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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Oct 21. 2020

절망 속에서 한 톨의 희망을 찾아

당신, 참 애썼다


난임 휴직 기간 난 참으로 게으르다. 건강을 위한다는 핑계로 쉬고 있지만, 쉰다고 몸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 또, 하루 더 나이를 먹었다. 그 말은, 점점 가임기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 난임은 참으로 조급함과 기다림의 줄타기이다. 난 나름 모범생이었다. 노력한 만큼 열매를 맛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어느정도는 보상이 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험관 시술은 그렇지 않다. 시험을 볼 때에는 100을 공부하면 그래도 80에서 90점은 나온다. 그런데, 시험관 시술은 100을 애써도, 결과는 0이다. 참으로 허무하다. 중간은 없다. 0일 뿐이다. 그리고, 상한 몸과 마음만 남는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4kg이 빠졌다. 몸이 많이 부대꼈나 보다. 내가 임신이 잘 되지 않자, 지인이 건강원을 추천해 주셨다. 그 건강원에서 날 진단하기를 곧 당뇨병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두둥,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당뇨병이라니. 난 지금 47kg. 단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과식을 하지도 않는데 당뇨일 수도 있다니 충격이었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인터넷에서 '당뇨'에 대한 정보를 폭풍 검색하고 도서관에 가서 당뇨 관련 서적을 여러권 빌려왔다. 미친듯이 정보를 파헤치면 파헤칠 수록 지금 나의 증상과 비슷한 것 같다. 밤에 잠도 잘 못자고 새벽에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깬다. '이거 완전 당뇨 증상인데?' 인터넷에 '마른 당뇨'가 있다고 한다.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가 마른 당뇨를 불러올 수 있다고 한다. 어느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과거의 나를 탓하며 무기력하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후, 내과에 가서 공복 혈당검사를 했다. 그랬더니 혈당수치 91로 정상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당뇨가 아니라고 하셨다. 진작에 이렇게 와서 볼 것을, 혼자서 왜 그리 끙끙 앓았는지. '괜찮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그 날부터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 증상도 없어졌고, 소변색도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타인의 말에 이렇게 좌지우지 된다니 사람이 참 간사하다.


당신, 참 애썼다.

                                 - 정희재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나는 또 감히 안다.

당신이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을 잃어 왔는지를...

당신의 흔들리는 그림자에 내 그림자가 겹쳐졌기에 절로 헤아려졌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갔지만

끝내 가버리던 버스처럼 늘 한 발짝 차이로 우리를 비껴가던 희망들...   


그래도 다시 그 희망을 좇으며 우리 그렇게 살았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 정희재 /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중 –


그래, 나도 내가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실은, '당신, 참 애썼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일까? 난임 속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기 힘든 나의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애 쓰고 있던 날, 알아달라고 공허하게 외쳐본다. 늘, 비껴가는 희망처럼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고, 내 몸만 상했다. 예전에는 난 100살까지는 건강하게 장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나의 수명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바라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세상을 떠나도 힘들지 않을 시기에 내 인생을 졸업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광야같다. 물이 없다. 세상도, 내 마음도, 내 몸 상태도 메말라있다. 메마른 땅에는 생명이 자랄 수 없어서, 황량한 나의 몸에는 아기가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그래도 당뇨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가? 스스로를 달랜다. 수분 없이 쩍쩍 갈라진 마음에 눈물 방울로 수분을 공급해 본다.


앞이 막막하다. 올해는 휴직이지만 내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나이를 먹어 더 아기를 가지기 어려운 몸이 될 터이고, 복직을 하게 될 경우 일에 치일텐데, 앞이 막막하기만 하다. 내일일은 내일 염려하자.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 햇살이 밝다. 햇살 좀 받으며 어두운 내 몸과, 지친 맘에 태양 에너지로 충전 좀 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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