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부임한 사회부 부장은 의욕이 넘쳤다. 그의 채근을 이기지 못하고 취재 방향을 대한민국 마약 중독 실태에서 미성년 마약 중독 실태로 튼 것이 2023년 12월 말의 일이었다. 나는 힘에 밀려 취재 방향이 틀어진 것이 영 불만이었다. 취재는 발로 한다고 밖으로 나가 취재처를 돌아야 했으나 의욕이 죽어 자리에 앉아 인터넷만 뒤졌다. 미성년 마약 중독 실태의 검색 결과로 대형 언론사가 발행한 기사와 방송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들이 열거되었다. 우라까이 할까 고민하던 중에 얼마 전 부장이 대형 언론사의 기사를 우라까이 한 후배 기자에게 노트북을 던진 일이 떠올랐다. 부장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후배를 옆에 두고 하루 종일 갈궜다. 고민을 멈추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한파가 아직 물러가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다고 마냥 골딱지를 부리고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이기에 점심시간쯤, 그나마 기온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취재처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하염없이 넘기던 검색 결과 페이지 번호는 사십에 이르렀다. 그때 ‘장기 매매도 실패한 인생’이라는 이름의 블로그가 눈에 들었다. 블로그는 개설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방문자 수와 조회수가 처참했다. 게시판에는 마약 금단 증상에 대해 적은 열 건 남짓의 글이 보였다. 금단 증상을 견디며 정신없이 적었을 글 임을 감안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필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나갔다.
언론사에 갓 입사한 잔바리, 즉 신입 기자들 모두가 받는 기사 작성 교육에 따르면 기사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야마, 즉 주제를 담은 글이어야 한다. 그에 더해 기자가 고른 야마가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도꾸다이, 즉 단독보도라면 그것은 기삿거리로 더할 나위가 없다. 지금은 어떻게 교육받는지 모르지만, 나 때는 그렇게 배웠다. 내 눈에는 ‘장기 매매도 실패한 인생'이라는 이름의 블로그가 그렇게 비쳤다. 기삿거리로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나는 틀어진 취재 방향을 멋대로 바로잡았다. 블로그 주인에게 스스로를 소설 쓰는 작가라고 소개하며 취재의 의사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답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블로그는 잊었다.
1월 15일 월요일을 기억한다. 그날 평소보다 이르게 지하철이 출발했고 나는 그 안에 몸을 싣지 못했다. 부장은 출근 시간이 지나서야 꾸물꾸물 얼굴을 들이미는 나를 자리로 불러 그간 여러모로 뭉그적거렸던 나의 태도를 꼬집으며 한 번, 당장이라도 기삿거리를 물어 오라고 또 한 번, 두 번이나 지랄을 떨었다. 쫓겨나듯 회사를 나와 근방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는 주문한 따뜻한 카페라테 대신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나왔고 다시 받은 카페라테는 급하게 만들었는지 미지근했다. 하루의 운세가 나쁜지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면 하는 대로 모조리 어그러질 것 같아 카페에서 잠자코 미지근한 카페라테를 마시던 중에 휴대전화 알림이 울렸다. 블로그 주인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블로그 주인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는 회사 인근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사람이 많은 장소가 도리어 편하다는 블로그 주인의 의견을 고려해 규모가 큰 카페를 골랐다. 카페에 들어서며 블로그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멀리 구석 자리에서 한 여자가 전화를 받으며 일어났다. 그녀를 마주 보고 앉아 있던 중년과 노년의 기로에 있는 여자도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여자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명함을 건넸다. 회사에서 제작해 준 언론사 명함이 아닌, 입봉하고 얼마 뒤 취재를 원활히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만들어 둔 명함이었다. 이름, 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와 회사명을 뺀 주소가 적혀있는 명함으로 기자라는 신분을 숨길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해 왔다. 경험에 따르면, 취재 대상들은 내가 기자라는 신분을 숨겼을 때 보다 솔직하게 취재에 임했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고 취재를 진행하면 취재 대상은 거짓으로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꾸며낸 답을 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겠다 싶은 질문은 피하려 들었다. 심지어 취재가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도중에 자리를 뜨기도 했다.
