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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5. 2024

2. 천안에서 (2)



“기자시라고요?”

쇠창살 너머 그리고 쇠창살에 덧댄 두꺼운 강화유리를 너머 상고머리를 한 남자, 그가 물었다. 나는 그가 볼 수 있도록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강화 유리에 닿게 들이민 김정민의 명함을 거두었다. 그 명함을 쇠창살과 강화유리로 분리되어 있지만, 그와 내가 공유하는 대리석 상판 위에 두었다. 

이천 년대 초반 교도소의 두발 규정이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파리하게 깎은 짧은 머리를 기대했다. 기대와 다른 그의 긴 머리를 보고 괜히 실망했다. 한 달 전 서울 카페에서 봤을 때와 다르게 앞머리가 이마를 덮었다. 숱이 성글어 가리지 못한 이마가 머리칼 사이로 보였다. 옆으로 길게 째진 눈, 수술이라도 한 듯 부자연스럽게 높고 가는 콧대, 하경이 특히 강조했던 치솟은 입꼬리는 여전했다. 그러나 멋스러웠던 감색 정장은 수의로, 그 정장에 신을 것을 생각하고 만든 것처럼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던 진갈색 구두는 하얀색 고무신으로 바뀌었다. 부자연스럽게 번들거리던 얼굴에는 기름기가 가셨다. 푸석한 피부 위로 거뭇하게 검버섯과 기미가 올라왔고 교도소 급식이 입에 맞지 않는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얼굴 군데군데에 뾰루지가 보였다. 한 달 남짓 동안 사람이 이렇게나 변했다. 관리의 부재란.

“제 명함은 어디서 났습니까?”

김정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수상쩍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가늘게 뜬 눈이 칼자국 같았다. 김정민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말 한마디 없이 옆을 스쳐 지날 뿐이었으니.

“유하경, 알아요?”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물었다. 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프로파일러들이 범죄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도권을 주는 꼴과 같다고 얘기하는 걸 보았다. 김정민은 나를 멀뚱히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나는 재차 물었다. 

“그럼, 벨라는 아십니까?”

김정민이 습 하고 들숨을 마시며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다. 그리고.

“알지, 그 늙은 년 말하는 거죠?” 

입을 뗐다.

“그년이 준 거예요? 그 명함?” 

또 묻는다. 

“벨라, 아니 유하경 얘기 좀 들읍시다.”

나 또한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묻는다. 답 없이 질문만 오가는 상황이 김정민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조금 열이 오른 듯 한숨 쉬며 시선을 깔았다. 이내 결심하듯 고개를 든 그가 마침내 하경의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정신병이었어요, 그년. 그… 뭐라 그러지? 과대망상이라고 하던가? 걔 조건 만남했던 거 아시죠? SNS 닉네임 아는 거 보니까 아시겠네. 나도 조건 만남으로 찾은 거거든. 걔가 왜 닉네임을 벨라라고 지었는지 알아요? 그 왜, 뱀파이어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 있잖아요? 그 영화 여주인공 이름이 벨라라고 하대요? 그거 따라서 지었다나 뭐라나. 다 늙어서 무슨.…”

김정민은 조소하고 말을 이었다.

“그 닉네임 얘기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에 호텔에서 들었어요. 그다음 날 내가 호텔에서 나가기 전에 탁자 위에 현금 놓고 그 옆에 호텔 메모장에다가 ‘에드워드가.’ 이렇게 적어서 놨거든. 장단 맞춰주니까 아주 엄청나게 좋아하데? 그다음에는 나도 덩달아 그게 재밌어서…. 그런데 그년 얘기는 왜 물으실까?”

“처음에 그… 마약을, 그러니까 유하경과 처음 만났을 때 각성제는 언제, 어떻게 투여한 겁니까?”

“내가 먼저 묻지 않았어요? 벨란지 별론지 걔 얘기는 왜 물으시냐고. 당신, 그년이랑 무슨 사이시길래?”

