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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Dec 01. 2021

현실 자각 타임

과배란 주사를 맞으며

시험관 시술 7차가 진행 중이다. 오늘부터 과배란 주사를 맞는다. 아침 꿈에 과배란 주사를 친정에 두고 목포에 간 꿈을 꾼다. 다시 3시간 운전해서 주사를 가지러 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처방전을 FAX로 받아 근처 병원에서 주사를 처방받아야 하나 하며 발을 동동거리다 잠에서 깨었다.


일어나 보니 친정이다. 주사도 다 옆에 있다. 아, 다행이고 감사하다. 주사를 제시간에 맞아야 한다는 긴장감에 그런 꿈을 꿨나 보다. 일어나서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정신을 차린다. 알람이 울린다. 주사 맞을 시간을 알리는 "또로롱 또로롱" 귀에 친숙한 소리다. 알람을 끈다. 주사기를 준비하고 냉장고에 보관해 둔 호르몬제를 꺼낸다.


5개월 만에 맞는 주사이라 낯설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하다. 주사기 용액을 용량에 맞게 조제하여 배에 주삿바늘을 들이미는데 잘 들어가지 않는다. 다른 위치를 잡고 다시 주사기 바늘을 밀어 넣는다. 따끔하면서 주삿바늘이 들어간다. 호르몬 용액을 넣는데, 배가 뚱하니 아프다. 오늘 맞을 주사는 2대, 감사하게도 무사히 완료했다. 처음에 주사 맞을 때는 피나고, 멍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배테랑이 되었다.


주사를 맞으며 불안감이 몰려온다. 이번에 시험관 시술이 제대로 안 되면 어떻게 하지? 내년에 복직인데 복직하고 시험관 시술을 계속할 수 있을까? 병원도 멀어서 옮겨야 할 텐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시험관 시술을 해낼 수 있을까? 여러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 물어봤자 아무 영양가 없는 질문에 도착한다. "나는 어쩌다 난임이 되었을까?"


박사 공부를 하지 않고 바로 아기를 가졌다면?

결혼했을 때 바로 아기를 가졌다면?

건강을 더 잘 돌보았다면?


여러 질문 앞에 난 답이 없다. 과거를 탓할 수가 없는데, 현재도 완벽하게 잘 살아내지 못하는 나이다. 어떻게 과거의 나를 탓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로 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 10시 이전에 잠들기

2. 햇빛 날 때, 운동하기

3. 밥 잘 먹기

4. 스트레스 줄이기

5. 일 벌이지 않기


창밖을 보니 눈이 온다. 따뜻한 햇살에 작은 눈가루가 바람에 날린다.지금도 살아있다. 숨을 쉬고 있고, 온전한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고 있다. 원하면 밖에 나가 걸을  있는 건강한  다리가 있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결핍에서 눈을 돌려, 감사한 것을 생각해본다.

그래, 모든 것이 감사하다.

인생은 선물이고,

난, 거저 주어진 이 모든 것들을 값없이 누리고 있다.

결핍을 보지 말고, 감사한 것을 보자.


시험관 시술이 힘들지만,

이 또한 견딜만하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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