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샘 Nov 03. 2021

꼭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할까?

나도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OO는 착하니까."


이 말은 은근히 강압적이다. 착한 행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착해서 양보해야 했고,

착해서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 했고,

착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내 마음 자체가 여리기도 했기에 다툼을 회피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고, 특히 엄마에게 힘이 되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욕심을 내며 열심히 했다. 엄마는 우리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니 밖에서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딜 가나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싶었다. 내가 성공해서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 했다.


공부만큼은 참 열심히 했다. 중학교 때에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치열하게 공부를 했다. TV를 거의 보지 않고 공부만 했기에, 친구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연예인을 잘 몰라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기가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에는 다른 친구들이 놀 때에도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했다. 독서실에서 늦은 시간 공부가 끝나면 새벽 2시경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어두운 밤을 뚫고 집에 갔다. 무서운 마음을 이기고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전거 바퀴를 힘껏 밟으며 가르던 그 차가운 밤공기가 아직도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 내 사진을 보면 삐쩍 마른 나뭇가지 같은 아이가 서 있다.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에 불안을 참아가며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듯싶다.


내 마음의 쉼터는 시골 교회 예배당이었다. 학교에 가기 전에 교회에 들려 잠시 기도하는 것이 하루하루 날 버티게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정서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었던 날 붙들어 준 것은 청소년 사역을 하시던 학생동아리 간사님이셨다. 난 내 고민을 차마 내가 다니는 교회 분들께 털어놓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익명으로 SFC 간사님께 메일을 보냈고, 그 간사님께서는 매번 메일에 답장을 보내시며 날 위해 기도해 주셨다. "존귀한 OOO야, " 하고 시작했던 그 간사님의 메일은 어른이 된 지금도 종종 들어가 읽어본다. 그러면, 불안 가득한 그 시절,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도 따뜻하게 고민을 상담해주고 기도해 주신 간사님의 마음에 눈물이 나곤 한다.


그렇게 난 어느덧 나이를 먹어 대학에 입학했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인이 되었더니, 난 철저한 부진아였다. 난 공부만 할 줄 알았지 인간관계가 쉽지 않았는데 교사는 인간관계의 정점을 찍는 직업 중 하나였다. 아이들 다루느라 정신을 쏙 빼다 보면 학교 업무 기한을 놓쳐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기에, 20대와 30대 중반을 치열하게 살았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미친듯한 속도로 달린 것 같다. 20대 때에는 연구회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피로함이 극에 달하여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키보드를 치며 일했다. 박사과정을 할 때에는 밥을 먹을 시간도 없어서 굶기가 일쑤였고, 학교 일과 학업을 병행했기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스트레스로 위장이 아팠고, 두통과 흉통에 시달렸다. 하루는 대학원 복도에서 배가 너무 아파 주저앉았다.


그런 일상을 반복했더니 몸에 번아웃이 왔다. 몸이 나 좀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데, 난 그 소리를 무시했다. 나에겐 사람들의 인정이 더 중요했다.


무능하게 보이기 싫었다.

좋은 사람으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난 나의 체력과 건강을 사람들의 인정과 맞바꾸었다.


그랬더니 임신이 어려워졌다. 난 또다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부딪힌 것이다.

어쩌면 쉼이 필요했을 나에게 난 '시험관 시술'을 강요했다.

조금 쉬고 시험관 시술을 해도 되었을 텐데, 무엇이 급했는지 힘겨운 시험관 시술을 자진해서 시작했다.


아기를 가져야

남편에게 더 좋은 아내가 될 것 같았고,

시부모님께도 면목이 더 설 것 같았다.


반복되는 시험관 시술의 실패로,

난 조금 많이 지쳤다.


다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해야 함에도, 아직은 엄두를 못 내겠다.

아침마다 일어날 때 가슴에 통증이 있다.

눈 밑 근육이 덜덜 떨린다.


나, 과연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착한 사람으로, 좋은 사람으로, 유능한 사람처럼 보이게 사는 거 너무 지친다.

그냥, 편하게 살래.

작가의 이전글 찬 바람이 불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