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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Nov 22. 2021

내 키보드 소리가 그렇게 클 줄이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작년에 목디스크가 왔다. 그동안 거북목 자세가 문제였는지, 손이 찌릿찌릿한 증상이 계속 신경이 쓰였었다. 그러던 중, 시험관 시술 난자 채취를 하던 날이었다. 채취를 하고 집에 왔는데 목 근육이 이상했다. 내 자세가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무로 된 경추베개로 목에 C자를 만들려고 누워있던 중 뭔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났다. 그러면서 견갑골이 미친 듯이 아팠다. 마치 견갑골에 불이 난 것 같았다. 불현듯 생각이 스쳤다. '목 디스크가 제대로 왔구나.'


밤새 고통받다 아침에 병원을 향했다. 목이 왼쪽으로 아예 돌아가지 않았다. 너무 아파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유명한 한방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양방과 한방 치료를 모두 받았다. 그다음 날, 집에 와서 머리를 감으니 또 심각한 통증이 찾아왔다. 거의 울면서 병원에 갔다. 다행히 사혈을 하고, 부황을 한 후 침과 약침을 맞고 추나치료를 받으니 살 것 같았다. 물리치료를 받은 후 집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정선근 TV를 보며 어떻게 목 건강을 지켜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거기에서 정선근 교수님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목 위생'에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책이나 노트북은 눈높이에 맞춰서 목을 숙이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구입한 것이 바로, 바로, '블루투스 키보드'이다.


따로 컴퓨터 거치대를 사지는 않고, 여러 책을 높이 쌓아 눈높이에 노트북을 올려둔다. 그러면 모니터가 내 눈높이에 맞게 된다. 그러면 내 손 높이에 맞게 블루투스 키보드를 두고 타자를 친다. 코로나19로 공공도서관에 가기가 조심스러워 거의 집에서 노트북과 블루투스 키보드로 이런저런 일을 했다. 그런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위드 코로나가 되면서 도서관에 가서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내가 즐겨 사용하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들고 도서관에 갔다. 여러 책을 쌓아놓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요즘 시간관리에 강박이 있을 만큼, 시간을 아껴 쓰려고 애쓰는 나는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고,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빠져나갔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키보드를 치면 어떻게 해요. 주변에 보세요. 키보드 소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다 나갔잖아요."


한 아저씨가 잔뜩 화가 나서 나를 훈계(?)하셨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처음엔 날 방어했다. "점심시간이라서 사람들이 나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곧 죄송한 마음이 들어 "죄송해요."라고 사과를 드렸다.


아저씨가 자리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시고, 나는 다시 키보드를 살짝살짝 누르며 일을 다시 시작하려 하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살짝 누른 키보드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도서관에 와서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가 와서 나에게 화를   바로 사과해도 좋았을 텐데,  비난하는 말에 방어를 먼저  것도 부끄러웠다.


짐을 주섬주섬 쌌다. 도서관을 나오는데 사람들이 다 나를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부끄러웠다.


난 왜 내 키보드 소리를 못 들었을까?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키보드 소리가 크게 나는지 몰랐을까? 아니면 집에서 혼자 일하는 게 습관이 되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잊었단 말인가?


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고, 예의 바르며 매너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교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도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끼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집에 와서 브런치에 글을 쓰는데, 평소보다 키보드 소리가 확성기에서 나온 듯 커다랗게 들린다. 아저씨 귀에, 도서관에 있는 분들 귀에 얼마나 거슬렸을까?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때도 그랬을 텐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가 내 키보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준 아저씨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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