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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Jun 08. 2022

자책을 넘어

성장의 과정이라면 쓰라린 실패도 디딤돌이 되겠지

학교에서 방송을 맡았다. 오늘은 보건 선생님께서 외부강사를 초대해서 강의를 하시는 날이었다. 5교시 수업을 마치고 헐레벌떡 뛰어와서 시청각실 빔 프로젝트를 켰는데, 아뿔사, 프로젝트 화면이 파란색만 서슬퍼렇게 켜져 있다. 리모콘으로 이 버튼, 저 버튼을 누르며 애써보지만 컴퓨터 화면은 뜨지 않는다. 갑자기 식은땀이 와르르 쏟아진다. 


강사님이 오셨고, 강의가 시작되는데 여전히 빔 프로젝트는 말을 듣지 않는다. 급하게 문서고에 가서 강당용 프로젝터를 혼자서 낑낑대며 시청각실로 가져왔다. 다시 뛰어서 방송실로 가서 노트북도 챙겼다. 강사님께서 설문조사를 하실 동안, 급하게 컴퓨터와 빔 프로젝트를 설치했다. 다행히, 강당용 빔 프로젝트는 아쉬울대로 화면이 맞춰졌다. 


강사님은 이런 상황이 짜증이 나시는 듯 했다. 그럴만도 했다. 내가 좀 더 철저하게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시청각실 빔 프로젝트는 보통은 잘 되어 안일했던 것이다. '평소에 얘는 속을 안 썩였으니 잘 되겠지...'하던 안일한 태도가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면 오늘 영어 수업에 태블릿 pc를 이용해서 Kahoot 어플을 한번에 깔고 새롭게 Kahoot문제를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는데 너무 몰입된 탓이었을까? 그렇다. 꼭 오늘 안해도 될텐데, 수업에 미쳐있었다.


마음 속에선 신규 시절 교감선생님이 등장하여 날 혼내고 있다. 이미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그 말이 나를 찌른다. '자네, 기억하게. 개인의 수업보다 학교일이 더 중요하네. 우선순위를 잘 세워야지. 수업은 몇 명이지만, 학교일은 전체에게 피해를 주네.'


식은 땀이 다시 쭉 흐른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보건선생님께서 빌리신 프리젠테이션 넘기는 리모콘은 말을 잘 들어주었고, 강사님은 시청각실 뒤의 노트북으로 오셔서 강의를 해야하는 어색한 사태가 예방되었다. 중간에 동영상을 재생했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소리는 빔 프로젝트에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강당용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젝트에서 자그만한 소리가 나왔다. 강사님 마이크를 빌려 프로젝트에 대어 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강사님은 그 상황이 불쾌한 듯 했다. 나는 강사님 앞에서, 선생님들 앞에서 몸둘바를 몰랐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앉아서 연수를 들으시는데, 난 죄인마냥 앉아서 연수를 들을 수가 없었다. 뒤에 서서 연수를 듣는데 마음 속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다행히 연수가 차분하게 진행되자 겨우 의자에 앉아 연수를 들었다. 연수는 마무리되었고 강사님께 사과를 드렸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내가 어제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꼬리를 무는 자책에 내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연수가 마치고 동료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빔 프로젝트와 노트북을 다시 강당으로 옮겼다. 그런 후, 다시 빔 프로젝트가 강당에서는 잘 작동하는지, 화면 비율은 적당한지 확인하고 다시 장치를 수거해서 빔 프로젝트와 노트북을 안고 낑낑대며 계단을 내려왔다. 빔 프로젝트는 문서고에, 노트북은 방송실에 갖다 두었다. 다시 돌아와 시청각실 빔 프로젝트를 확인했는데,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버튼을 잘못 눌러서 그런 것일까?' 업체에 연락을 해서 점검을 부탁드리고 퇴근시간이 지나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괜스레 속상했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하기도 그랬다. 


괴로운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퇴근했어요? 오늘 하루도 애쓰셨어요."

"너도 애썼네."

"엄마, 나 오늘 방송할 때 빔 프로젝트가 안나와서 똥줄타는 줄 알았어.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래, 그런 거는 미리 확인해야지. 다음부터 잘 하면 돼. 그러면서 다 배우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표시가 안 나서 그렇지 누구나 다 시행착오를 거쳐. 배움의 과정이야."

"우와, 엄마는 정말 지혜롭네."

"엄마는 육십다섯살이잖아."


엄마 덕분에 나의 실패가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두려움에서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래, 배우는 과정이야. 더 나아질거야.'라며 자신을 다독인다.


집에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요플레를 먹으니 긴장이 풀렸다. 불행감이 다시 안도감으로 바뀐다. 


그래... 다시 일어나서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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