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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Jul 01. 2021

나이가 들면서 마주하는 것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감상하며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다.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충분히 고민해 보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나이를 먹어간다. 서른 후반에 들어섰지만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것 같고, 뛰어난 주변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에 마음이 쓰라리기도 하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남길 가죽도 없고 이름도 흔하디 흔한 이름인 데다 이름을 남길만한 위대한 일을 한 것도 하니다. 난, 지극히 평범하디 평범한 범인이요, 거친 인생을 인내하며 살아가는 유한한 인간에 불과하다.


젊었을 때는 화려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화려하다'는 것이 어떤 물질적인 화려함보다 난 학문적인 업적을 동경했다. 공부에 약간의 적성이 있다는 착각(?) 속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직장인이 공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결과 내게 남은 것은 흰머리와 지친 몸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젊어서 고생하면 골병든다'라고 말하곤 한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잘 이끌어 주었다면, ' '내게 남들보다 좀 더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면', '우리 집이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이라는 현실성 없는 가정법 문장을 머릿속에 되뇌다가,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느라 애썼어.'로 급 마무리한다. 난 내게 주어진 재능과 조건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지라도, 어려운 현실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토닥여줄 만한 인생을 산 것이다.


나와 달리, 재능이 넘쳤던 사나이가 있다. 바로 '미켈란젤로'이다. 김태현 선생님의 '교사의 시선'에 나온 피에타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미켈란젤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으로 영감을 준다. 천재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 인간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무게가 있었으며, 어쩌면 예술가였기에 그 무게의 중압감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내가 화려함과 완벽을 추구했던 것처럼, 미켈란젤로 또한 그의 작품에 완벽함을 새기고 싶었나 보다. 그가 24살 때 조각한 피에타를 보면 섬세한 기술에 입이 떡 벌어진다. 옷 주름 하나하나 어찌 그리 정교한지, 게다가 예수의 팔의 혈관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앙상한 갈비뼈와 늘어진 다리는 실제 사람의 것인 마냥 보인다. 무엇보다 마리아의 표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수의 죽음 앞에 슬픔을 절제한 듯한 표정에서 오히려 더 큰 슬픔이 느껴진다.


미켈란젤로 자신도 이 작품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새겨 넣는다. "보라! 이 작품은 나 미켈란젤로가 그렸다!"라고 세상에 외치듯이 말이다. 내 나이 29살 때, 처음 바티칸을 방문하고 베드로 성당에서 마주한 '피에타'의 여운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그는 마땅히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도, 나처럼 이름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미켈란젤로 피에타, 1499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나이가 들수록 정교성과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그의 말년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거칠고 단순한 작품이 많다. 아래 사진의 미켈란젤로의 반디니 피에타는 그가 72세에 조각하기 시작해 팔순 경까지 조각했다고 한다. 예수님과 마리아의 얼굴은 아직 형태도 나오지 않은 듯하다. 예수의 축 늘어진 왼팔과 손목을 관찰해보면, 금이 가 있다. 속설에 의하면 미켈란젤로가 어떤 연유로 화를 이기지 못해 망치로 자신의 작품을 내려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가는 곳이 있다. 바로 니고데모의 얼굴이다. 슬픔과 긍휼이 담긴 따뜻한 표정, 거기에서 연민을 느낀다. 어쩌면 늙어가면서 우리에게 화려함 대신 인생을 향한 연민이 남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조각의 뒤쪽을 살펴보면 니고데모는 왼팔로 마리아를 위로하는 듯하다. 인생을 토닥이는 늙은 예술가의 마음이지 않나 싶다.

미켈란젤로, 반디니 피에타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가 89세, 죽기 이틀 전까지 조각한 피에타를 살펴보자. 그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돈을 벌기 위해 조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24세 때의 화려함은 어디로 가 버리고 거친 형상을 남겨놓은 채, 미완으로 남아있다. 미켈란젤로 노년의 작품은 미완성이 많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미술 작품에 남기고 싶은 것은 어쩌면 완성된 형상이 아닌, 삶의 메시지는 아닌가 싶다.


론다니니 피에타를 살펴보면 마리아가 예수에게 업혀있는 듯 보인다. 마치 어머니를 업고 있는 자식의 모습인 듯하다. 미켈란젤로는 어쩌면 죽음의 문 앞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 것은 아닌가 싶다.



론다니니 피에타, 1550-1564


결국 죽음 앞에, 인생의 유한성 앞에 남는 것은 화려한 업적이라든지, 명예가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인생의 본질이 남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서른 후반, 여전히 갈대같이 흔들리는 인생이며, 매일매일 나이를 먹어가는 가운데 있다.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할 때, 미켈란젤로의 삶을 다시 기억해본다. 몇백 년 전, 이 땅을 먼저 살았던 인생의 선배는 인생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삶으로, 작품으로 나직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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