김정민이 되물었다. 되묻는 말투에서 내가 답하지 않으면 자기도 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여 일단 한 수 접어주기로 했다. 

“취재했었습니다. 마약 중독 실태 관련으로.”

“그래서요?”

“그래서라니요?”

“본인,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다고 생각 안 해요? 모든 취재를 이렇게까지 합니까? 아니지 않아요? 이미 결말이 난 사건이잖아. 뉴스에 난지 두 달 가까이 지났고 사람들 관심도 식어 간다고. 설마 기자정신 뭐, 그런 거야? 당신네 기자정신이니, 나발이니, 그거 오 공 때, 군사 정권 무너지면서 같이 내다 버리지 않았어요?”

기자정신….

“일단은 호기심이라고 해 두죠.”

내가 답하자.

“호기심?”

김정민은 되씹고 재밌다는 듯 고개까지 뒤로 젖히며 대소한다. 한동안 웃던 그는 웃음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얼굴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접견실에 들어와서 줄곧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던 그는 흥미가 동한 듯,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얼굴을 쇠창살에 거의 닿게 바짝 들이밀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본능적으로 물러날 뻔했으나, 참았다. 내가 작게나마 움찔거린 것을 그가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랐다.

“그래서 뭐 물어봤었죠? 아, 처음 만났을 때…. 호텔 가봤죠? 가 봤겠지, 그 나이에. 아무튼 호텔에 미니바라고 해서 냉장고 안에…”

“압니다. 가 봤어요.”

나는 그의 설명이 필요 이상으로 장황해 질 듯싶어 말을 잘랐다. 접견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김정민의 얼굴에 조금 남았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말 자르지 맙시다.”

그의 엄포가 입고 있는 수의 때문인지 제법 박력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냉장고 안에 물이랑 음료수랑 등등 많아요, 먹고 마실 게. 처음에는 각성제를 술에 녹여서 건넸는데 안 마시더라고? 술을 못한대. 근데 내가 술에만 넣었을까? 걔 만나던 날에 나는 지하철역에 미리 도착해서 멀리서 보고 있었거든. 아이, 상품 사이즈는 확인해야 할 거 아냐. 그때 걔가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는 걸 봤어. 못 봤으면 어쩔뻔했어? 호텔 도착해서 화장 고치러 화장실 갔을 때, 걔 가방 안에 있는 생수병 비워서 다시 넣어 두고 호텔 냉장고 안에 있는 생수병에 각성제 녹인 식염수를 주입해 놨어요, 주사기로. 아이 섹스하고 나면 힘들잖아, 배겨? 안 마시고?”

하경은 취재에서 J와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하며 말했었다. J는 분명 지하철역에 먼저 도착해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었을 거라고. 하경의 예상이 맞았다. 또 하경의 말 대로 그는 영리했다. 마실 것에 각성제를 탈 뿐인 뻔한 수법이지만, 그 뻔한 수법을 J는 아니, 김정민은 치밀하게 빈틈없이 꾸몄다.

“중간에 연락을 끊은 이유는 뭡니까? 유하경을 별장에 데리고 가기 전까지 연락을 끊었었잖아요?”

“하, 그건 되게 쉬운 문제인데, 기자라는 양반이…. 애덤 스미스 국부론. 몰라요? 보이지 않는 손, 시장 경제, 수요와 공급의 법칙.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다잖아요. 그 싱싱한 애들 사이에서 서른 가까이 된 여자가 수요가 있겠어요? 아니, 당장 기자님이라면 누구랑 한 번 하시겠어? 아, 모르시나? 어린 보지 먹어 본 적이 없어서?”

김정민은 등을 젖히고 꺽꺽대며 웃었다. 이내 헛기침으로 웃음기를 가시고.

“그런데 있었어, 수요가. 노인네가 하나 있었는데 이 양반이 어린 여자는 싫증이 났는지, 걔를 콕 짚어서 불러오라데? 아이, 고객님께서 원하시는데 당장 대령해야지.”

