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군의 아들

농민들의 삶의 애환

by 햇살샘

<18살 학생때의 일기>

Wed. June. 2. fine.


5월의 초목들도 이제는 왕성해져 지금은 짙은 풀냄새만이 풍겨오는 6월의 농번기다. 아카시아 꽃잎의 향기도 사라저 버린 청춘의 계절은 내일이란 미지수에 의해서 웃고 울며 고달픔을 잊는다. 삶을 게속하는 농민들은 날이 새기가 바쁘게 거름짐을 지고서 들로 향하는 것이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또다시 나는 산으로 향했다. 역시 농군의 아들로서 해야만 하는 법칙의 이름 아래 실천으로 옮기는 것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알지 못하는 고통과 또한 푸르게 간직했던 희망의 씨앗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친 몸이 있고, 또 생각을 달리하면 아버지의 신체적 조건이 나를 집에 머물게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내가 떠난다 할지라도 이 보잘것 없는 농사는 누가 짓는단 말인가? 북골 가시밭의 바위 위에 앉아서 앞날의 설계에 정신을 쏟으니 어디선지 가냘프게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한층 더 슬프게 한다. 인생의 절벽으로 인도해 주는 것 같은 느낌. 주마등에 비길 때가 없었다. 따가운 햇빛은 내려 쬐이고 푸른 들판에는 바쁘게 일을 하는 농민의 모습들이 눈앞에 서릴 뿐이다.

저 멀리 눈에 띄게 짐을 지고가는 농민이 나의 눈을 끌었다. 아버지가 저렇게 짐을 지고서 들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러나 그 생각은 값없는 생각이다. 또한 고독과 괴로움을 안겨 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일을 해야지... 하나 선뜻 낫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몸에서 땀이 서리고 일하는 것보다 몇 배나 괴로움으로 울고만 싶은 생각이 스쳤다. 말로 일을 해야 된다는 귀절만이 떠오른다. 그러나 또 일을 할려면 엉뚱한 생각만 떠오르는 것은 정녕 무엇 때문일까? 나는 정신병자란 말인가? 아니면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란 말인가? 이럴 때 친구라도 옆에 있어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으면.

사람이란 내일을 사는 법이라 희망을 갖자.


<면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쓴 아빠의 일기>

Oct. 19. fine.

10月의 농번기


벌써 울긋 불긋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쌀랑한 바람은 체온을 식혀오고 들판엔 농민이 바쁜 손을 움직이고 있다.

이른 새벽!

약간의 어둠이 가시지 않은 날, 너무나도 일어나기 싫은 몸에 힘을 주고 서리가 내린 새벽길을 걷는다.

어느새 어머님께서 마련해 주신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타작을 마쳐야 하는 날이기에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동리에서 들려오는 탈곡기 소리가 귓전을 진동하고 굳었던 내 몸이 또다시 작업을 개시한다. 해가 지기전에 일을 마치었다. 하지만 증수 효과가 미약한 800평의 논에 머리가 아파온다.



아빠의 일기를 통해 그 당시 가난했던 농민의 삶을 바라본다. 우리 부모님 세대, 그리고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 세대의 애환이 느껴진다. 그들의 노동과 땀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건 아닌지. '나 때는 말이야,' 그런 말이 꼰대스러울지 몰라도, 어른들의 꼰대 스러움 뒤에는 나름 그들의 삶의 애환과 희생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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