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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태훈 Nov 18. 2020

02 아빠의 정체성

[Happy story] 오늘을 행복하게, 내일은 더 행복하게

배태훈(다함께연구소 소장, 아동청소년상담심리 허그맘 자문위원)     


“어~ 아버님이 오셨네요.”


아이들 학부모 공개수업이나 상담을 받으러 갈 때 선생님들께 제일 먼저 듣는 말이다. 보통 아이들 일에는 아빠보다는 엄마가 오기 때문이다. 직업상 아내는 휴가를 내기가 어렵다. 지금은 퇴사했지만, 반대로 나는 회사에 지장을 주지 않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 돌보는 일과 학교 일은 시간이 여유로운 내가 주로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과의 첫 만남에서 선생님들의 당황한 표정과 함께 듣는 첫마디가 “어~ 아버님이 오셨네요.”였다. 그리고 “아버님이 오신 경우는 처음이에요.” 하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남녀 구분이 확실한 나라였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7세부터 남녀가 한 공간에서 있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하는 일도 정해져 있었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안에서 살림을 했다. 그래서 남편은 바깥양반, 아내는 안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자는 생활이 어려우면 집안 살림뿐만 아니라 바깥일도 했다. 그렇다고 남자가 살림을 도와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집안일은 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부엌에 들어갔다가 호되게 혼난 적도 있다.      


이런 문화는 시대가 변하면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큰 아이(2004년생)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닐 때만 해도, 아빠가 자녀양육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이들과 관련된 곳에 가면, 항상 청일점이었다. 그나마 수다 떠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공간에서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지만, 다른 엄마들에게 눈에 띄는 존재였다. 지금도 큰아이 학교 모임이나 행사에 가면 청일점인 경우가 많다. 자녀양육에 아빠가 동참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긴 했지만, 시간을 내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아빠들이 자녀양육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는 비율이 많아졌다.     


그런데 아빠의 동참에 씁쓸한 면이 있다. 그건 바로 아빠의 정체성이다. 아빠가 아빠의 모습으로 자녀양육에 동참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우리 전(前) 세대의 아빠들이 자녀를 양육했던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가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아빠가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아빠를 ‘제2의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자와 여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차이가 있다. 의학계나 심리학계에서도 이런 차이들을 연구해서 여러 가지 논문들을 발표하고, 다양한 책들이 시중에 나와 있다. 여자가 바라보는 시각과 남자가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같은 곳을 보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르다. 자녀양육도 마찬가지다. 아빠와 엄마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다. 엄마의 눈에는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도 아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엄마가 절대 볼 수 없는 것을 아빠는 한눈에 볼 수 있다. 아빠가 자녀양육에 참여한다고 하면, 엄마의 의견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아빠보다 양육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는 아빠의 모습으로 자녀양육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엄마는 엄마의 역할로, 아빠는 아빠의 역할로 자녀양육에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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