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일기

동생의 글길 따라 시간여행

by 햇살샘

"언니, 너무 힘들어."


어제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듯하다. 동생과 통화를 마치고, 몸에 힘이 풀리고 어지러웠다. 마음에 걱정도 되었고, 이래 저래 생각도 많았다. 그래도 1시간 후, 동생이 카톡이 왔는데 기분이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동생을 토닥이고, 나 자신도 토닥이며 잠에 들었다


오늘 오랜만에 동생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동생이 쓴 글을 읽게 되었다. 이런저런 글을 읽다가 시간은 2019년에서 멈춘다. 동생의 문장 하나. 하나. 뼈마디를 저리듯, 아프게 다가온다. 2019년, 폐암 말기로 아빠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빠와 이별한 지 3개월이다.

저녁이 되면 눈물샘이 터진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동생이 토해내는 울부짖음이 '문장'으로 직조되어 글이 되었다. 그 절규가, 내 마음을 두드렸다. 아빠를 향한 강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흘러간 시간을 동생이 기록해 놓음으로써 그 시간을 살려낸다.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 아빠와의 통화가 아득히 스친다. 아빠는 늘 우리에게 전화하실 때에 "밥은 먹었나? 밥 잘 챙겨 먹어야지. 또 굶은 거 아니가? 내가 몇 번 말해야겠노?" 하시며 밥을 강조하셨다. 그 당시 '알아서 밥 잘 먹을 텐데, 왜 이리 밥에 집착하시지?'란 생각도 들었지만, 그게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난 지금도 핸드폰에서 아빠 번호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차마, 아빠의 존재를 전화기에서도 지울 수가 없다. 아주 가끔씩 핸드폰 아빠 번호를 검색하면, 그렇게도 낯익은 숫자가 나온다. 눈을 감고도 보이는 그 11자리 숫자. 그 숫자 하나하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면, 아빠에게서 전화가 올 것 같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숫자에서 간절히 아빠의 목소리를 더듬는다.


"아빠를 충분히 그리워하는 가족이 남아있으니 아빠의 인생은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는 동생의 일기장 속 문장 속에서, 동생의 마음을 읽는다. 내 마음을 읽는다. 그래, 아빠를 그리워한다는 건, 아빠가 인생을 잘 살았다는 거야.


아직도 아빠의 거친 손, 거친 발이 떠오른다. 돌아가시기 전에 발을 씻겨드렸는데 너무 잘한 것 같다. 각질 어린 발의 감촉이 아직도 내 손에 남아있다. 아빠의 온기가 느껴진다. 진통제로 고통을 이겨내시던 아빠가, 아직도 방에 가면 있을 것만 같다. 인생을 살 때에, 남은 자가 견뎌야 하는 무게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 더욱 애틋하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때가 오겠지. 한계를 지닌 사람으로 결국 한계를 생각하게 한다. 아빠를 천국에 보내면서,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객관적인 명제가 주관적인 명제가 되어버렸다.


아빠에게 결국 손주를 보여드리지 못했다. 난 아직도 난임이다. 난임 병원에서 시술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 묻혀, 아빠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동생이 문장이 아빠와 함께 한 시간과 그때의 마음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아빠가 손주를 보시면 좋아하셨을까? 그러셨겠지. 마치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기쁨과 환희를 느끼셨듯이, 똑같이, 아니면 어쩌면 더 큰 기쁨과 환희를 느끼셨을 텐데...


동생의 일기장을 읽으며, 내 일기 내용이 겹쳐진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2달 전, 무더운 여름. 척추에 암이 전이되어 제대로 걸으시지도 못하시면서 가족들 준다고 시장에 가셔서 무거운 수박을 사 오셨다. 이 수박을 어떻게 가지고 오셨을까. 수박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이 애처롭기도 처음이다. 아빠의 사랑에 수박 사진을 찍고, 일기를 끄적였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수박 사진만 보면, 아빠가 생각나고, 통증을 이기고 수박을 집에까지 가지고 오셨을 아빠가 생각이 난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 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하고 아픈 아버지가 있다.

내 가난하고 아픈 아버지가

이렇게 햇볕이 따갑게 내리쪼이는 날인데, 가족들 준다고 수박을 사 오신다.


동생의 일기에, 잊고 있던 눈물이 흐른다. 아빠의 삶, 엄마의 삶, 동생의 삶, 나의 삶이 안쓰러워 눈물이 흐르다가도, 함께 했을 적 행복했던 시간 시간을 더듬는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우리 가족은 정말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가족사진 속의 아빠를 보며, 아빠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인자한 아빠의 모습 속에서 아빠의 사랑이 떠오른다. 그 사랑에 아팠던 마음이 다시 따스해지면서, 삶을 살아낼 힘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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