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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Jan 17. 2022

난 너 없이는 못 산다

세상을 사는 게 두려울 때

새벽 2시경,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얕은 잠에서 난 계속 임신테스트기(임테기)를 확인한다. 두줄이다. 다시 임테기를 한다. 선명한 두줄이 보인다. 다시 임테기를 본다. 선명한 두줄이다. 그렇게 임테기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다 잠에서 깨었다. 새벽 5시경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사 두었던 임테기를 꺼내어 화장실로 향한다. 임테기의 시약이 번진다.

'제발 두 줄이길... 제발 연한 선이 보이길.'

기다리는 시간이 꼭 천년같이 느껴진다. 몇 분 지나고 임테기를 확인해 보니 선은 하나밖에 보이질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임테기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인터넷에 '임테기는 실패인데 피검사는 합격'이란 검색어를 친다. 혹시나 임테기에 실패했어도 합격한 사람들이 꽤 많기를 바라면서 폭풍 검색을 한다. 드문 드문 그런 사례가 있다. 임테기가 시간이 지나서 두 줄이 보이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다시 쓰레기통에 가서 버렸던 임테기를 꺼내어 줄을 확인한다. 매직아이처럼 유심히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선은 한 줄 밖에 없다.


주섬 주섬 옷을 꺼내 입고 교회로 향한다. 예배당에서 의자에 앉자마자 눈물이 뚝, 뚝, 마스크 위로 흘러내린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슬픔이 심장을 점령한 듯하다.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정신을 붙들고 목사님 말씀을 듣는데, 자꾸만 눈물이 난다.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웃으며 밥을 챙겨 먹는다. 엄마는 요양보호 일하시러, 나는 병원으로 출근을 한다.


병원에 도착하여 피를 뽑고 간호사분께 갔다.

"피검사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임신테스트기는 해 보셨어요?"

"네, 비임신으로 나왔어요."

"언제 해 보셨어요?"

"오늘 아침에요."


피검사까지는 2시간이 걸린다고 하셔서 병원 밖에 바람을 쐬러 나가려는데 간호사분께서 달려오셔서 날 부르신다.

"대기가 많지 않으니 원장님 보시게 기다리세요."


집에서 챙겨 온 '마지막 몰입'책을 꺼내 읽는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과는 무관한 자기 계발서의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 병원의 느끼는 마음의 색깔, 그리고 책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색깔이 물과 기름처럼 어긋난다. 그렇게 기다리다 내 순서가 되어 원장님을 뵈러 들어갔다.


"이번에 많이 기대를 했는데 착상이 안 되었네요. 배아도 좋은 배아였는데"

"네."

다시 배아 사진을 보시며 확인하시는데, 마음이 울컥한다.


"왜 착상이 안 될까?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착상이 안 되네요. 원인이 뭘까? 다음 달 생리하시면 다시 바로 오세요. 난자 채취해서 신선 이식도 해 보고, 지난번에 했던 자궁경도 다시 해 봅시다."

"제가 3월에 복직을 해서요."

"아직 2월에 시간 있네, 해 봅시다."


참 좋으신 원장님인데, 원장님의 열정이 오늘은 버겁다. 원장님 표정도 마냥 환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이 잘 되어 칭찬이 자자한 원장님인데, 왜 난 계속 실패를 하는 것일까?


그래도 피검사 결과가 안 나왔기에 마지막 희망을 안고 병원 옆 카페에 들어가 토마토 주스를 주문한다.

"띠리링"

백신 미접종자를 알리는 벨이 울린다. 임신 준비를 하느라 백신을 맞지 않았고, 왠지 사회에서 왕따가 된 듯한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무안함을 감추며, 진동벨을 받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시 '마지막 몰입'책을 꺼낸다. 도저히 몰입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학습하는 방법이나 성공, 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찌 머리에 들어오겠는가? 핸드폰에서 다시 검색한다.


'임테기 실패해도 성공한 케이스'

'임테기 실패해도 피검사 통과'

'임테기 실패해도 임신 성공'


싱숭생숭한 마음을 붙들고 조그마한 핸드폰 화면을 붙들고 있는 게 어지러워 핸드폰을 내려둔다. 시험관 시술을 하시는 지인분께 카톡들 보낸다. 지인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나] "복직하시고도 시험관 하시나요?"

[지인분] "네, 저는 하고 있어요."

[나] "힘들지 않으세요?"

[지인분] "힘들죠(웃으며). 호르몬의 노예예요. 저는 계속 유산이 되어 이번에 pgs 검사를 해서 이식해 보자고 하셨어요. 올해까지는 계속하려고 해요."

[나] "아, 그러시군요."

[지인분] "복직해도, 오히려 휴직할 때 기분이 다운되는 것보다 좋은 점도 있어요. 최선을 다하지만 무리하지는 말아요, 우리. 이미 충분해요."


