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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요”

비밀스러운 예술가이길 원하는 유명한 그녀의 이야기

by 배우는 배우

1935년생인 그녀는 지금도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자신을 마치 큰 사람처럼 만들려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1966년 뉴욕 필하모닉 정규 단원으로 고용된 최초의 여성 연주자인 그녀는 남성들만 가득한 곳에서 탈의실이 마땅치 않아 홀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를 뽑은 지휘자는 전적으로 음악에 몰입하는 경이로운 집중력을 칭찬했으며, 그녀는 자신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며 음악 자체를 사랑했고 보조연주자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인생을 충만하게 즐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곧 90세인 그녀는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며 바쁘게 생활하는 기적을 이루어가고 있다.


2025년, 곧 다가올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부분 후보에 오른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The Only Girl in the Orchestra>는 더블 베이시스트 ‘오린 오브라이언(Orin O'Brien)’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녀는 옛 서부 스타 조지 오브라이언(George O'Brien)과 유명 여배우 마거릿 처칠(Marguerite Churchill)의 딸이기도 하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갈망하고 즐겼던 부모가 나이가 들어 점점 이목을 끌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걷는 괴로움을 지켜본 그녀는 정작, 타인의 이목을 끄는 게 싫어 피해 다녔다고 한다. 그녀의 엄마는 늘 남의 눈에 띄어야 하는 삶을 강조했지만, 그녀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도드라지지 않고 ‘수많은 남들 사이에 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행복하게 말한다.


주연도 독주자도 아닌 그냥 한 섹션의 일원이었다는 그녀는 최초의 여성 단원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모든 이목이 쏠리는 게 때로 민망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보다 큰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며 고요한 내면의 확고함을 가질 수 있었고 살아있다는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만족감과 심리적 해방감을 음악 연주에서 느끼며 오로지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The Only Girl in the Orchestra | Official Trailer | Netflix

이 작품의 감독인 오린의 조카는 어렸을 적부터 고모를 바라본 동경의 시선으로 영화를 그려냈다.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한 여성이자 탁월한 연주자의 일상을 호감으로 담아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오린은 그조차 약간 불편하다는 듯 어떠한 꾸밈과 포장도, 더해질 주목도 그리 반기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제자들과 연주하며 그녀는 말한다. 더블 베이시스트는 ‘두드러지지 말고 탄탄하게 잘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외부의 그 어떠한 시선과 관계없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여 자신의 예술을 창조해 가는 그녀의 묵직한 한마디는 마치 사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전히 비밀스러운 예술가이길 원하는 잘 알려진 한 연주자가 말한다. ‘모두가 장군이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군인이 되어야 한다’고. 그런데 장군보다 더 장군 같은 군인을 우리는 종종 목격해 왔다.


좀 더 두드러지게 관심받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시대, 영화는 ‘우리 각자의 인생 그 자체로 각각의 멋진 영화’가 이미 상영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 아닐까.


'한경 아르떼'와 '오마이뉴스'에 [이언정의 시네마테라피] 영화 칼럼 연재 중

아르떼 https://www.arte.co.kr/stage/theme/4150199/list

오마이뉴스 https://omn.kr/2br5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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