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의 아빠라면

아빠, 응원해요

by 햇살샘

엄마는 아빠의 일기장, 생활 통신표, 상장 등 아빠의 흔직이 담긴 자료를 소중하게 보관해 두셨다. 내가 집에 오면 아빠의 역사가 담긴 봉투를 꺼내어 내게 보여주신다.


"니 아빠가 재산은 안 물려줬어도, 이게 네 아빠의 재산이다. 이걸로 글 써봐라. 아빠의 꿈이 이루어지게."


하, 그런데 아빠의 일기장을 쓰기에도, 아빠의 자료를 정리하기에도 내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다가 일기장의 한 면에서 멈추었다. 아빠가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아빠의 한이 담긴 일기였다. 마음이 미어져온다.


아빠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아주 잘 하셨다고 한다. 아빠의 생활통신표를 찾아보았다.


1학년 2학기: 학업이 우수함

2학년 2학기: 학업 성적이 우수하며 모든면에서 반의 모범이 됩니다.

3학년 2학기: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급우들의 모범이 되는 학생입니다.

4학년 1학기: 활기 충만하고 의지적입니다. 계속 노력을 하여 학급에서 톱 하도록...


아빠는 학업 성적이 우수하다고 표창장도 받았다. 이거, 아빠 자랑은 아닌데, 왠지 아빠 자랑하는 것 같다. 뭐, 딸이 아빠 자랑해도 되는 거 아닌가? 딸 바보가 있듯이, 아빠 바보도 있어도 된다고 본다.



중학교때도 공부를 잘 했다고 들었다. 게다가 아빠는 공부를 잘하실 뿐만 아니라 웅변도 잘하셔서 상을 많이 받으셨다. 고등학교 진학할 시기, 거창에 있는 대성고등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집이 가난해서 자취방을 구해주기 힘들어 결국 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18세, 아빠의 한이 담긴 일기를 다시 읽어본다.



Tues. Feb 16.


요사이 나는 한 가지 결심이 섰는 이유는 몇일 전에 나의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친히 부모님께서 말싸움이 벌어지고 나서부터 그 이후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서 곧 실천으로 옮겼으나마 곧 잘 해결치 않았다. 끈기와 노력을 해야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선 먼저 책상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오전에는 간단한 의자를 만들었다. 나의 솜씨라 그런지 즐거웠다.

그런데 아버지께선 오늘 이모님 병환이 어떠한지 거창으로 가셨다. 어서 나아서 새로운 희망의 길을 걸어야 될 것인데 운명은 걱정 많은 사람에게만 괴롭히는 심술군 같이도 생각되었다.

따스한 봄의 향기는 우리집 작은 방에 내가 앉아 있는 책상위에까지 스몄다. 얼어 붙었던 땅이 풀려 온 길은 흙 투성이로 변해만 가고 날씨는 더욱 더 따스하게 내리 쬐인다. 농촌에 봄이 찾아오면 새로운 농민의 가슴은 희망의 씨를 뿌리며 올해의 설계를 꾸미기에 바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어쩌면 바보같이 깨끗하게 해결지우지 못하는 것일까? 집에서 농사를 짖느냐, 아니면 객지로 가느냐의 두 갈래 길에 자꾸만 서성그리는 안타까운 심정을 해결 지울 수 없는 것은...


'푸른 꿈을 키워보는 나의 어린 생각'

- 아빠의 일기 중


사람의 생각이란 어느 정도의 한도가 있는 법이다. 그 옛날 나는 어릴 때의 생각이 지금도 새삼스럽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밝은 미소가 내일의 꿈을 키워주는 그 때의 어린 마음.

그것은 다만 넓다란 대지 위에 한가하게 꿀을 뜯는 젖소들의 모습이 주까동의 신세를 가졌으니 또한 외로운 일이고도 즐거운 일이다.

가난이란 정말 예사로 보아서는 안될 가장 큰 해결점이다. 지금 우리집만 어느 정도 부자였드라면 나는 진학의 이름 아래 농고나 예술고를 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농사랑, 아니 가축들과 친밀한 벗이 되어, 그리고 피아노와 벗이 되고파. 그러나 그것은 오직 가난이 방해를 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남들은 음악가니, 가축의 사육이니 등.. 모든 것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것들은 오직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서라벌 예술고등학교에 내가 만약 입학을 해서 작곡 방면의 길을 밟고 있다면.

쓸데 없는 나의 생각을 이 붉은 종이위에다 호소해보는 나의 심정은 쓰라리기만 하니 이것이 모두 누가 이렇게 괴로웁게 만드느냔 말이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배움을 실천에 옮기는 유일한, 아니 성급할 정도의 실천을 앞세워야 한다.



아빠는 결국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셨다. 내가 만약 아빠의 아빠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의 아빠가 되어 아빠를 고등학교에 보내주고 싶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실컷 해드리게 하고 싶다. 그러나, 그게 어찌 내 마음대로 되는가? 인생이 어찌 마음대로 되는가? 십대의 푸른 꿈을 안은 아빠의 마음이 낙담되었을 때, 남몰래 눈물 흘렸을 아빠의 눈물을 미래의 내가 닦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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