상스러운 말을 마저 맺는다. 서울 카페에서 무리의 환호를 받던 김정민과 지금 내 앞에서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고 있는 김정민은 분명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에게 관찰되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꼴.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그에게 환호했던 후임들은 김정민의 소식을 뉴스나 기사로 보아 알고 있을 테다. 개중 몇몇은 그가 체포될 당시 현장에 있었을 수도 있다. 자기들이 환호하며 따르던 사람의 실체를 목도하고 그들은 어땠을까. 

김정민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내 안색을 살폈다.

“기자님, 왜 그래요? 너무 충격적이야? 나 별 얘기 안 한 거 같은데?”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접견 시간으로 허용된 삼십 분이 다 되어간다고 나를 재촉했다.

“뭐라고 말할지 대충 짐작은 됩니다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당신이 연락을 끊은 후에 유하경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고개를 들어 그에게 시선을 맞추고 묻자, 김정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치며. 

“기자님, 내 얘기 좀 해줄까요?”

라고 묻고는 헛기침으로 목을 풀며 시동을 걸었다. 긴 얘기일 듯했다. 불필요한 얘기로 접견 시간을 날리고 싶지 않아, 그의 말을 끊으려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요, 이래 봬도 태생은 농부의 자식이거든? 그렇게 안 보이죠? 나, 고추에 털 나기 전부터 밭일, 논일 거들었어요. 그때는 너무 어려서 뭘 몰랐으니까 시키면 그냥 했지.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밭일이 죽기보다 하기 싫더라, 이거예요. 쪽팔리기도 했고. 그때부터 공부했어요. 그런데 시골 노인네들이 뭐 아나? 책상도 없었어, 다리 망가진 소반 펴두고 그 앞에 앉아 공부하는데, 앉기만 하면 일 하라고 불러내는 거야. 책 살 돈이나 줬을 거 같아요? 그래도 했어요. 죽으라고 했어요. 뭐, 그러다 보니까 대학 붙고, 등록금 내줄 돈 없다길래, 안 대주면 나 당신들이랑 연 끊는다고 협박하니까 보내 주데? 그래서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하니까, 노인네들 그제야 좋아하더라고? 나는 그러면 끝인 줄 알았지. 대기업 입사하면 남은 인생은 그냥 살아지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 이 말이야. 대기업 안에도 서열이 있어요. 같은 회사라고 같은 직급이라고 다 같은 사원들이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아요? 알기는 뭐, 대기업 가봤어야 알지. 예를 들어서, 나랑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가 있어요. 실적은 개판인데 이 자식이 강남 출신이야. 아빠는 정계에 있대. 그럼, 실적은 우수한데 농부의 자식인 나랑 실적은 개판인데 정치인 아빠를 둔 이 자식 중에서 누가 더 빨리 승진할 것 같아요?” 

나는 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이제 막 접견 시간 삼십 분이 다 지났다. 축구로 치면 지금부터는 추가시간일 테다.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의 말을 끊고 질문의 답을 구해 봐야 그가 답하기 전에 교도관이 먼저 나설 것이었다. 이번 취재는 망했다. 다음을 기약하자. 그런 생각으로 김정민을 가만두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김정민은 신난 듯 떠들었다. 

“이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구나, 우리 기자님. 정치인 자식이 훨씬 빨리, 더 높이 올라갑니다. 농부의 자식인 나 같은 놈은 죽으라고 해봐야 마흔 조금 넘으면 슬슬 사직을 권고받아요. 명이 조금 길다 싶으면 쉰이고. 하… 이 출신이란 것이 어려서도 그렇게 못살게 굴더니, 다 커서도 발목을 잡더라고. 심지어 승진뿐만이 아냐. 먹는 거, 입는 거, 신는 거부터 해서 마시는 술, 주말에 하는 일, 나중에 결혼할 때 결혼식장까지. 그냥, 모든 것에서 차이가 나. 있잖아? 유심히 보면 무리가 딱 나뉘어. 없는 놈들은 없는 놈들끼리 모여있고 있는 놈들은 있는 놈들끼리 어울려. 시골 노인네들이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추가 시간이라기에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교도관이 끼어들어 김정민을 데려가야 마땅했다. 김정민 뒤, 접견을 감독하는 교도관이 앉은 책상을 살폈다. 없다. 책상은 비어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김정민은 교도관이 자리를 비운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오롯하게 내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떠들었다.

