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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싶지 않은 천재 소녀

꿈마저 사치인 빈민가 아이들

by 배우는 배우

무한 경쟁 사회에서 기왕이면 더 똑똑하게 자녀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여느 부모에게나 있을 법하다. 그러니 방과 후 학교 앞에는 시간 맞춰 학원 차가 즐비하고, 학원 문턱이 닳도록 아이들이 그곳을 드나드는 것 아니겠는가. 성인보다 더 바쁜 일과를 소화하는 요즘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참 앞서 더 똑똑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뒤처지지는 말라는 경고와 같은 압박이 느껴져 안타까울 정도다. 자신의 몸보다 한 참 큰 책가방을 꽉 채워 거의 땅에 끌릴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메고 다니는 아이를 보고, 너무 놀라 몇 번을 뒤돌아본 적이 있다.


지금의 무한 경쟁 사회는 성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압박한다. 더 똑똑하고 더 잘나고 더 돈이 많아야 한다고. 더 예뻐야 하고 더 키가 커야 하고 더 관심받아야 한다고. 그런데 여기, 이미 똑똑하게 태어났는데도 ‘똑똑하고 싶지 않다는 한 소녀’가 있다. 소녀의 기막힌 사연을 들어보자.

2022년을 살아가는 9살 소녀 ‘아누자’는 언니와 함께 공장을 다니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린 소녀가 수학 천재인 것을 그 주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소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린 소녀에게 사회적 계층을 논하며, 원래는 너 같은(가난한 길거리) 아이는 받지 않지만, 유난히 똑똑한 너이기에 기숙학교 입학을 제안한다는 한 선생은 소녀의 재능은 분명히 한눈에 알아봤지만, 아무래도 소녀의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가족을 제외한 외부인으로는 유일하게 소녀의 재능을 아까워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보고자 하는 그 마음만은 진심이라는 것이다.


소녀의 재능을 키워주고픈 하나뿐인 언니 ‘팔락’은 동생의 기숙학교 입학을 추진하고 소녀를 시험장으로 보내려고 애쓴다. 시험장에 간다면 기숙학교 입학은 떼놓은 당상일 만큼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니까. 그런데 소녀는 시험장으로 향하는 아침, 머뭇거리며 가던 발길을 멈춰버린다. 누가 봐도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소녀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소녀의 눈은 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아누자의 얼굴이 화면을 꽉 채울 때 여러 가지 마음이 복합적으로 관객에게 스며든다. 누가 이 소녀의 발목을 붙잡아 세웠는가. 무엇이 이 어린아이가 꿈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는가. 우리는 아누자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누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3월 곧 열릴,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영화 부문 후보작인 영화 <아누자>는 인도의 길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인도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어떠한지 어린 소녀의 삶을 통해 짧지만, 통찰력 있게 그려낸다. 단 22분의 상영 시간이면 충분해 보인다. 영화를 통해 문제의식을 드러낸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참여까지 촉구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엔딩 장면에서 망설이는 소녀를 등 떠밀어 시험장으로 보내고 싶어 지니까. 그런데 또 소녀가 왜 망설이는지도 알 것 같아 마음이 아린다.

단편 영화 곳곳에는 인상 깊은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단돈 40루피라고 언니와 둘이 길거리에서 아무리 외쳐도 팔리지 않던 새 가방을, 혼자 백화점에 들어가 400루피에 하나도 아닌 무려 두 개나 팔아치우는 능력자가 바로 아누자다. 40루피를 외치던 소녀는 백화점에 들어가 진열된 다른 제품들을 본 순간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시세를 파악했다. 그러곤 감각적으로 가격을 400루피로 올려서 외친다. 순식간에 가방 2개를 800루피에 판 것이다. 이 금액은 도대체 어떻게 구해야 하나 걱정하던 400루피의 시험비를 내고도 남는 돈이다. 찰나와 같이 스치는 짧은 이 장면으로도 감독은 소녀의 재능에 함의된 뛰어난 감각까지 영리하게 연출했다. 덧붙여 경제적 여건으로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듯, 시험장에 갈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준다.


어느 날 소녀가 언니에게 묻는다. 똑똑하고 싶지 않으면 어쩌냐고. 이제 현실과 꿈 사이에서 아누자의 선택이 남았다. 영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아누자를 도울 수 있는 건, 아누자 자신과 우리뿐이다. 세상 모든 아누자의 꿈을 응원하며, 그를 돕는 손길이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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