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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Nov 22. 2021

교사의 눈물이 별빛이 되길

마음이 아프신 선생님을 위한 글

최근 들어 미세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가린 날이 많았다. 시야가 혼탁해서인지 마음도 왠지 우울했다.


'이렇게 지구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데 아이를 낳아도 될까?'


생각의 깔때기처럼 난 아기를 낳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곤 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고 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거기도 미세먼지가 많죠?"

"응, 아침에 출근하는데 앞이 안 보일 정도였어."

"엄마, 이렇게 환경이 오염되는데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하죠?"

"너무 걱정 말자. 하나님께서 다스리잖아."


평소에는 하나님을 자주 언급하시지는 않는데, 오늘은 엄마가 믿음 좋으신 말씀을 하신다. '그래, 세상을 지은 창조주가 있다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해.'로 결론을 내리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더니,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아침에 비가 왔는지 길은 조금 젖어있었다. 하늘을 보니, 오랜만에 새파란 하늘과 몽글몽글한 하얀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만에 보는 맑은 하늘인가! 얼마 만에 보는 눈부신 햇살인가! 마음에 기쁨이 솟는 것 같았다.


오후에 삼 교대 근무를 마친 남편과 산책 겸 운동을 갔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 태양빛을 받아 갈대도 반짝이고 풀들도 반짝였다. 강에는 물결마다 빛 가루가 빛나듯 눈부셨다. 남편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감탄하던 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집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는데 먹구름 뒤로 빛이 보였다. 바로 무지개였다.


[나] "우와, 여보, 저기 봐요. 무지개예요."

[남편] "나 이렇게 무지개를 가까이서는 처음 봐요."


무지개가 반원을 그리며 하늘에 떠있었다. 마치 그림 속 풍경 같았다.


어쩌면 교사의 삶도 날씨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신규 교사 시절을 생각하면 미세먼지 가득한 세상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력하게 느껴졌던 그 시절, 세상도 나도 뿌옇고 탁하게만 보였다. 어쩌면 나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고, 나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암담해 보였던, 교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어 울었던, 가끔은 광풍이 몰아쳤던,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잠에서 깨는 것이 두려웠던 그때가 떠오른다.


"ooo 씨발년."


내 이름 석자 뒤 욕이 떡하니 책상에 쓰여있는 것을 보며, 다른 아이들이 볼까 봐 소심하게 지우개로 그 아이의 책상을 지우던 내가 보인다. 사춘기 아이의 시험지에 '죽고 싶다.'는 긴 글을 보며, '내가 너무 괴로워 죽고 싶은 마음'이 혹시나 아이에게 전염됐나 싶어 죄책감에 날 더욱 거칠게 비난했던 내가 보인다. 왕따 사건으로 인해 찾아온 학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피해자 학생을 감싸며 '다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하는 내가 보인다. 내 학급에서 겪었던 어려운 일을 동료 선생님께 하소연했는데, 그게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 소문이 나서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돌아와 당황해하던 내가 보인다. 인디스쿨 상담실을 들낙이며 괴로운 마음에 익명으로 상담글을 올렸는데, 학교 동료 선생님께서 "선생님, 인디스쿨 상담실에 고민 쓰셨죠?"라고 말씀하셔서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이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6학년의 거칠고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 운동부 아이들까지 맡기에 난 아직 경험이 없었고, 지혜가 없었다. 모든 상황이 버거웠다.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스물다섯, 교사 2년차, 아직은 세상 물정 모르던 나에게 교사 입문기는 너무나도 시리기만 했다. 교직에서 행복한 기억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눈물바람으로 시작한 교직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교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했던 터라 교사를 그만둘  없었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 구실 하며 살고 싶었는데, 사람 구실은커녕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 되다니... 학창 시절, 조금만 노력해도 칭찬받고 인정받던 내가 학교에 오니 무능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공부를 계속했어야 했는데,  단점만 유독 부각되는 교사를   하게  것일까?


그 당시 동료 선생님들께 들었던 말...

"평소에는 차분하다가 흥분하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서 이상해요." "네면 네, 아니요면 아니요가 분명해야 하는데 선생님은 주관이 없어요." "수신 제국 치국평천하, 들어봤죠? 선생님은 수신(隨身)이 안 되어 있어요." "꼴찌 선생님이에요."...


학생에게 들었던 말, 욕...

"선생님이 약 먹었나 봐. 갑자기 화 내."

칠판을 보고 판서하는 동안 남학생들이 내게 날린 손가락 욕(FU** ***)

씨발년.


생전 듣지 못했던 욕을 한 해에 다 몰아서 들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교장선생님께서 이 말을 해 주셨다.


"박 선생은 글을 잘 쓰는 것 같아. 책을 많이 읽고, 학교에서 경험한 일들을 책으로 써 봐." 그 당시 한 간호사분께서 쓰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그 책을 언급하시며 나에게 책을 쓰라고 하셨다.


난 아직도 내가 글을 잘 쓰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내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이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약 계속 성공만을 경험한 교사였다면 어떻게 동료 선생님의 아픔과 눈물을 공감할 수 있었겠는가? 수많은 시행착오와 아픔 속에서 같이 울며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아직도 내 인생을 재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때 나에게 아픔을 준 말들을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글을 쓰니 고구마 줄기에 달린 고구마가 나오듯 줄줄이 나오니 말이다. 무의식 속에 그 말들은 아직도 일렁이며 날 괴롭혔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을 다 용서했을까? 무엇보다 그 시절 무력했던 날 용서했을까?


그러나 오늘 날씨를 기억해본다. 때로는 흐리고 혼탁하고,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지개는 뜬다.


어쩌면 비바람이 있기에 날씨는 맑아졌고, 찬란한 햇빛도 볼 수 있고, 감사하게도 무지개 같은 황홀한 순간도 경험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비바람, 아직도 해석하기 쉽지 않지만, 그 순간이 있었기에 내가 있다.


그래서 더욱 겸손을 배웠다. 마음이 아픈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로운 학급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마음 아픈 선생님과 같이 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울고 계신 선생님이 계신다면, 선생님의 눈물이 별빛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비춰주길 기도한다.

비바람이 그치면, 무지개처럼 따스한 평화가 찾아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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