의 감정이 더욱 빛나는 것 같다. 모든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토닥이며 받아들인다. 그것도 나인 것을. 우울한 감정에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