두 여자 중 어린 쪽이 명함을 받았다. 명함을 받은 여자는 자기를 유하경이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그녀의 옆에 선 중년과 노년의 기로에 있는 여자를 자기 어머니라고 소개했다. 하경의 어머니는 ‘그럼, 이야기들 나누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마시던 음료와 가방을 챙겨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났다. 나는 하경의 어머니가 앉았던 자리에 하경을 마주 보고 앉았다.
하경은 막 염을 끝낸 송장과 같이 말랐다. 마른 탓에 눈두덩이 패여 눈을 부러 크게 뜨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짧게 자른 머리는 성글었다. 머리칼에 제품을 바른 듯했으나 푸석함은 가려지지 않았다. 머리칼만큼 메마른 피부에는 울긋불긋하고 검은 흉터가 보였다. 흉터의 크기가 크고, 그 수도 많아서 낯빛이 검붉게 보였다. 입을 벌릴 때마다 부러진 이와 심지어는 아예 이가 탈구되어 치열 사이로 비어있는 틈이 보였다. 그녀는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지 잔 든 손을 덜덜 떨었다.
첫 번째 취재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와서 하경의 이야기를 기사로 작성했다. 참신하다는 칭찬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반려였다. 하경의 나이가 미성년이 아니라서 자극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반려 사유였다. 이어서 부장은 발제하지 않고 취재부터 강행한 나를 문책했다. 다행히 징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취재 중지 및 다른 기삿거리를 물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으나 고집이었는지, 반항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새로 부임한 부장을 향한 토착 기자의 텃세였는지, 나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서 하경과 두 번째 취재를 약속했다.
하경과 첫 번째 취재 후로 이 주에 걸쳐 두 번의 취재를 거듭했다. 그리고 네 번째 취재가 약속된 토요일이었다. 카페에서 약속 시간에 늦는 하경을 기다렸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하경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장에게 깨지면서도 하경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화하겠다던 나를 두고 그녀는 잠적했다. 그동안 들인 품이 아까웠다. 허탈하고 배신감이 들었다. 나는 미련 없이 카페를 나왔다. 나오면서 하경과 그녀의 이야기를 잊기로 했다.
하경의 취재가 엎어지고 새로운 기삿거리를 물색하는 척 농땡이를 부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약 이 주 뒤인 3월 4일 월요일, 회사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으레 그렇듯 별 볼 일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광고거나 카드사의 지로일 줄 알았으나 그것은 하경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편지는 마지막 취재에서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잠적한 그녀가 괘씸해 쓱 훑고 책상 서랍에 구겨지든 말든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 두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하경은 두 번째 편지를 보내왔다. 그것은 뜯어보지도 않고 서랍에 처박았다.
3월 27일은 취재로 바빴다. 발제가 지면에 잡혀 미성년 마약 중독자들을 취재했다. 나는 점심시간쯤 회사를 나갔다가 퇴근 시간을 넘겨서 돌아왔다. 취재일지만 적당히 정리해 두고 퇴근할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하경이 보내온 세 번째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이 여자 참 끈질기다 싶으면서도, 뭐 그리 할 말이 많아 연거푸 편지를 보내오는지. 그래, 읽어나 보자는 심보로 책상 서랍에 넣어 둔 편지를 찾았다. 편지는 파쇄기까지 가기 귀찮아 아무렇게나 넣어 둔 서류들과 엉겨있었다. 책상 위에 순서대로 놓고 첫 번째 편지부터 읽어 나갔다.
다음날부터 나는 하경의 취재일지와 그녀가 보내온 편지를 옮겨 적기 시작했다. 퇴근하고도 홀린 듯 하경의 이야기를 적어나갔다. 세 번의 취재일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구상하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하경으로부터 온 편지들이었는데, 손 글씨로 적어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이 많아 그녀가 블로그에 적었던 글보다 가독성이 떨어졌다. 사건의 배열도 시간순이 아니라 떠오르는 순서대로 적었는지 어수선했다. 이 또한 마약의 후유증이었을까. 나는 그녀가 쓴 편지를 최대한 온전히 옮겨 적고자 애썼다. 다만, 구어체로 적힌 편지를 문체로 바꾸었고 하경의 출신지를 내 고향인 천안으로 바꾸었으며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을 누구도 특정할 수 없도록 가명으로 바꾸었다. 사건도 시간순으로 재배열했다. 그러면서 네 번째 편지를 기다렸다.