“뭐, 방법이 있나. 때 되면 짐 싸서 나오든가 아니면 살길 미리 찾아 두든가. 둘 중 하나지. 하루는 퇴근하고 나서 혼자 있는데 그날따라 미치겠는 거야. 막막하고 불안하고 외롭고 서럽고. 없는 주제에 거창하게는 못 하고 라면 끓여 놓고 소주 한잔하면서 달래는데 그게 더 처량해. 그때 틀어둔 TV에서 뉴스가 하더라고? 마약 사건이 터졌대. 그 사건, 기자님도 아마 아실 거야. 각성제 투약하고 난교 파티하던 여자가 경찰서 찾아가서 자수한 사건. 그 여자가 인터뷰하는데 그러더라고? 각성제란 것이 딱 한 번만 투약하면 바로 중독된다고. 나도 보통 놈은 아니지. 그 여자 얘기를 듣고 머리가 번뜩하는데, 이야, 이 각성제라는 것이 아주 대단한 아이템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 내가 그 뉴스 보고 딱 한 시간 만에 구했어요, 각성제를. 구한 방법? 인터넷에 다 나와 있던데? 기사 보면 다 적혀 있어, 그쪽 업계에서 각성제를 종류별로 어떻게 부르는지부터 구하는 방법까지. 에이, 중학생도 자급해서 투약하는 세상인데. 그다음에는 SNS에서 조건 만남한다는 애들 중에 반반한 애들 섭외해서 경구 투여부터 시작하고, 한 너덧 번 가지고 놀다가 정맥 투여하고. 정맥 투여 한 번 하면 절대 못 빠져나가요. 그리고 노인네들한테 그년들 공급하고 뭐, 그렇게 시작했어요, 내가. 그런데 이 짓도 오래 할 건 못 돼.”

김정민이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강화 유리에 거의 닿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비밀 얘기를 하듯 속삭였다.

“내가 기자님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노인네들 비위 맞추기가 엄청 까다로워요. 매번 새로운 애들 구하는 것도 일이고.”

김정민이 다시 멀어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깔아보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바쁘게, 치열하게 살아왔어요. 봐, 지금도 몸으로 때우고 있잖아. 근데, 누구라고? 유하경? 그따위 것이 뭐라고 내가 궁금해하겠어?”

김정민이 컥컥 대며 웃는다. 들으라는 듯 더 소리 높여 웃는다. 보라는 듯 몸을 가누지 않고 웃는다.

“개새끼네.”

내가 말하자, 김정민이 웃음을 멈추고 의자 뒤로 젖힌 고개를 바로 하고.

“뭐라고?”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식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닌 환자는 의사의 몫이지 기자인 나의 몫이 아니다. 따라서 더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뒤로 돌았다. 접견실 문으로 향하다가 한 마디는 꼭 남겨야 할 것 같아 다시 그의 앞으로 가 말했다.

“개새끼라고. 김정민, 당신. 내 눈에 진짜 망상증 환자는 유하경이 아니라 당신이야. 열등감에 찌든 피해 망상증 환자.”

김정민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쳤다. 그러나 내 모욕에 대응하지는 않았다. 그러는 대신.

“유하경 그년, 뒤졌다던데?”

라고 들릴 듯 말 듯 읊조릴 뿐이었다. 아무 말 없는 내게 그가 굳이 덧붙였다. 

“그 노인네 취향도 참 별나. 걔가 꽤 마음에 들었었나 봐? 또 찾더라고? 그래서 수소문하다가 알게 됐네? 뒤졌다고.”

“녹음기….” 

맥락에 완전히 벗어난 단어를 듣고 김정민이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다. 나는 그와 내가 공유하는 대리석에 양팔을 집고 상체를 기울여 김정민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쇠창살에 얼굴이 거의 닿게.

