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예술

by 햇살샘

1년의 파견 후, 복직은 쉽지 않았다. 근무 첫날 부터, 난 나도 모르게 "YES 맨"이 되어 있었다.


"부장님, 점심식사 계약 업체에요. 전화해서 시간 확인해 주세요."

"네, 확인해볼게요."


알고보니 전임자의 일이었다. "부장님, 이건 부장님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직장의 한 분이 오셔서 내게 말을 건내셨다.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졌다.


"부장님, 설문조사 좀 해 주세요."

"아, 컴퓨터를 껐는데. 어떤 건가요?"


퇴근 시간 이후, 부장님의 요청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컴퓨터를 껐어요.'까지만 말했어도 좋앗을텐데... 내 부서 일이 아닌 설문조사를 꾸역꾸역한다. 집에 돌아오는데 기분이 찜찜하고 썩 유쾌하지가 않다.


"부장님, O월 O일에 면접이 있어요. 인원 1명 충원이 필요한데, 그 날 시간되시나요?"

근무날이 아닌데도 나와서 일하고 있던 중이었다. 교감선생님께서 내게 면담이 가능한지 물어보셨다. 실은 2월 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논문이 3편이나 있어 마음이 분주한 상황이다. 그러나, 월요일에 딱히 선약이 있거나 그러지 않았다. 내가 바로 대답을 못하자 교감선생님께서 "어려우면 다른 선생님께 물어봐도 돼요." 그러나 굳이 나는,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교감선생님, 제가 할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머리를 쥐어뜯듯 괴로워했다.


왜 나는 거절을 못할까?

상대방이 상처받을까봐? 상대방과의 관계가 껄끄러울까봐?

미움받을까 봐? 안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까봐?


괴로워하며 '거절 못하는 이유'를 키워드로 입력하고 영상을 검색한다. 한 영상에서는 거절을 못하는 것이 갈등을 회피하고 싶은 공포에 굴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할 수록, 자신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있다고 했다.


영상에서 제시한 공식은 다음과 같았다.

1. 즉답 피하기: 부탁을 받는 순간 우리 뇌의 편도체는 비상벨이 울린다. '이걸 거절하면 무리에서 쫓겨날지 몰라'하는 원시적인 공포(사회적 공포)이기에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한다. 단 10분이라도 틈을 두면, 편도체의 흥분이 가라앉고 이성적인 전두엽이 켜진다.

2. 사람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부탁만 거절한다는 신호 주기

'널 도와주고 싶지만(관계 유지) 상황이 안 되어서 그건 못 하겠어(부탁 거절).'

-사람과 문제를 분리

3. 어색한 침묵 견디기

거절 후 3초 정도의 정적을 견디지 못하고 '아 근데, 내가 다시 한번 알아볼게'라며 뱉은 말을 주워 담음

-> 어색함은 상대방이 거절을 받아들이는 처리 시간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것은 욕심이다. 나를 지키지 못하는 착함은 결국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된다."


생각해 보니, 교감선생님과의 대화에서도, 교감선생님께 고마운 일들이 떠올라 바로 거절하기 힘들었다. 망설이다가, 내가 어려워하는 표정과 행동을 철수하고 내가 하겠다고 말을 했다. 바로 3초의 침묵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앞으로도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파도와 같이 무수한 요구와 부탁이 밀어닥칠 것이다. 그럴 때마다, 타인에게 착하려다 나에게 나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거절을 훈련하고 싶다. 언젠가는, 따뜻하고 친절하게 거절할 수 있는 법을 체득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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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Rooms by the Sea


https://youtube.com/shorts/urglMD-RaMk?si=i9y3sRhKNn7gfq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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