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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Jun 08. 2021

게으름인가? 쉼인가?

시험관 시술을 하며

시험관 시술 6차에 들어섰다. 난자채취를 하고 3일 동안은 뭔가 하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면 마취 후유증인지 어지러웠고, 배도 아팠다. 마음이 불안했는지 잠을 깊이 자는 것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 속에 여러 번민이 가득찼다.


'이번엔 아기가 생겨야 할텐데'

'아, 난 책도 쓰고 싶은데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면 될까?'

'논문을 써야 하는데, 이렇게 쉬어도 될까?'


이런 여러 생각 가운데 내 자신을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분명, 시험관 시술을 하면 쉬는게 당연한 것인데, 난 왜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시험관 시술을 한 번 만에 성공한 지인이 충고해줬다.

"너 너무 이것 저것 하면 안 돼. 나는 그 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었어."


날 아끼시는 선배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셨다.

"선생님, 이것 저것 하는 시기가 아니에요.  멈추고 임신에 집중하세요."

"선생님, 지금  때인데 조금 걱정되네요. 임신하려면 정말 마음 편하게 있어야 해요."


맞는 말씀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무엇보다 핸드폰으로 연예인들을 검색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럴 시간에 글이라고 하나 더 쓰겠다.' 부터 시작해서 '시간 관리를 잘 해야지!' 등 여러 내면의 엄격한, 날카로운 지적질이 시작되었다.


그 지적질에 숨이 막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 정말 이러고 있어도 괜찮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간에 제대로 쉬지 못하면, 이런 어정쩡한 난임의 시간이 더욱 늘어난다는 것이다. 시간을 아끼려다 시간을 더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쉴려면 제대로 쉬어야 하는데, 왜 이리도 쉬는 것이 어려운지?


이 땅에 태어나 학생때는 학업으로, 직장인이 되어서는 직장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날 채찍질하며 달려왔다. 여전히 그 내면의 무서운 소리는 날 꾸중하고, 일을 시키려고 안달이다. 어쩌면 그 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은 배아이식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또 배가 아파온다. 때로는 욕심을 내려놓을 때가 필요하다. 때로는 내 자신이 게을러 보이더라도 쉼이 필요하다. 그래, 나 쉬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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