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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Jul 03. 2021

배 아픈 평범한 1인

네가 참 예쁘다고

어느덧 올해도 반이 지나갔다. 점점 생물학적 나이가 많아질수록, 가임기가 줄어드는 것을 알기에 조급하다. 어른이 될수록 인격적으로도 더 성숙해지고 실력도 출중해질 줄 알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생물학적 에너지는 급속도로 떨어지는 데에 반하여 연륜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그렇게 어정쩡한 어른인 내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있어 계속 찡찡댄다. 비 오는 날에 아기가 칭얼대듯이, 그렇게 마음속 철부지가 심통을 부린다.


심통은 늘 ‘가정법’에서 시작된다. 이 가정법은 ‘비교’에서 나온다. 우연히 보게 된 SNS의 오랜 동창의 최근 소식, 성공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노력과 애씀에 존경을 표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에 침을 꼴깍 삼킨다. ‘내가 만약 좀 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내가 ~한 재능이 있다면’, ‘내가 그때 ~한 선택을 했더라면.’ ‘내가 좀 더 노력했더라면…’이란 어리석은 생각, 이 생각이 마음에 맴돌 때면, 이 어리석은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리려고 하지만 얘네들은 거머리처럼 내 마음에 달라붙어있다. 내 피를 빨아먹는다.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쓸데없는 생각 같으니라고, 어리석은 생각 같으니라고!’라고 생각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그렇게 유치한 생각도 나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한다.


지나간 과거는 내가 바꿀 수 없고, 현재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고 한다. 내게 나름 통제권이 있는 선택, 이 선택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선택은 늘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연결되어 있기에, 선택이 너무 어렵다. 나름대로 ‘노오-력!’한다고 애써 서른 중후반의 인생을 쉼 없이(?) 달려왔건만, 그 상황에서는 최선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내 선택에 회의가 들 때가 있고, 여전히 ‘게으르다, 게으르다, 게으르다’며 날 꾸짖는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래? 지금도 너무 게을러! “라며 날 손가락질한다. 아기를 가지려면 게을러야 한다던데, 게으르기도 어렵고 부지런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미궁에 빠지는 듯하다.


내 삶의 미궁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시험관 시술로 찾아온 불면증을 이겨내고 싶었다.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과, 몸을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 미라클 모닝‘이었다.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던 어느 날, 새벽 4시에 잠이 깨었다. 평소 같았으면 다시 잠을 청했을 텐데, 억지로 자느니 자지 말고 의미 있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경책도 읽고, 기도도 하고, 아침 산책도 하며 시간을 보내니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아침 6시 이전에 기상하여 기도하고 운동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아침 상쾌한 공기와 새들 노랫소리에 마음이 힐링되는 듯했다. 역시 자연이 주는 위로가 있구나. 그 자연이 주는 위로 속에서 평온함을 찾지만, 그럼에도 ’ 내가 잘 살고 있는가?‘의 질문은 늘 그림자처럼 날 따라다닌다.


무명가수에서 유명가수가 된 ’ 이승윤‘, 자신이 배가 아프다고 표현했는데, 실은 나도 배가 많이 아픈데 배가 아프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왜냐하면, 배가 아픈 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승윤의 그 말이 묘하게 내 마음을 끌었다. ’어, 이 가수 누구지?‘ 하고 유튜브에서 이승윤이 부른 곡을 찾아보다 덕후가 되었다. 이승윤이 무명의 시절 쓴 곡 ’ 달이 참 예쁘다고 ‘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 죽어서 이름을 어딘가 남기기보다, 살아서 그들의 이름을 한번 더 불러볼래.‘ 어쩌면 이승윤도 자신의 곡을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했고, 자신의 곡, 이름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고뇌하며,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씨름하다 쓴 가사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어렸을 적엔, 세상에 뭔가 큰 도움이 되는 일을 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평범한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 버티는 일‘일 때도 많기 때문이다. 거친 삶을 헤쳐나가며 현실을 깨닫고 어른이 되어버렸다. ’ 내가 어렸을 때 꿈꾸던 이상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구나.’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만약 내가 그토록 바랐던 일들을 실제로 해내더라도 과연 내 이름이 얼마나 후세에 남을 것이며, 영향을 줄까? 잠시 왔다 잠시 지나가는 인생인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중, 저녁 식사를 먹으며 마침 유퀴즈에 종양내과 원장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원장님 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빠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원장님은 원장님 아버지께서 폐암이 뼈로 전이되어 고통스러워하셨다는 말씀을 하시며, 그 당시에 진통제를 많이 쓰지 않아 더 힘들어하신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마약진통제를 쓰는데도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잠을 못 주무셨다. 새벽에 1시간마다 통증을 못 이겨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휠체어를 끌고 아빠를 화장실로 모시고 갔다가 다시 침대에 눕히고를 반복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능력이 ‘청각’이라고 한다. 아빠에게 좀 더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함이 마음 아프다. 아빠를 잠 못 자고 간병하는 게 너무 힘들어 한번은 하루 늦게 병원에 갔는데, 그게 너무 미안해 마음에 남는다. 그래도 참 고마운 것은, 아빠는 임종을 앞두시고 엄마와 나, 동생을 기다려주셨다. 심장 박동을 재는 기계가 ‘0’이 되기 전까지 ‘아빠, 사랑해요. 미안해요.’하며 목놓아 외치던 그때가 떠오른다. ‘고마운 아빠, 기다려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은 유한하고 함께하는 시간도 유한한데,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기보다 무언가 이루려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인생의 본질은 무엇일까?’ 여전히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다. ‘ 재능이나 능력,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 그것이 과연 중요할까?’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 글쎄,  이름이 얼마나 오래갈까?  흔하디 흔한 범인(凡人)이고,  이름도 동명이인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본질은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찡찡대고 울어도 따뜻하게 달래주고, ”그래도 괜찮아요.”라고 말해주는 남편, 누구보다  사랑해주시는 엄마, 새벽마다 기도해주시는 시부모님, 같이 마음을 나눌  있는 동생, 함께 인생길을 살아가는 소중한 동료 선생님, 친구들. 뭔가  일을 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소중한 이들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중한 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고마웠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결국, 난 내 능력으로 살아온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 속에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것들을 동경하기보다, 소중한 나의 일상에 다시 감사하게 된다. ‘인생은 은혜로 사는 거야.’


https://youtu.be/w8odpgUODq8

https://youtu.be/fkI01YUU6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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