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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Jul 14. 2021

나는 왜 영어를 공부하는가?

시간 대비 효율성 낮은 이 공부를 붙잡는 이유

'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EBS 영어 프로그램을 듣는다. 2시간가량 영어를 공부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화상영어 프로그램을 40분 참여한다. 저녁에는 영어 스터디 밴드에 공부한 내용을 올린다. 거의 하루에 3~4시간 정도를 영어공부에 투자한다. 그렇다고 영어실력이 쑥쑥 오르는가?............................. 글쎄?


난 토종 한국인이다. 내가 공부할 당시는 6차 교육과정이라 중학교에서 영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시기였다. 어린 시절, 옆집 언니가 elephant를 가르쳐주는데 뭔 꼬부랑 단어가 그리도 많고 발음도 어려운지 영어는 나랑 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씩 이모가 조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준다고, "Stand up! Sit down"을 말할 때, 앉고 서는 정도는 했지만 그다지 반가운 언어는 아니었다.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언어였기 때문이다. 굳이 우리가 잘하는 한국어가 있는데 왜 이모는 엉뚱한 영어를 사용하는 걸까?


그러던 중 초등학교 5학년 때,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습지를 통해 영어를 처음 접하기 시작했다. '돼지가 콧구멍에 연필을 꽂았네. pig, pencil!' 하면서 파닉스를 익히는 식이었다. 처음으로 어떻게 영어가 소리 나는지를 알게 되었고 조금씩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영어학습에서 'critical period'가 있다면 10살~12살 무렵이라고 했는데, 나는 결정적 시기가 끝날 무렵 영어를 시작한 셈이다. 지금은 제2언어 언어학자들 중 많은 학자들이 결정적 시기가 영어를 습득하는 것에 있어 결정적! 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나 발음 영역에서만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나는 영어를 빨리 시작한 편은 아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발음은 참 어렵다. 어린 시절에는 특히 한국식 발음과 다른 영어 발음을 근육에 익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나는 꽤 적극적인 학생이었고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다. 1학년 영어시간, 문장을 읽어볼 사람 발표를 시켰는데 겁도 없이 손을 들었다. 나는 학습지에서 영어를 조금 배웠으니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넘쳤다. 내 머릿속에는 원어민들의 꼬부랑 발음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내 입술에서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말? '테이프' '디스 이즈' 완전 한국식 발음으로 영어를 읽고 말았다. 영어 선생님의 피드백은 다음과 같았다.


"본토 발음이구나!"


처음에 나는 선생님의 '본토'란 단어를 제대로 못 알아듣고 '오토 발음'이라고 이해했다. '오토 발음? 영어가 이상하다는 것인가? 자동으로 된다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다 나중에서야 '본토 발음'이라고 하신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고, 내 발음이 참으로 토종스럽다는 것을 이해했다.


엄마는 아침 6시만 되면 라디오를 켜 두셨다. 덕분에 나는 오성식의 굿모닝팝스를 들으며 영어공부를 했다. 새로운 팝송과 영화 속 표현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아침 일찍 공부한 팝송을 흥얼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다. 그 당시 유행했던 West life의 'My love'라든지, Michael Jackson이 어린 시절 불었던 'Ben', Sixpence None The Richer의 'Kiss me', 타이타닉 OST인 'My heart will go on', 쉬리에 나왔던 'When I dream'를 들으며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 팝송을 통해 영어를 좋아하게 된 영향인지 지금도 나는 팝송이 좋다.


https://youtu.be/-3iBDlWaMLQ



영어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방과 후 수업에서도 영어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발표를 시키셔서 'come'을 발음기호가 아닌 스펠링의 'o'를 보고 '콤'이라고 읽었는데 발음이 촌스럽다고 지적을 받았다.


"콤이 아니라 come [kʌm]이라고 읽어야지! 콤이라고 하면 촌스럽잖아. 따라 해 봐, 컴! 컴!"


나는 나름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발음 곳곳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좀 더 원어민스러운 발음을 하려고 라디오를 들으며 혀를 꼬아가며 연습을 했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 엄마를 졸라서 영어회화학원도 등록했다. 학원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엄마는 가난한 형편에도 딸을 위해 학원비를 마련해 주셨다. 영어 학원에서 처음으로 코가 높은 외국인을 봤다. 학원에서는 책상이 원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학생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원어민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다. 처음으로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경험은 참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난 나만의 재능을 발견했다. 의외로 내가 꽤 사람들을 웃기는 데 재능이 있었다. 내가 영어로 말하는데 사람들이 빵빵 터졌다. '내 영어가 서툴러서 그랬을까? 재밌어서 그랬을까? 표정이나 어투가 과장되어 그랬을까?' 아무튼 학원에서 난 꽤나 재미있는 인물이 되었다.


