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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Sep 22. 2024

나는 어쩌면 지금 이대로가 좋은 걸까

컴포트 존이 너무너무 두꺼운 나



오늘 하루는 이상하리만큼 힘이 없었다. 밥 먹고 유튜브 보고 자고를 반복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다. KBS 다큐 '하드코어 서울'. 1부에서는 서울에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어 지역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2부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와 사는 지방 출신 청년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역삼, 선릉 일대의 직업인들(직장인 뿐 아니라 배달기사, 자영업자까지 포함하니까 '직업인'이라고 칭하기로)을 72시간동안 지켜본다. 3년 전까지만해도 나도 이 청년들 중의 하나였지.. 특히 아침 시간대의 풍경을 보고있노라니, (다소 쾌쾌한) 서울 출근길의 공기가 다시 느껴지는 기분이다.


갑자기 그리워졌다. 지방에 살고있는 지금, 일주일에 한번은 피겨 레슨과 함께 이런저런 문화생활을 위해 서울에 방문한다. 그때마다 '역시 서울엔 사람이 많고 차도 많고 번잡해서 싫어'라며 혀를 내두르지만, 여기만큼 삶에 대한 의지와 꿈에 대한 갈망이 큰 곳은 없을거야.. 지금 다니고있는 직장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진작에 깨닫고 자신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확장해나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지.. 물론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도 자기 일 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다만 서울 같은 대도시와는 '밀도'가 다를 뿐.


무조건 서울로 돌아가고 싶고, 무조건 서울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10년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그리고 10년이면 충분히 재밌는 거 다 즐겼다고 생각한다). 지금 살고있는 이곳에서 심적으로 안정을 찾았고, 좀더 나은 주거 환경을 얻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냥, 저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인생에 진심인지,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를 보면서 지금 내 위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특히 공유 주방에서 치킨집을 하는 사장님(16분 55초)을 보니 더 그렇다. 조금은 무리하더라도 강남으로 와서 기회를 잡고자 하는 의지. 나는 과연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의지를 갖고 몸을 좀 더 움직이면서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결혼하면서 고향에 돌아온 뒤로는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몸이 편해지니 간절함이 없어졌다. 서울에서 혼자 살며 직장 다닐때처럼 치열하지 않아도 당장 먹고 사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으니까. 이대로 남편에게 의지하며 살아도 내 인생은 나쁘지 않겠다, 내가 집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한다고 뭐가 바뀌냐며, 어떻게보면 더이상 추진력을 발생시킬 연료가 남아있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간절함도 없이 누구나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면 나는 발전이 있을까? 추석 연휴라는 이유로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그저 먹고 마시고 놀기나 하면서 말이다.


몸이 편해서 간절함이 없어진 것을, 달리 생각하면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까 정말 이것저것 하고싶은 거 다 해보면서 성공의 가능성을 더 많이 열어둘 수 있다. 그렇다고 여태까지 해왔던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 생뚱맞게 시작할 수는 없으니, 내가 만들고싶은 것에 대한 '컨셉'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이루고 싶은 건 도대체 뭘까, 애초에 내가 무엇을 통해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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