네 번째 편지는 세 번째 편지가 도착하고 이 주 만에 도착했다. 네 번째 편지에는 명함 한 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누가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 명함이었다. 명함에 적힌 이름은 김정민, 직급은 과장. 명함을 옆에 두고 나는 네 번째 편지를 읽어 나갔다. 편지의 마지막에 하경은 내 신분이 기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동시에 명함을 보내는 이유가 명함의 주인일지도 모를 J의 실체를 밝히고 처벌해 달라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고 적었다. ‘결단코' J의 실체를 밝혀내 처벌해 달라는 것처럼 읽혔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손에 든 명함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분명 종이 쪼가리 한 장의 무게는 아니었다. 이날은 퇴근이 늦었다.
하경의 네 번째 편지가 도착한 다음 날, 채근하는 부장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미성년 마약 중독자들의 취재 내용을 기사화해서 보고했다. 그러고 다시 하경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하경의 이야기는 A4용지 110장 분량의 글로 적혔다. 기사로서는 터무니없이 길고 관심을 끌기에는, 부장의 말에 따르면, 자극도가 떨어졌다. 적은 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일단은 노트북 바탕화면 한구석에 두었다.
편지에 동봉되어 있던 명함. 그 명함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나는 서울로 향했다.
마주 선 건물의 꼭대기에는 명함에 적힌 기업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그 앞에 서서 버티자니 사람이 아닌 건물을 상대하는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일단 주변에서 죽치면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하는 대책 없는 계획을 세웠고 실행을 위해 사옥의 맞은편 카페로 향했다.
음료를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정오가 지나자 사옥에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지듯 나왔다. 그들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그중 한 갈래가 내가 자리 잡은 카페로 들어왔다. 명함에 인쇄된 이름은 김정민, 중성적인 이름이었다. 대기업 과장이라면 아무리 이르게 승진했다고 하더라도 삼십 대 후반에서, 많게는 사십 대 중반 사이일 것이었다. 그 나이대 사람들을 훑었다. 그러나 이내 잘못 짚었음을 깨달았다. 취재 당시 하경의 말에 따르면 J는 겉보기에 굉장한 동안이라고 했으니, 그 나이대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삼십 대 초중반처럼 보이지만, 아랫사람을 대동한 이를. 나는 이미 명함의 주인인 김정민이 J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서울 카페로 출근하기를 사흘째였다. 서울로 향하던 첫날, 명함의 주인을 찾는 데 할애하고자 마음먹은 시간도 사흘이었다. 연이틀을 아침, 저녁으로 두 시간씩이나 기차에서 보내는 것이 영 고역이었다. 카페에서 저녁 8시까지 죽치는 것도 좀이 쑤셔 할 일이 못 됐다. 매일 몇 번씩이나 전화를 걸어 내 소재를 묻는 부장에게 둘러댈 변명거리도 동났다.
정오가 지나자 지난 이틀과같이 사옥은 토하듯 사람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쏟아진 사람들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그중 한 갈래는 어김없이 카페로 향했다. 한가로웠던 카페는 이내 정장 입은 회사원으로 미어졌다. 그들 중 하경이 묘사한 J와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았다. 사흘째 내리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었다. 이제는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가장 먼저 그들을 제했다. 그다음에는 J의 나이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제했다. 멀끔하지 못한 사람들 또한 제했다. 그때, 이미 카페에 있는 여러 무리보다 조금 늦게 한 무리가 카페에 들어섰다. 그 무리는 다른 무리보다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각 무리에는 수뇌가 한 명씩 속해 있었는데 그들은 무리에서 가장 연장자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무리의 주목을 받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무리 또한 한 명의 남자에게 주목하고 있었는데 그는 다른 무리의 수뇌보다 현저히 젊어 보였다. 무리의 한 명이 그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진짜 과장님이 쏘시는 거예요?”
