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 단상
경미한 고통이나 좌절은 피할 수도 없거니와 삶에서 꼭 필요하다. 너무 좌절을 겪지 않으면 온실 속 화초처럼 작은 고통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작은 고통은 독감주사처럼 좀 더 큰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준다.
고통은 또한 변화와 개선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불편한 일이 없으면 보통은 삶에 변화를 잘 주려고 하지 않는다(ex. 아프지 않으면 운동의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어려움이 생기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여기서 관점이 넓어지고 개선의 여지가 생긴다.
고통을 약간의 개선을 넘어 자원으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특히 삶의 전환점이 될 만큼 큰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잠시 무너지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금 일어나 고통에서 적극적으로 의미를 발굴하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려 노력할 수 있다면 고통이 큰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삶의 큰 파장은 내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재정립하도록 촉진한다. 고통의 굴곡을 헤쳐 나가는 동안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삶에서 소중하고 감사한 것을 더 많이 찾아내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역량이 증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을 자원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극심한 고통일수록 더 그렇다. 트라우마 경험 이후에 영적 차원까지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PTG)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렵다.
고통을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으려면 (통계적인 이야기이지만) 고통을 일으킨 사건을 겪기 전부터 그럭저럭 잘 지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자원을 많이 갖추면 갖출수록 좋다. 안정 애착 발달, 긍정적 성격, 좋은 습관, 종교와 같은 의미 체계, 큰 병력 없음, 높은 지능,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 원만한 가족과 친구 관계 등
무엇보다도 고통의 시간을 무사히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물적, 심리적 지원을 넉넉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잘 헤아리고 2차 가해를 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도움을 주는, 인내심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내가 겪는 종류의 고통이나 심리적, 의료적 처치에 낙인을 찍지 않는 사회문화적 환경 등과 같은 거시적 요인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하는 데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정말 중요하다. 어떤 고통은 대다수의 삶에 파괴적일 뿐, 안 겪는 게 나은 것도 정말 많다. 아동학대, 성폭력, 교통사고, 가까운 이의 끔찍한 사별, 강제수용, 전쟁 등.
그저 우리가 무의미한 고통에 내던져졌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너무 어렵기에, (에너지와 자원이 있다면) 역설적으로 어떻게든 고통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우리 안에 살아내려는 힘이, 그것이 대단한 자기실현 경향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우리를 추동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어렵다. 어떤 고통은 겪지 않는 게 낫다.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사도들은 자신을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화신으로, 영적 지도자에 가깝게 묘사하기도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게 어렵기 때문에, 외상 후 성장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의 관심을 끈다.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고통에서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하거나 그런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대한 예방할 수 있는 고통은 함께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