영어회화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길거리를 이동할 때에 속으로 영어를 말하는 연습을 했다. '이런 말은 영어로 어떻게 말하지?'를 고민했고, 머릿속에는 영어 문장들이 가득했다. 가끔씩은 꿈에서도 영어가 나왔다. 속설에 꿈에서 영어로 말하면 영어 실력이 쑥쑥 오르고 있다던데, '와, 나 영어 성공했나 보다'며 순수하게 좋아했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text도 다 외웠다. 그 당시 나만의 암기 비법(?)을 공개하자면


1. 영어 텍스트를 쭉 읽고 해석한다.

2. 연습장에 텍스트를 옮겨 적을 때, 중요한 단어는 단어를 쓰는 대신 빈칸을 쳐서 필기한다.

3. 교과서를 덮고,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생각해서 쓴다.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경우, 빨간펜으로 바로 답을 쓰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를 덮고 그 단어를 생각해 낼 때까지 반복한다.)

4. 빈칸에 답을 다 써넣을 정도로 능숙해지면 이번에는 빈칸이 대부분인 심화 문제를 만든다.

5. 빈칸에 단어를 써넣으며 심화 문제를 푼다.

6. 심화 문제를 다 맞으면 이번엔 직접 텍스트를 소리 내어 외운다.

7.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영어 교과서 외우기 완료.


중학생이 스스로 생각해 낸 공부 비법치곤 꽤 괜찮았다. 나는 이 비법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보단, 소중히 나만의 비밀처럼 아끼며 열심히 공부했다.(지금이었다면, 좀 더 마음을 넓게 쓰고 친구들에게 비법을 나눠줬을 텐데 그 당시 난 조금 마음이 어렸던 것 같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때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을 참으로 민주적으로 대해 주셨고, 촌 출신인 나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잘해 주셨다. 담임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영어는 참으로 명확하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아직 문법을 능숙하게 익히지는 못한 상태였는데, 담임선생님 덕분에 문법 실력이 쑥쑥 늘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수업을 들은 덕분에 고등학교 3년 내내 영어 공부가 즐거웠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을 보고 난 후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고되었고,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의 도피처는 '영어'였다. 교사 2년 차 때, 쓰디쓴 어려움을 겪고 나서 영어 교담을 신청했고, 감사하게도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같이 co-teaching을 하는 원어민은 영국 신사였다. 영국에서 받은 교사 자격증이 있었고, 아내분도 교사인지라 가르치는 능력이 우수했다. 덕분에 초임교사인 나는 원어민 선생님께 영어와 더불어 많은 것을 배웠고, 무엇보다 영어 수업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영어교사 스터디 모임도 시작하게 되었고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한 내용을 보고서로 써서 전국에서 상도 타게 되었다. 그렇게 영어는 나에게 교사로서 기쁨과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영어를 계속 공부하게 되었고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교사 "3개월 교원대 + 3개월 미국 수업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서 미국 학교 수업도 체험하게 되었다. 내 생전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게 되었고 그동안에는 라디오의 성우나, 원어민 선생님을 통해 수정된 인풋(modified input)만 접하던 내가 생생한 영어를 접하게 되었다. 뭔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미국 학교 첫날,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한국인 선생님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는데 난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끙끙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남부 특유의 발음과 속도에 익숙해져 갔고, 내 영어 실력이 조금씩 늘어간다는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3개월은 길다면 길었지만 짧다면 짧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다.  


영어교육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금은 박사과정까지 졸업했지만, 내 영어는 여전히 서툴다. 박사과정에서는 실제적인 영어를 배운다기보다는 제2언어 습득(second language acquisition)과 교수법에 대해 공부했고 많은 부분 논문을 읽고 쓰는데 시간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 교육 박사를 졸업했다고 말하기 가끔씩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내 영어가 원어민처럼 유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어교육을 전공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능력의 어떠함을 떠나,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금도 영어를 공부한다. 비원어민(?), 아니 한국인이라 영어를 원어민처럼 술술술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원어민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기 어려워하지 않는가? 영어를 습득(acquire) 하기보다 학습(learn)한 쪽인 나이지만, 그래도 영어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길 꿈꾼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쪼개어 영어를 공부한다. 조금씩 더 나아진 실력으로, 좋은 영어수업을 하는 멋진 교사로 살고 싶다.


https://blog.naver.com/prominent10/222400058486

https://youtu.be/-5BhHOo-h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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