“내가 입봉했을 때만 해도 기자들은 녹음기를 들고 다녔어,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으니까.”

김정민이 미간을 찡그리고 고개를 경박하게 위아래로 몇 번 끄덕였다. 그 몸짓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계속 해 봐.’라고 말하는 듯했다.

“녹음기가 크기는 작은데 생각보다 무거워요,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서 우리 기자들이 얼마나 좋아한 줄 알아?”

나는 녹음 앱이 실행 중인 휴대전화를 김정민에게 보여 주었다. 김정민 또한 나처럼 얼굴을 쇠창살에 거의 닿게 가까이하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녹음 앱을 알아본 김정민이 튕겨 나가듯 멀어지며 웃었다.

“녹음? 이러니까 삼류인 거야 당신이, 이러고 있으니까…… 여태껏 내가 준 힌트를 전혀 응용을 못 하잖아!”

김정민이 소리치듯 말했다. 그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안 되겠어, 내가 하나하나 다시 설명해 줄게. 먼저, 교정 본부에서 허용하는 접견 시간이 몇 분인 줄 알아?” 

대답하지 않았다. 

“삼십 분 이내. 그런데 우리가 지금 몇 분째 접견 중인지는 알아?” 

삼십 분은 진즉에 넘었을 테다. 

“이상하지 않아?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너 때문일까?” 

김정민이 거만하게 턱을 들어 올리고 두 손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내 덕이지. 그렇게 어렵게 꼬신 어린애들을 내가 아무한테나 갖다 바쳤을 것 같아? 아니겠지? 아무한테나 주기에는 아깝잖아!”

빈속인데도 불구하고 욕지기가 치밀었다.

“내 고객들이 다들 한자리씩은 차고 계세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잡혀 와서 짭새들한테 ‘어느 자리에 앉아 계신 누가 함께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분들이 아주 난처해지실 거 아냐? 그렇지? 자, 내가 형량을 얼마나 받았을까? 대답해 봐, 이 정도는 알고 왔을 거 아냐?”

삼 년. 아직 봉우리도 맺지 못한 아이들 수십 명을 망가뜨려 놓고 김정민이 선고받은 형량은 고작 삼 년이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마약을 유통했을 경우 양형기준을 만들고 있는 양형위원회는 팔 년에서 십삼 년의 형량을 기준으로 두고 있다. 다 제쳐 두고, 김정민의 혐의 중 마약을 유통한 혐의만 놓고 보더라도 그가 선고받은 형량은 터무니없이 가벼웠다.

“그래, 삼 년. 그러면 내가 걔들 접대 시켜서 벌어들인 돈은 얼마나 될 것 같아? 내가 여기서 삼 년… 아니지, 입 다무는 조건으로 감형도 약속받았으니까 대충 이 년 정도 살다가 나가면 걔들이 벌어준 돈으로 내 남은 생이 얼마나 찬란할지, 우리 기자님 따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김정민이 자지러지듯 웃었다.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 김정민의 피해자들을 향한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참회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악은 참회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김정민은 누그러지기는커녕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떳떳할 수 있는가. 피해자들은 고통에 사무쳐 절규하다가 목숨을 끊는데 가해자인 김정민은 어떻게 이렇게 웃을 수 있는가. 나는 뒤로 돌았다. 떠나기 위해서.

“뭐야, 가는 거야? 더 있다가 가! 나 심심해! 야! 오늘 얘기 기사로 꼭 써라! 꼭 써!”

김정민이 떠나는 나의 뒤로 외쳤다. 그리고 웃었다. 나는 너무나 망연했다.


