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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Nov 27. 2021

시험관 시술 7차 시작!

아픈 몸을 토닥이다

자연임신에 대한 기대감이 무색하게도, 며칠 전부터 생리 전 증후군이 느껴졌다. 왼쪽 다리가 찌릿찌릿, 배가 싸한 느낌. 이런 신체의 감각은 왠지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곧 닥칠 참기 힘든 생리통의 예고탄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빨간 피가 비쳤다.


생리 시작 = 자연임신 실패 = 생리통이 곧 닥칠 신호 = 시험관 시술 시작


이러한 등식 관계를 몇 초 만에 무의식적으로 계산해버리고는… 진통제를 꿀꺽 삼킨다. 고통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내 몸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진통제가 몸에 안 좋다지만, 진통제를 먹지 않고 통증을 견디는 것은 고문이다.


남편이 같이 집에 있는 날이라 남편이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두꺼운 패딩을 챙겨주는 남편이 고맙다. 남편이 기도해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힘을 내어 생리통이 가장 심한 생리 첫날, 3시간이 걸리는 친정을 향해 출발했다.


경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의자를 따뜻하게 해 주는 차가 고맙다. 감사하게 친정까지 도착했다. 낯익은 풍경,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곳.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대학교 공부하시느라 책이 식탁과 침대 곳곳에 펴져 있다. 엄마의 애씀이 전해진다. 지친 몸에 차가운 밤공기가 아직 맴돌아 덜덜 떨며 저녁밥을 먹었다. 어린 시절 일기를 꺼내어 읽어보고 잠깐 감상에 잠기다가 글쓰기 모임을 할 때 엄마가 도착하셨다. 엄마는 다시 외갓집에 김장을 하러 가시고, 나는 글쓰기 모임을 마무리했다.


진통제의 약발이 떨어졌는지, 다시금 몸에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너무 추웠고, 배는 너무 아팠다. 그래도 고마운 보일러는 열일을 해서 방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나는 진통제를 꿀꺽 삼키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글을 쓰는 오늘), 일어나 자기경영노트 모임에 참여하고 아침을 주섬주섬 챙겨 먹는다. 엄마가 출근하기 전 해 두신 따끈한 밥인데도, 목에서 잘 넘어가지 않는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든 안 좋은 버릇, 밥을 잘 못 먹는 것이다. “먹어야 돼”하며 나를 잘 구슬리며 밥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먹고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한 후, 급히 짐을 챙겨 대구로 향한다.


대구 가는 길… 다시 생리통이 찾아왔다. 아파서 눈물이 나서 기도를 했다. 통증이 제발 괜찮아지길… 그렇다고 바로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멎어 드는 통증에 감사하다. 한 달에 한 번만 시달리면 되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 통증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니 얼마나 감사한가!


어느덧 대구에 들어가는 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대구 경북대 병원을 갈 때 길이다.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는 굳이 내가 태워다 드린다고 했는데도 싫다시며 버스를 타고 가셨지. 난 그런 아빠가 안쓰러워 아빠 뒤를 따라 차를 몰고 대구로 갔었지. 방사선 치료를 받던 아빠와 대기실에 앉아 이야기 나누던 시간, 그 온기, 아빠의 표정,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움과 슬픔이 몰려와 눈물방울이 되어 흐른다.


괜스레 찬양을 불러본다. 내 마음을 달래 본다. 그립고,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정신없이 많아지는 차량에 긴장감이 확 든다. 11월 병원이전으로 초행길이다. 낯선 길이라 긴장이 된다. 7차선에 펼쳐진 넓은 도로에 차가 왜 이리 많은지… 코로나만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은 길이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 대기인수가 무려 20명! 기다리다 옆에 카페에 가서 토마토 주스 한 잔을 시켰다. 소파에 머리를 대며, ‘이제 좀 쉬자’ 하는데 053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뜬다. 병원이다.


“박선영 님, 초음파실로 오세요.”


여유 부리며 마시려던 토마토 주스를 거의 2분 만에 원샷으로 들이킨다. 그리고 초음파실로 향한다. 초음파실에서 한 간호사분께서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신다.


거의 5개월 만이니 오랜만이다. 멋쩍게 과장해서 “하하하, 네” 하고 대답하고는 기다린다. 초음파를 봐주시는 분께서 초음파를 보시는데, 원장님보다는 뻑뻑하고 아팠다. 숨을 후후 내쉬며 긴장을 풀고 난포가 몇 개 보이냐고 여쭤보니, 오른쪽에 2개, 왼쪽에 1~2개가 보인다고 하신다.


더 많으면 좋겠지만, 난소 기능 저하 여성인 난 이 정도에도 감사해야 한다. 지금은 원장실 앞에 기다리고 있다. 난포가 그래도 보이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매 순간 희망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리통이 사라지고, 컨디션이 좋아지며 뭔가 생각이 맑아진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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