내 마음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시험관 실패의 현실이 수용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올해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현실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감정이 차분해지자 다시 '완전한 몰입'책을 꺼낸다. 그래서 조금은 몰입하며 책을 읽는다. 어느덧 11시 30분 경이 가까워온다. 병원에서 전화가 올 시간이다. 이 책에서는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디지털 주의산만을 경계하는데, 나는 11시 30분이 가까워오자 전화가 올까 안 올까 주의산만의 극치를 달린다. 책을 읽다가도 핸드폰을 수십 번 확인한다. 11시 40분경, 진동이 울린다. 얼른 전화를 받는다.


"피검사 결과가 나왔나요?"

"네, 비임신으로 나왔네요."

"수치가 얼마인가요?"

"수치가 안 나왔어요."

"아, 그럼 착상이 안 된 거네요."

"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무덤덤했다. 아침에 했던 임테기가 맞았구나. 임테기에 적힌 '100% 정확도'란 문구가 틀리길 간절히 바랬지만, 임테기는 정확했다. 카페를 나와 주차장으로 향한다. 눈물이 나올 듯 말듯하다.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나오는데 눈물이 흐른다. 유튜브에 인생 이야기를 하는 채널을 소리로만 들으며 운전하는데, 괜스레 그분의 이야기가 슬퍼 나도 펑펑 운다. 집이 가까워오자 엄마에게 운 것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아 감정을 추스른다. 그럼에도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아, 과연 내가 가정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내가 아이를 못 낳으면, 남편과 이혼하자고 하고, 남편은 젊은 여자랑 결혼하라고 할까?'

'나는 죽어버릴까?'


생각이 금기시된 생각에서 멈추자, 그건 아니라고 내 마음을 달랜다.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아는 언니와 통화를 한다.


"요즘은 아기 안 낳는 사람도 많아. 네가 있어야 아기도 있지. 시험관 시술 이제 더 하지 마."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언니가 고맙다. 언니와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다. 집에 와서 세수를 한다. 찬물로 세수를 해서 부은 얼굴을 가라앉힌다. 엄마가 같이 마음 아파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어느덧 엄마 퇴근시간이 되었다. 엄마께는 내가 주차장에서 전화드려 내가 임신이 안 된 것을 알고 계셨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날 껴안아주시며 말씀하신다.


"  없이는 산다.”


엄마는 내 마음을 아시는 것일까? 엄마는 왜 날 보자마자 그 말씀을 하셨을까? 그런데 그 말이 내 마음을 녹인다. '그래, 내가 살아야지. 엄마 때문에라도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네가 있어야 아기도 있는 거야. 이제 시험관 시술하지 말자. 너 고생하는 거 보니까 나도 너무 힘들더라. 요즘은 결혼 안 한 사람도 많고, 아기 없는 사람도 많아. 기다리다 보면, 자연임신될 거야. 예상치 못한 때에, 깜짝 선물이 찾아올 거야."

"엄마, 나 이제 시험관 시술 안 해도 되지?"

"그래, 너 지켜보는 나도 너무 힘들어서 입도 지고, 눈에 실핏줄도 터졌잖아. 건강이 제일 중요해. 복직하면 네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자. 사람들 눈치도 보지 말고."


엄마가 시험관 시술하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된다. 시험관 시술 8회 차, 더 시험관 시술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2년 난임 휴직 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휴직 목적에 맞게 시험관 시술을 하며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다. 그럼에도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마음에 시간이 지나면 고통을 잊고 또다시 시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나 자신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저녁이 되어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여보, 나 시험관 시술 너무 힘들었어. 이제 안 하고 싶어."

"우선 쉬어요.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란 말이 마냥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나도 안다.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고통을 잊으면 나도 다시 시도하려고 할 것이란 것을. 그렇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시험관 시술 안 해도 돼요. 당신이 더 소중해요."인데, 마음이 서럽기만 하다. 대화의 주제가 빙빙 돈다. 나는 계속 시험관 시술이 얼마나 힘든지를 강조한다.


"자연임신으로 충분히 가능해요. 나는 나팔관이 다 막힌 것도 아니라서."

"그래요, 자연임신해 보고. 안 되면 둘이 여행하며 다니면 되지."


'둘이 여행하며 다니면 되지, '란 말에서 마음이 먹먹하다. 남편이 간절히 바라는 아기를 낳아주지 못한다는 마음에 또다시 속상함이 밀려온다. 자연임신으로 임신이 가능하다고 간절히 믿고 싶다.


"자연임신으로 임신이 될 거야."


남편과 전화를 마무리하고 잠을 청한다. 호르몬 약을 끊었지만,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다. 내가 유독 시험관 시술이 버거운 것일까? 인터넷에 찾아보면 굳세게 잘해나가는 사람들도 많던데. 한편으로는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잠이 솔솔 온다. 멜라토닌을 먹어야만 밤에 잠을 잘 수 있었다. 프로기노바를 먹으면서 다시 찾아온 불면증으로 계속 힘들었는데, 호르몬을 끊으니 9시도 되기 전에 잠에 들었다. 호르몬에서 해방되어, 편안히 잠에 들었다.


이번 차수에 참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셨다. 엄마, 시부모님, 남편 그리고 지인들, 인터넷에서 만난 소중한 문우들까지. 때가 지금이 아닌가 보다. 사랑하는 이들의 기도가 언젠가는 아름답게 이루어져 선물로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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