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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Feb 08. 2021

로맨스를 꿈꾸는 현실부부

로맨스는 허구인가?

후배가 연애를 시작했다. 후배의 카톡 사진을 보니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남자 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이 어찌도 알콩달콩 귀여운지?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싶다. 아, 생각해보니 난 나이가 꽤 들었다. 아이가 둘 쯤은 있어야 할 나이인데 아직 아이는 없고, 나이만 먹고 있다.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헛헛하다. 가는 세월을 어찌 붙들 수 있으랴?


남편이 보고 싶지만, 남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시험관 시술을 다시 시작하면서 집 근처가 아닌 친정 근처로 병원을 선택했다. 이미 집 근처 병원에서 3번의 시험관 시술을 진행했고 성공적이지 않았기에, 병원을 바꿔볼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맘 카페를 수소문하던 중, 친정 근처에 좋은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 유명한 병원에서 원장님께서 파견 오셨는데 친절하실 분만 아니라 실력도 좋다고 한다. 한 번에 임신되었다는 후기가 여럿 보이자, 이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기울어졌다. 그렇게 정한 병원은 집에서 운전하면 4시간 걸리는 정도의 거리에 있다. 친정을 거쳐 가면 집에서 친정까지 3시간, 친정에서 병원까지 1시간이 걸린다. 서울에 있는 병원도 고려해 보았지만, 난자 채취같이 힘든 과정에서는 아무래도 친정이 가까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3~4시간 왕복 운전을 해서 병원에 가려니 몸이 너무 지친다. 남편은 요즘 교대근무로 똑같이 피곤해하고 있기에 이동은 내가 해야 한다. 운전해서 다시 집에 가자니, 막막했다. 게다가 시험관 시술 진행 중인데 몸이 무리하면 안 될 것 같다. 결국 친정에 있기로 했는데 남편 생각이 많이 난다. 그런데 남편에게 전화를 하면 TV를 보고 있는지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남편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남편과 놀러도 가고 싶은데,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도 고단하다. 아직 아기가 없는데도 말이다. 남편은 새로 발령 난 부서에서 3교대 근무를 하느라 많이 지쳐있고, 나 또한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팍팍한 현실 가운데에도 로맨스는 필요할 텐데, 아직까지 소녀감성인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휴식에만 몰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밤샘 근무를 하고 왔는데. 남편이 편히 쉬고 건강한 것이 우선순위이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 풋풋한 여고생의 감성이 살아있는데 내 겉모습도, 실제 나이도 이미 30대 후반이다. 남편은 장난껏 나에게 이제 "반(半) 팔십이 되어 가네요."라고 말한다. 그냥 나이를 말해도 될 것을 왜 두배나 해서 더 나이 든 기분으로 만드는 것인지. 게다가 텔레비전에서 삼국지 의형제를 패러디한 광고를 보고는, "우리는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형제의 의"를 약속했다며 "브로맨스, 브로맨스"하며 놀린다. 내가 안아주면, 남편은 와서 내 무릎을 치는 장난을 하거나 뽀뽀를 해주면 뽀뽀를 하는 척하다가 웃으면서 콧김을 내뿜는다.


그래도 장난한다는 것은 컨디션이 괜찮은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가? 나의 로맨스에 대한 갈망을 웹툰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달랜다. 이래서, 엄마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구나. 그 마음을 알겠다. 일상의 팍팍함을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것일지도.


아직 아기가 없는데도 '현실부부'의 냄새가 확 나는데, 아기가 생기면 더 하겠지? 아마 로맨스는 허구인가 보다. 허구이기에 더 달콤해 보이고, 잠깐이기에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가 보다(아닌 부부도 있겠지만. 부럽지만 부러워하지 않기로). 달콤한 케이크는 가끔 먹는 것이고 구수한 청국장은 진득하게 오래 먹는 것처럼, 청국장이 좋은 거지! 몸에도 좋고.


시험관 시술하러 친정에 내려와 남편과 떨어져 지내려니 힘들다. 나의 로맨스를 향한 로망은 장난으로 K.O. 시키지만, 청국장같이 구수한 우리 남편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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