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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Dec 31. 2021

지극히 평범한

수많은 실패 속에서

‘올 한 해 난 뭘 했을까?’

2022년을 하루 앞두고 병원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내 앞으로 19명의 환자가 대기 중이다. 난 20번째 환자인가 보다. 병원 어플에 ‘도착 확인’ 버튼을 누르니 대기자가 20명으로 뜬다.


많은 사람들에 숨이 막혀 병원 옆 카페에 들어왔다. 나에게 줄 수 있는 사치이다. 아니, 선물이다. 좀처럼 카페에 가지 않는다. 휴직이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음이요, 전셋집을 살아가는 무주택자로서 절약을 미덕으로 삼아야 함이다. 그럼에도, 1시간 넘게 운전하고 병원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쉼을 찾고 싶다.


카페에 하릴없이 앉아있다. 가방 속에 가져온 두 권의 책은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두고, 핸드폰으로 브런치에 들어와 가볍고도 무거운 생각을 끄적인다.


‘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나?’


한 해를 돌아봤을 때 후회하기 싫어 몸부림쳤다. 12월에 들어와서 시험관 시술의 후유증을 참아가며 새벽 기상을 하고, 새벽기도를 다녔다. 아침에 영어 공부를 하고, 점심식사 후 운동을 하고 논문을 썼다. 책을 쓴다며 원고와 씨름했다. 가끔씩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끄적였다. 그런데 과연 진전이 있나?


‘진전이 있나?’


발전이 있나? 글쎄 잘 모르겠다.

숫자로 보면 참으로 초라하다.


브런치 구독자도 많지 않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유튜브도 구독자도, 조회수도 정체되어 있다.


그럼 전문성은 잘 키우고 있나?

논문은 복잡한 숫자를 다루며 SPSS를 돌리고 있지만 두통이 지끈거린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책을 쓴다더니 원고는 챕터 7에서 멈춰있다.


내가 시간관리가 부족해서일까?

내가 집중력이 부족해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를 찾아 다람쥐 쳇바퀴를 뱅뱅 돈다.


“선영아, 너무 힘들게 그렇게 하지 마. 네 건강이 중요해.”


엄마는 내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씨름한다고 걱정하신다. 그런데 앉아서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우선순위를 잘 세워야지. 지금 우선순위는 건강과 임신이야.”


엄마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맞아요, 엄마. 이제 욕심 내려놓고, 편하게 지낼게요.”


피곤으로 입술에 물집이 잡혔다. 호르몬제로 몸이 힘들 때도 있다. 잠이 들 때 가슴이 쥐어짜듯 아프다. 내 맘이 아파서 심장도 아픈 것일까? 그런 나에게 난 너무 혹독하다.


성과를 내라고,

성공하라고,

능력을 더 키우라고,

힘을 키워야만 한다고,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지금 난 날 채찍질할 때가 아니야.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다 살아가.


지극히 평범하다. 뭐 하다 떡하니 잘난 것도 없다.

그러면 또 뭐 어떤가?


내가 만든 완벽이라는 허상,

성공이라는 허상에 날 숨 막히게 몰아붙이는 폭력을 멈춘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네가 자리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네가 아기 가지려고 힘든 시간을 버텨준 것만으로도,

불완전한 인격 가운데에서도 선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 것만으로도,

자꾸 넘어져도 털고 일어선 것만으로도,

지금 살아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난 나에게 고맙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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