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지난달부터 일기를 쓴다. '역행자' 책을 읽고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느낀 모양이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문구 코너에서 내가 수첩을 샀더니 자기도 글을 쓰겠다며 수첩을 골랐다. 연한 황토색 인조 가죽으로 된 수첩을 커플처럼 골랐다. 나는 글을 많이 쓰니 큰 것, 남편은 글을 조금만 쓰겠다고 작은 것을 골랐다. 괜스레 커플티를 산 것처럼 뿌듯해하며 마트를 나왔다.
잠자기 전에 약 5분 정도 글을 쓴다. 남편은 머리맡에 수첩을 두고 자기 전에 볼펜을 들고 끄적끄적한다. 그러면 난 도대체 어떤 말을 쓸까 하고 빼꼼히 남편 일기를 훔쳐본다. 남편은 굳이 내용을 가리지 않고 내게 보여준다. 대게는 초등학생이 쓰는 것 같은 글들이다. 그 말인즉슨, 굉장히 문장이 간단명료하다는 뜻이다. 전형적인 공대생의 특징인 듯하다. 일기를 읽기 전에 뭔가 감동적인 내용은 없는지 고개를 쭈욱 내밀어 읽어보는데 사건의 나열인 경우가 많아 '음, 그렇군'하고 5초 만에 쓰윽 읽는다. 그렇게 남편이 일기를 쓰고 나면 구경하는데 한 문장을 읽다가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잠에 들기 전이었다. 난 잠에 들기 전에 손을 깨끗하고 싶어 한다. 조금은 강박스러운 면이 있다. 괜스레 손을 여러 번 씻게 되었다. 속으로 내가 결벽증이 있는 건 아닌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지, 여러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걱정스레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아무래도 나 좀 결벽증인 것 같아요."
그랬더니 남편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보가 결벽증이라고? 서재를 생각해봐요."
서재는 나만의 공간이다. 여기저기 책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말 그대로 창고와 같은 공간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지저분한 공간, 나만의 도피처이다. 깨끗하게 정리한다고 해도 책이 왜 그렇게 너저분하게 쌓이는지. 서재를 떠올리자마자 우리는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웃었다. 그렇게 배꼽을 잡으며 웃다가 남편은 일기를 쓰고 나는 바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며칠 후에 남편의 일기를 허락을 맡고 읽었다.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써져 있었다.
"아내는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에 내 마음이 환해졌다. '내가 강박증인가? 내가 성격이 어두운가? 왜 우울할 때가 많지?' 하며 내 깊은 마음을 파고들 때가 많은데, 내가 남편을 웃게 하는 사람이라니. 이렇게 나의 작은 몸짓에도, 작은 말에도 진심으로 재밌어하는 남편이 참 고맙다.
"남편은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