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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Dec 09. 2018

[뉴욕] 2. 그라운드 제로, 시간의 기억

2018년 가을 뉴욕 여행기

이번 뉴욕 여행에서 함께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9/11 테러 이후로 다운타운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은 의미있는 방식으로 기억되고 강화되어가고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서, 참혹했던 순간의 흔적을 조각조각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9/11 테러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내 것처럼 여기는 공감의 표현, 그 중심에 있는 여러 건축가들과 그들의 철학이 담긴 건축물들을 보았다.


노란 가을의 메모리얼 파크 속 그라운드 제로 pool




Oculus

Church St, New York, NY 10006 미국


가장 기대했던 건축물인 오큘러스(Oculus). 2016년에 선보여진, 대중교통 허브라고 불리는 환승센터. 스페인 태생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이 건축물은 사방이 온통 흰색 대리석이고, 이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지하철역이라는 별칭도 가진다. 오큘러스는 '눈'이라는 의미지만, 건축학적으로는 천장이 개방된 구조를 뜻한다고 한다. 외관은 손바닥에 안긴 작은 새가 날아가는 이미지.


그라운드 제로를, 첼시나 브루클린에서 바라본다면 이런 환승센터는 도저히 눈에 띄지 않는다. 서로서로 자기가 높다고 뽐내는 듯한 커다란 빌딩들만 보일뿐. 이들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멋지게 구성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스카이라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대표적으로 보여진다. 오큘러스는 환승센터로서, 거대한 타워들이 즐비한 뉴욕 금융가와 한적한 트라이베카 거주지역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듯 했다.


각자 앉아서 휴식할 수 있는, 오큘러스 외관을 둘러싸는 벤치도 참 좋았다. 이 곳에 앉아 함께 사람 구경도 하고, 음악도 듣고, 점점 어두워지는 뉴욕의 저녁 하늘도 보았다.





Bjarke Ingels


뉴욕을 여행하는 도중 친구 덕에 알게된 덴마크 태생 건축가, 비아르케 잉엘스(Bjarke Ingels). 그가 궁금해져서 다큐멘터리 <Big Time>을 보게 되었다. 만화가를 꿈꾸다가 현재는 세계가 주목하는 건축가가 된 비아르케 잉엘스가 생애 최대 프로젝트를 이루어가는 5년 (2011~2016)이 담겨있었고, 그 프로젝트의 배경지가 바로 뉴욕이었다. 9/11 테러로 인해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제 2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자리를 대신할 고층 건물은 2008년부터 공사중에 있다. '보존' 그리고 '재해석'을 동시에 담은 급진적인 건축을 실현시키는 그의 철학이 담긴 건물이 어떻게 탄생할지 무척 궁금하다.


늘 새로운 실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를 대표하는 뉴욕의 또다른 건축물은 바로 '비아 57 웨스트'라는 고급 임대아파트다. 이 건축물은 스칸디나비아와 북미 간 연결성을 강화시키는 그의 전략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다음 뉴욕 방문 때에는, 비아 57 웨스트가 새롭게 장식한 뉴욕 스카이라인을 꼭 구경해보고 싶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비아르케 잉엘스가 이끄는 건축회사 BIG의 마케팅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바로 '공모전'을 통한 마케팅. 클라이언트와 업계에 BIG을 알리기 위해서 수많은 공모전에 지원했고, 다양한 전시회와 강연에 참여했다. 1년에 최대 16건의 전시회를 열기까지 하고, 비아르케 잉엘스는 직접 테드 강연장에 서기도 했다. 잠재 고객을 만나기 위한 양적 마케팅은 결국 BIG를 세계 무대에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그리고 그 속의 건축물들에 담긴 상징성을 바라보면서, '미래 지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전세계에서 각자 다른 모양의 꿈을 안고 뉴욕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미래 지향성이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렸던 9월 11일의 슬픔과 공포를 이겨내고, 이를 담담하면서도 낙천적인 모습으로 기억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또다른 성격의 미래 지향성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뉴욕이 진정 멋진 도시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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