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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수집가 LSH Oct 26. 2022

역사와 문화가 있는 오래된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다

행궁동을 선택한 이유

본격적으로 집 찾기에 돌입했다. 처음부터 지역을 굳이 한정해 두지는 않았다. 수도권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에 뭉뚱그려 수도권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에 한정을 두지는 않지만 '동네'를 고르는 데는 나만의 조건이 있었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


십 년이 넘게 오랜 타지 생활을 하다 가끔 한국을 방문할 때면 점점 '한국적인 것'에 매료된다. 강남이나 여의도는 내가 살고 있던 도쿄와 다름을 크게 느낄 수 없는 모던한 도시의 모습이라 지루하기만 했다. 오히려 오래된 역사와 문화가 있는 종로 일대나 이태원, 합정동 같은 곳이 좋았다. 언젠가 한국에 살게 되면 이런 사람 냄새나는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행궁동의 첫인상


"여긴 왜 이렇게 점집이 많아?"

수원 토박이인 남편이 나를 처음 행궁동에 데려갔을 때는 몇 년 전 추운 겨울이었다. 같이 길을 거니는데 신점, 사주, 꽃도령, 애기보살, 처녀보살 같은 스산한 간판이 깃발과 함께 걸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여기 원래 점집 골목이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진 거야."

한국의 겨울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날은 구름 낀 흐린 날이라 그런지 유난히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였다. 따뜻한 쇼핑몰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도 귀찮아져서 그냥 손을 잡고 좁은 골목길을 속속들이 다니며 산보를 했다.

달고나도 사 먹고, 네 컷 사진도 찍어보니 조금씩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바퀴 달린 카트를 끌고 가는 할머니들의 모습도 정겨웠다. 조금씩 걷다 보니 저 멀리 성곽길이 보인다. 가까이 가니 수원의 사대문도 보인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라 느꼈던 동네가 새롭게 보인다.

성곽길 근처 장안문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정지영 카페. 구옥을 개조한 이곳은 행궁동의 터줏대감 같은 카페라고 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따뜻해진 공기에 적응하려는 듯 몸이 부르르 떨렸다.

너무 추워서였는지 시간이 애매해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조용히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내내 수다를 떨었다. 창밖 겨울 풍경이 아름답다. 아마 그때 나는  동네를 사랑하게   같다.


두 번째 방문은 따뜻한 봄이었다. 행궁동은 역시 봄, 가을에 와야 하는 곳이다. 바깥을 걸어 다녀야 하는 이 동네는 여름에는 너무 지치고 겨울에는 너무 혹독하다. 살랑거리는 날씨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피부에 행복을 스며들게 해 준다. 정처 없이 걷다 팔달산으로 올라가 행궁동 고유의 토착적인 풍경에 시선을 던져보았다. 그래. 나는 확실히 이 동네가 좋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빈티지한 동네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동네', 그리고 '개조할 수 있는 구옥 주택'이라는 내가 원하던 집의 조건을 모두 다 갖춘 곳은 수원 행궁동에 있었다. 사실 조건에 맞아서 결정했다기보다는 같은 조건의 다른 곳이 있었더라도 나는 행궁동을 택했을 것 같다. 공간 디자이너로서 행궁동은 동네 자체로부터 여러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행궁동에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놀라울 공간들이 곳곳에 많다. 오래된 것을 간직하고 있지만 감각은 그 어느 곳보다 젊다. 레트로 한 동네를 좋아한다면 거주하지 않더라도 빈티지한 매력이 있는 행궁동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이 있다.

나라가 선진화될수록 빈티지, 바다 스포츠, 고양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미국,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한국 또한 빈티지, 서핑, 고양이가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데 이런 유행이 어쩌면 내가 행궁동을 찾아오게 된 방향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행궁동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그 시계방향은 정확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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