접견을 다녀와서 나는 김정민이 수감된 곳을 알려준 대형 언론사 사회부 기자인 대학 후배와 만났다. 그에게 김정민과 접견실에서 나눈 대화가 녹음된 파일을 건넸다. 녹음 파일을 들은 후배는 이런 특종을 자기가 가져도 되는 거냐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에게 가지되 확실히 조지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기사가 발행되지 않았다.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재촉했다. 그러자 후배는 기사 발행을 반려 당한다고 푸념했다. 나는 반려 사유를 물었다. 후배는 데스크에서 반려 사유도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킬(Kill) 하라고, 즉 기사를 엎으라고만 한다며 또 한 번 푸념했다. 그는 전화를 끊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선배, 김정민 그 새끼, 경찰이 덮친 날에도 별장으로 여자 실어 나르느라 회사에 없었다던데? 하여간 그 노인네들한테 존나게 충성했는가 봐.”

아마 경찰이 덮쳤다던 그날, 김정민은 하경을 실어 나르고 있지 않았을까. 주유하는 것을 깜빡할 정도로 허둥대며.

며칠 뒤, 김정민의 자살 소식을 실은 기사들이 대학 후배가 근무하는 대형 언론사를 시작으로 각 언론사에서 연이어 발행되었다. 기사는 김정민이 스스로 손목을 그었다고 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경과 같은 방법이었다.

인터넷에서는 김정민의 자살을 두고 자살이 맞다는 의견과 자살로 꾸며진 타살이라는 의견이 첨예하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동료 기자 중 몇몇은 조회수를 노리고 김정민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수도 있다는 추측성 기사를 작성해 데스크에 발행 허락을 구했다. 그러나 그들이 작성한 기사는 근거가 부족해, 발행될 경우 회사의 신뢰도를 깎을 수 있다는 이유로 모조리 반려되었다. 동료 기자들은 평소와 다른 회사의 결정에 의문을 품었다.

부장이 나를 부른 건 8월에 들어선 첫날이었다. 부장은 한참 입을 떼지 못하다가 나를 탓하듯이 말했다. 

“하필 더러운 걸 건드려서….”

나는 윗선의 결정에 따라 그날로 자리를 정리했다.

내친김에 자취방도 정리했다. 나는 고향인 천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천안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글을 맺으려 한다.

마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항상 같은 결말을 맞는다. 비극. 

그것은 마치 진리와 같아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잘나가는 연예인이든, 평범한 회사원이든, 학생이든 가리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고 발행되는 마약 사건을 다룬 기사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마약으로 시작된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극복하고 성장하는 결말이 존재한다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적었다는 점에서 장르는 판타지로 분류될 테지만, 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하경이 되기를 바랐다. 따라서 이야기의 결말이 유감이다. 김정민이 죽었다 한들 그는 단지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이자 죄를 뒤집어쓸 액받이였을 뿐이다. 김정민의 고객이자 수감 중인 그를 뒤에서 돕던 노인네들은 지금도 제2의 김정민을 구해 물정 모르는 미성년들을 탐하며 제2의 유하경을 양산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만난 김정민은 이미 제2의 김정민이었을 수도, 제3의 김정민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취재한 유하경은 몇 번째 유하경이었을까.


이 글은 유하경이라는 취재 대상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었을 뿐이다. 하경의 감정선 또한 취재일지를 토대로 적혔다. 취재 당시 하경이 드러냈던, 과거의 그녀 자신을 향한 혐오나 후회 등이 그렇다. 심지어 취재 이후의 이야기는 하경이 보낸 편지를 그대로 옮겨 적었을 뿐이다. 제목 또한 하경이 운영했던 블로그 이름에서 따왔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이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소설로 적혔음을 강하게 주장하고자 한다. 하경은 내가 그녀의 신상을 철저히 숨겨주길 바랐으니, 부디 독자분들도 내가 그러하듯 이 글을 소설로 대하여 글 속에 인용된 기사나 인물들을 찾으려 들지 않기를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이 어느 정도의 교정을 통해 세상에 나갈는지는 모른다. 세상이 나갈 수 있을는지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삭제나 수정 없이 날 것 그대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부디 하경의 뜻이 그러하듯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뜨려지기를 바란다. 유혹받고 있는, 이미 투약하고 있는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중 단 한 명이라도 유혹을 뿌리치거나 투약을 멈출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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