남자의 직책은 과장, 명함의 적힌 직급도 과장. 남자를 훑었다. 취재 당시 하경이 묘사한 바와 같이 한 올 삐져나오지 않게 올린 머리, 쌍꺼풀이 없는 옆으로 길게 째진 눈, 수술한 듯 부자연스럽게 높고 가는 콧대, 치솟은 입꼬리. 하경은 특히 입꼬리를 강조했었다. 남자의 피부는 주변 여자들보다 번들거렸다. 키는 나보다 5, 6센티미터 정도 작아 보였으니 170 후반. 구두의 굽을 빼면 170 중반 정도 될 것이고 허리둘레가 30인치도 되지 않아 보일 만큼 말랐다.
남자의 그렇다는 대답에 무리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그 소리가 소란으로 들렸다. 거슬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리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 카페를 나왔다. 회사로 향했다. 입에서 쓴맛이 났다.
내 기사의 주인공인 미성년 마약 중독자들이 재판을 받았다. 나는 재판을 방청했다. 그들 또한 하경과 같은 판결을 선고받았다. 치료 조건부 집행유예. 재판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온 나는 그들의 재판 내용을 기사로 작성해 부장에게 후속으로 내기를 건의했다. 부장은, 대중들은 그들이 선고받은 판결 따위는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그들이 세간의 씹을 거리로 남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들렸다. 과연, 기자 생활 십수 년의 대가로 따냈다는 것이 고작 삼류 지방지의 부장 자리임에도 그것을 자랑으로 아는 그다웠다.
같은 무렵, 유명 여가수가 마약 투약을 의심받았다. 각 언론사는 저마다 사건을 최초 보도한 언론사가 미처 캐내지 못하거나 놓친 사실을 주우려고 날뛰었다. 내가 몸담은 지방지 동료 기자들은, 그들 역시 기자임에도, 취재는커녕 그녀가 그럴 줄 몰랐다느니 알았다느니 철저한 독자의 입장에서 떠들어 댔다.
얼마 뒤, 여가수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는 방법으로 목숨을 끊었다. 투약 의심을 피하려 했는지, 의심이 사실이어서 그 사실을 영원히 숨기려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뚜렷하게 밝혀진 자살 동기는 없었다. 그러나 세간은 그녀가 자살로서 투약 사실을 인정했다고 여기는 듯했다.
하경을 취재한 후로 마약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 관심을 끄는 미끼가 되었다. 하루에도 십수 번씩 마약을 다룬 기사를 검색했다. 관련 기사가 눈에 띄면 내용이 어떻든, 주인공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정독했다. 유명 가수의 자살 사건을 향한 세간의 관심은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그에 힘입어, 같은 사건에 대해 같은 내용을 담은 기사가 언론사만 바뀌어 매일 같이 무분별하게 발행됐다. 그런 기사들 사이에 묻힌 기사 한 건이 눈에 들었다. 소재가 하경의 출신지와 같은 지방지에서 발행된 기사는 이십 대 여성 마약 중독자의 자살을 헤드라인으로 걸고 있었다. 기사 속 이십 대 여성은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집, 자기 방에서 손목을 긋는 방법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친모가 그녀의 사체를 발견했고 친부가 경찰에 신고했다. 친부는 경찰 조사에서 딸이 마약을 투약한 경험이 있다고 진술했다. 기사 속 여성의 나이는 만 나이로 작성되었을 테니, 갓 서른이 된 하경도 포함된다. 기사 속 이십 대 여성이 하경이 아니길 바랐다. 알아보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기업 과장이 여성들에게 마약을 투여해 중독시킨 후 그들을 성매매에 이용했다는 기사를 본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오월 말이었다. 나는 기사 속 대기업 과장이 J, 김정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기사는 대형 언론사에서 단독으로 발행됐다. 기사를 발행한 언론사와 같은 곳은 아니지만, 그와 급이 같은 대형 언론사 사회부 기자로 일하는 대학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대기음을 들으며 나는 책상 서랍에 보관해 둔 김정민의 명함을 꺼내어 바라보았다. 후배가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