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두번째 자작곡
요즘 트로트가 대세다. 우리 아빠는 트로트를 정말 잘 부르셨다. 지금 살아계셨다면, '미스터 트로트에 나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아빠의 트로트 18번은 '능금빛 순정'이다.
"엄마, 아빠가 잘 부르시던 트로트 제목이 뭐예요?"
"능금빛 순정, 능금빛 순정"
인터넷에서 '능금빛 순정'을 찾아 들어본다. '사랑을 따려거든 손짓을 해요. 말 못할 순정은 빨간 능금알. 수줍어 수줍어 고개 숙이다 조용히 불러주는 능금빛 순정.' 가수의 목소리에서 아빠의 흔적을 찾아본다. 아빠의 목소리와는 다른 가수의 목소리지만, 그 노랫속에서 아빠의 기억을 더듬어 찾는다. 아빠의 노래 기교, 노래를 부르실 대의 표정이 조금씩 조금씩 떠오른다. 아빠가 불러주는 능금빛 순정을 다시 들어보고 싶다.
아빠의 국민학교 2학년때 통지표를 보니, 그 때부터도 음악을 좋아하셨나보다. 통지표를 읽어보니 취미 또는 특기에 '음악, 노래부르기'가 적혀있다. 아빠의 아홉 살 모습이 상상이 된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로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난 아빠의 딸이기에, 시간을 1963년도에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아쉽지만 상상만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아빠는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으시다. 그 당시 피아노 학원도 없었고, 학원을 다닐만한 가정형편이 아니셨다. 그렇지만 아빠는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으시면서 교실에 있는 풍금을 연주하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친구들이 몰려들어 아빠 풍금소리를 듣곤 했다고 한다.
아빠는 가끔씩 집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해 주시곤 했다. 어찌나 그리 셈여림을 잘 살리시던지. 코드를 정식으로 배운적도 없으신데 직관적으로 코드를 맞추셨다. 절대음감이신가? 피아노를 치시면서 노래를 하신다. 트로트의 구성진 맛이 아주 그냥 예술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면 아빠는 내 피아노 소리가 밋밋하다며 한참을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셨다. 음악은 그렇게 밋밋하게 하는 게 아니라고. 죽은 소리라고. 감정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그러고는 나를 앉혀놓고 음악공부를 시키신다. 조표보는 법을 가르치신다.
"셈여림을 잘 지켜야해. 그래야 음악이 사는 거야. 다시 쳐봐."
"선영아, 사라가마나바다, 시미라레솔도파. 파도솔레라미시, 이게 뭔지 알아?"
처음에 들을 때는 아주 신선했지만, 계속 듣다보니 지겨웠다. 다 아는 소리를 맨날 반복하시니까. 난 나름대로 셈여림을 갖춰서 친 것 같은데, 맨날 밋밋하다고 하시니, 도대체 어떻게 쳐야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아빠 말 잘 듣는 착한 딸이니까, 아빠 말대로 노력해본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잔소리가 그립다. 내가 피아노 치는 것을 들어주셨으면. 아니, 아빠의 피아노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그 때, 좀 더 현명했더라면 아빠 피아노 소리를, 아빠 노랫소리를 촬영해 두었을텐데. 들을 수 없기에, 아빠의 일기를 계속 뒤적이며, 아빠 소리를 찾는다. 아빠를 찾는다.
<아빠의 일기>
WED. March. cloudy.
오늘로서 어제 계속하던 곡을 모두 끝냈으나 어딘가 좀 마음에 맞지 않았다. 곡 자체가 그런 것도 있지만 아직 익숙치 못한 탓인지 박자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고, 또한 곡의 변화와 엑센트 등의 간단한 곡이지만 그만큼 신경이 쓰인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2번째 곡을 지어본 내 나이 1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