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정의 시네마테라피] 영화 <원더>
“옳은 것과 친절한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선택하세요.”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이해와 친절을 베풀 줄 알기를 영화는 말한다. 현재 재개봉 상영 중인 영화 <원더(Wonder)>의 이야기다. 남들과 다른 얼굴로 태어난 소년, 어기 풀먼(제이콥 트렘블레이)의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따뜻한 성장 서사를 그리는 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 스토리를 넘어,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조명하며 ‘친절’이라는 작은 가치가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파급력을 그린다.
특히 스티븐 크보스키(Stephen Chbosky) 감독의 연출은 인물들의 다층적인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며, 각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영화는 어기의 시점에서 출발하지만, 이후 어기의 누나 비아, 친구 잭 윌, 여학생 미란다 등 다양한 인물의 관점으로 전환된다.
어기의 외형적 특수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인물들이 각자의 고유한 상처와 내면의 갈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아는 동생 어기에게 집중된 부모님의 관심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묵묵히 감내하고, 잭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진심과 체면 사이에서 갈등한다. 인물들의 다양한 시선을 교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영화는 ‘이해’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형상화한다.
현대 사회는 이해보다는 단죄에, 공감보다는 배제에 더 익숙해진 듯하다. 선천성 안면 기형을 가진 소년 어기의 낯선 얼굴은 놀림과 소외를 불러온다. 현실에서도 외모, 장애, 나이 같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요소로 너무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행동이나 선택의 이면에 어떤 사연과 감정이 깃들어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평가하고 너무 가볍게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버린다.
크보스키 감독은 이를 서사의 중심 장치로 활용하며, 관객이 각 인물의 입장에서 상황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진정한 친절은 이해에서 비롯된다.
어기는 처음에는 우주비행사 헬멧 속에 자신의 얼굴을 숨긴 채 세상과 거리를 둔다. 외모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그에게 지속적인 상처가 되지만, 영화는 어기의 변화를 서서히, 그리고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일상의 여러 작은 순간들이 어기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는 어기의 성장을 단순한 극복 서사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상처받으면서도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내고, 상처 준 친구를 용서하며 관계를 회복한다.
이 과정에서 어기는 자신의 가치를 외모가 아닌 행동과 마음에서 찾게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기가 ‘친절상’을 받을 때, 그가 받아야 할 진짜 상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 마음’ 임을 우리는 충분히 직감할 수 있다. 어기의 성장은 관객들에게 ‘진짜 나다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외적인 모습은 사람의 일부일 뿐이며, 한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 있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하지만 아주 강렬하게 전달한다.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주인공의 성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출은 사소한 친절의 연쇄 작용을 과장하지 않고, 일상적인 대사와 행동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관객은 거창한 영웅 서사가 아닌, 작은 배려가 만들어내는 기적을 목격하며, 자신 역시 일상에서 친절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감정선을 과하게 부풀라지 않은 절제되고 세련된 연출은,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더욱 진정성 있게 만들었다.
영화는 ‘친절’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개인의 성장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설득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어기의 성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의 관점을 촘촘하게 엮어내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결말은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고, 작은 친절이 만들어낸 기적의 결실을 상징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친절’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기적은 우리 주변에서, 아주 작은 친절에서 시작된다.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한경 아르떼'와 '오마이뉴스'에 [이언정의 시네마테라피] 영화 칼럼 연재 중
아르떼 https://www.arte.co.kr/stage/theme/4150199/list
오마이뉴스 https://omn.kr/2br5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