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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Apr 09. 2022

부서지기 쉬운 마음과 마음이 만나

수업 속 자존감 세우기

"나는 매력적이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카리스마가 부족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친절해서 만만하면 어쩌나?"


내 무의식 속에 있는 이 질문들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이가 먹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순간 학생과의 관계가 어려운 지점을 발견하면 여지없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영어수업에서 어려운 요인 중 하나는 학생들의 '수준차'이다. 영어를 이미 사교육을 통해 배운 학생들이 수업을 장악하지 않도록 애쓰지만, 영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느낄 불안감(anxiety), 좌절감, 학습동기를 잃은 모습을 가끔씩 발견하곤 한다.


"선생님은 초등학교 때, pig도 못 읽었어.

elephant를 옆집 언니가 알려주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pig도 모르는데 elephant를 어떻게 알겠니?

그런데도 선생님 이렇게 영어를 하지 않니?

지금 내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늦은 것이 아니야.

선생님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


라며 이야기할 때에는, 잠깐 학생들의 눈이 빛난다.


"선생님, 진짜 pig도 못 읽었어요?"


내 말에 살짝 과장은 있기도 하지만, 실제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나는 pig를 못 읽기도 했으니 사실이기도 하다. 이런 나의 경험이 제발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길 바라며 수업을 한다.


"선생님 마음은 이래. 아기가 걸음마를 하다가 넘어지면, '야, 왜 이것도 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몸짓에도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니? '잘한다. 잘한다.' 하시지? 그게 선생님 마음이야"


이런 말을 자주 해 준 반은 그나마 안전한 분위기 조성이 되었다. 그러나 신경을 덜 쓴 반은 수준차로 인한 학생들의 정서적인 어려움이 조금씩 느껴진다.


특히 신경이 요즘 쓰였던 부분은 순회지도를 하면서 영어를 어려워하는 학생을 도울 때였다. 순회지도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영어를 어려워하는 학생에게 좀 더 시간을 쓰며 머무르게 된다. 그럴 때에, '한참 민감한 사춘기라 선생님께 도움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걱정은 지나친 게 아니었다. 한 학급에서 순회지도를 하며 한 학생을 도와주려고 하니 한 학생이 쌀쌀하게 말했다.


"저 혼자서 할 수 있는데요."


그 말에 움칫하며 마음이 아팠다. 혹시 내가 수업하면서 아이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충분한 안전지대를 만들어 주지 못한 건 아닌지...


물론 나만의 탓이 아니라, 그 아이의 영어 학습의 역사, language identity와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책임감을 내가 덮어쓰고 나를 자책한다.


'내가 좀 더 매력적인 선생님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까?'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아이들이 더 마음 편하게 영어를 배우지 않았을까?'


내가 했던 행동 하나하나 곱씹으며 자책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날은 수업 후 기진맥진했다.


아직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기간이 있다.


그 아이의 어떤 영역에서는 상처받기 쉬운 자존감과 나의 상처받기 쉬운 자존감이 만나니 참 아프다.

그러나, 학생들을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


부모가 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자녀를 위해 강해지듯,

나 또한 학생들을 위해 강해져야 한다.


나 자신을 자책하며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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