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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Feb 03. 2022

새 학기, 나답게 살기

복직을 앞두고

좋은 교사, 좋은 수업


  2년의 휴직 후 복직 서류를 냈다. 다시 학교 현장에 간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된다. 휴직 동안 교사의 삶에서 잠시 떠나 있었는데, 다시 교사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려니 낯설다. 긴 공백을 딛고 학교 현장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어떤 교사로 살고 싶은가?,’ ‘내가 원하는 수업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애써 피해왔다. 일을 쉬는 기간에는 ‘교사 OOO’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 OOO’으로 살고 싶었다. 이제는 다시 교사로서 고민해야 하는 때가 왔다. 교사의 정체성, 교사의 신념은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다. 교사의 가치관은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의사결정을 하는 데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내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머물러본다.


  ‘난 어떤 교사인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의 모습은 어떠한가?’란 질문은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데 뒤엉킨 복잡한 개념이다. 내가 학생 때에 봐 왔던 선생님들의 모습, 내가 존경하는 동료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좋은 교사’의 모델을 찾았다. 책에서 말하는 ‘좋은 교사’에 관한 담론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복잡한 학자의 언어나, 다른 선생님들의 말이 아닌, 내 언어로 ‘좋은 교사’를 정의한다면 어떤 정의가 나올까?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사랑’과 ‘소통’이다. 그렇다면 좋은 교사는 ‘학생들을 사랑하고 소통하는 교사’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볼 수 있겠다.


  ‘좋은 교사’를 고민하다 보면 ‘수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교사는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나며 교사의 수업은 교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 내가 원하는 수업은 어떤 모습일까?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수업,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며 성장하는 수업’으로 묘사해 본다. 잠시 눈을 감고 내가 꿈꾸는 수업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새 학기 시작, 교사로서의 지향점을 재정비해보자.



※ 선생님들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핵심 가치를 찾아 O표 해 보세요.

(감사, 감성, 공감, 공동체, 공정, 공헌, 관계, 관용, 균형, 긍정, 도전, 다양성, 목표, 배려, 배움, 변화, 봉사, 사랑, 상호작용, 성공, 성실, 성취, 성장, 소통, 신뢰, 아름다움, 안전, 안정, 연결, 열정, 예의, 용기, 용서, 유머, 일관성, 인내, 자기표현, 자존감, 자유, 자율, 전문성, 정직, 조화, 존중, 즐거움, 지식, 책임, 충성, 헌신, 창의성, 탁월, 평화, 행복, 혁신, 협동, 협력, 호기심, 효율 …)

∎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나요?     

∎ 내가 꿈꾸는 수업은 어떤 모습인가요?   

(참고: 수업 나눔 워크북, 185쪽)  




교육 철학, 수업 신념


신규 시절이 기억난다. ‘나만의 색깔로 수업하기’라는 연수에서 교사는 자신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와닿았다. 그렇지만 난 그 당시, 나의 교육 철학을 찾기가 어려웠다. 인디스쿨에서 여러 자료를 내려받아 활용하는 데 급급했다. 소규모 학교에서 여러 업무를 맡게 되어, 업무 처리만으로도 버거워 수업을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때로는 시간이 부족해서 수업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수업을 하다가 내 수업 의도와 맞지 않아 난감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내 수업과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딱히 그럴싸한 교육 철학이 없었고, 수업에도 자신이 없던 시절, ‘난 내 색깔이 없나 봐. 나는 교육에 관한 생각이 도대체 있기는 한 걸까?’ 하면서 자책했다. 영원히 난 그런 상태에 머무를 것만 같았다. 다행히 교육 경력이 쌓이고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조금씩 나만의 교육 철학과 수업 신념이 자라기 시작했다.


수업코칭연구소에서 수업 나눔을 하면서 참 반가웠던 질문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배움은 무엇인가요?,’ ‘교과에 대한 선생님의 신념은 무엇인가요?’였다. 교육과정과 지도서에 나오는 문장들을 나열하는 대신, 내 수업 신념을 말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답이 정해지지 않았고, 내 마음, 내 철학을 말하면 되었다. 수업 친구들은 내 말에 귀 기울여주었다. 그래서 편안하게 내 교육 철학이 무엇인지, 수업 신념이 무엇인지 차분히 고민하며 탐색할 수 있었다.


수업 친구들의 도움으로 내 수업을 성찰해보니, 나는 학생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서 수업 속에서 학생들을 많이 격려하는 편임을 깨달았다. 또한, 학생들의 질문에 관해 대화하다가 진도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 힘들었는데, 학생들이 질문을 통해 지식을 구성해가길 바라는 신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업 나눔에서는 수업자의 교육 철학, 수업 신념을 주의 깊게 살핀다. 교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수업을 하는 교육의 주체(agency)이기 때문이다. 수업자의 신념은 수업 실천으로 이어지며 의사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수업 나눔을 할 때, 수업자의 신념을 충분히 듣는다.


그럼 교사의 신념은 도대체 무엇일까? Pajares(1992, p.325)는 교사 신념을 ‘행동을 결정하고 지식과 정보를 조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라고 설명한다. 교사의 신념은 교사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치며,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학업 성취도와도 관련이 깊다고 한다.


예를 들어 최 선생님은 수업에서 관계를 중시했다. 수업 영상을 관찰할 때, 선생님의 신념이 수업에서도 잘 드러났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의견을 경청하고 배움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는지를 세심하게 살폈다. 양 선생님은 그림책에 관심이 많았고 학생들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양 선생님의 수업에서는 흥미진진한 그림책이 등장했으며, 학생들은 시 공책에 자신의 시를 직접 창작했다. 학기 말에는 문집을 내서 아이들의 글이 작품으로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교사의 신념은 수업 속에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교사의 신념은 때로는 다차원적이다. 지식, 교수-학습, 학습자, 교과, 자료 활용에 관한 신념 등 여러 차원에서 교사의 신념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업 나눔이라는 대화의 장을 통해 우리의 철학, 신념을 탐색한다.     



  나답게 살기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선배 선생님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하나님은 선생님이 천국에 갔을 때, 왜 OOO처럼 살다가 오지 않았냐고 묻지 않으세요. 박선영답게 살다 왔냐고 물으시지요.”


나다운 게 뭘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교육 철학, 수업 신념도 때로는 당위로 다가올 때가 있다. 뭔가 멋지게 문장을 만들어두어야만 좋은 교사가 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다. 다른 사람의 문장과 내 문장을 비교하면 내 문장은 왠지 초라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의 자존(自尊)을 세우고, 나의 색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낸다. ‘철학’, ‘신념’이라는 용어는 어렵게 다가올 수 있지만, 실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는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


다시 눈을 감는다. 내가 행복했던 수업을 떠올려본다.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이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시간,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랐던 때가 생각난다. 다른 친구 공부를 도와주는 학생의 모습에서 느꼈던 감동이 전해진다. 따사롭다. 햇빛을 받으며 생명을 움 틔우는 연둣빛 새싹 같다. 마음에서 다시 에너지가 생긴다. 그래, 내가 꿈꾸는 수업은 이런 모습이었지.


그 수업에서 아이들과 같이 생동하고 있는 날 본다. “선생님, 재미있는 수업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미덕은 열정이에요. 열정적으로 수업을 해 주시잖아요,” “선생님, 매일매일 행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사랑의 메시지가 위축되었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래, 올해는 어떤 수업을 해 볼까? 기대된다.            



∎ 일 년 동안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배움은 무엇인가?

∎ 일 년의 수업을 진행한 후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

∎ 의미 있는 배움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출처: 교사, 수업에서 나를 만나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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