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아들의 파괴적인 행동과 그가 저지른 끔찍한 사건의 잔해 속에서 엄마는 무너진 집, 타인의 적대적인 시선, 자신의 내면을 갈가리 찢는 죄책감을 껴안고 살아간다. 이들 사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들은 아들 대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자식 키우기가 이토록 힘들다. 쉽지 않은 영화임은 확실하다. 영화가 묘사하는 모성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는 익숙한 이미지와는 다르다. 엄마 에바(틸다 스윈튼)는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에게 일방적인 애정을 쏟지도, 끊임없는 용서를 베풀지도 않는다. 그녀의 모성은 사랑과 증오, 연민과 절망이 얽혀 있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다.
우리는 종종 범죄를 저지른 자의 어린 시절을 분석하며, 그 악행이 환경 때문인지, 타고난 본성 때문인지를 논쟁한다. 하지만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아들 케빈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에게 적대적이었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말투는 비아냥거리며, 걸음마조차 늦게 뗐다. 엄마의 무의식적 거부감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히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자란 것일까.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우리는 뭐라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마치 영화처럼.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된다. 케빈은 자신이 엄마에게 원치 않는 존재였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엄마의 애정을 받기 위해 착한 행실로 애쓰는 대신, 그녀를 증오하고 도발함으로써 자신을 각인시키려 했다. 결국, 그의 가장 극단적 선택인 마지막 참극은 엄마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기 위한 마지막 메시지처럼 보인다.
영화는 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모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섬세하게 탐구한다. 모성과 악에 대한 통념을 흔들고, 본능과 환경의 경계를 질문하며, 사회가 어떻게 책임을 분배하는지를 파헤치는 철학적 탐구다.
영화의 가장 도발적인 순간은 에바가 케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할 때다. 에바는 출산 후에도 아이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남편은 이를 부정하고 이상적인 가족의 틀을 유지하려 하지만, 에바는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자신을 향한 분노를 키워가는 것을 직감한다.
이 영화를 두고 '사이코패스'와 '모성 신화'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논쟁이 오간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영화를 다 담기에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전통적 모성 신화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존재를 그린다. 그러나 영화 속 에바는 그 기대에 맞춰 살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애쓰지만, 본능적으로 밀어내는 감정 역시 억누르지 않는다.
영화를 잘 들여다보면 케빈의 범죄 이후, 대중은 아빠가 아닌 엄마를 주로 비난한다. 이것은 사회가 그녀에게 강요하는 어떠한 죄책감일 것이다. 마치 그녀가 제대로 된 모성을 발휘했더라면 애초에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에바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모성 신화'가 만들어낸 억압의 초상이자 버거움일 수도.
영화 후반부 에바는 감옥에서 케빈을 마주한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왜 그랬어?" 케빈은 말한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이는 영화가 던지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동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악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순간이 더 많다. 심지어 영화는 케빈을 단순한 살인자로 위치시키지 않았다. 영화 속 케빈은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애정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존재로 자리했다.
영화의 마지막 에바가 케빈을 찾아간 것은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희미한 유대감이었을까. 이 장면에서 에바가 케빈을 껴안는 것은 용서와 사랑이었을까. 두 사람 사이 끝없는 투쟁에 대한 일종의 정전(停戰)일까. 모든 것을 상실한 상태인 그녀는 그저 아들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듯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에바의 껴안음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어쩌면 에바의 마지막 포옹은 우리가 모성에 대해 가진 단순한 정의를 흔들며, 사랑이란 때로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영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온 것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만이 남았다. 악은 타고나는가. 아니면 길러지는가. 모성은 본능인가. 아니면 사회적 환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