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암댁 Mar 01. 2022

부암댁의 생각_10.동생의 고민


‘사는거 행복해?’




동생한테 문자가 왔다. 이건 또 뭐꼬... 왜?-_- 라 했더니 자기는 안행복한거 같은데 언니는 행복한것 같아서라고. 내가 행복해보이나? 했더니. 언니 하고싶은거 다 하고 산다고...


이늠자식...


뭐하나 자기 마음같이 되는 일이 없고, 해결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관두자니 그건 아니고. 진퇴양난 그런 상태 인것 같았다. 곤란했다. 뭐라 이야기 해줘야 할지 몰랐고, 말해줘도 달라질것 같지 않았다. 이건어때 저건어때 해봤지만, 뻔히 알고 있다. 여기에 알맞은 대답이란 없다는 걸.



핸드폰을 내려놓고 가만 생각해봤다. 나 행복한가? 그렇다. 왜 행복해졌지? 나 분명 몇년 전만에도 우울함 그 자체였는데. 그리고 나서 동생에게 꽃을 선물했다. 바꿀 수 없는 기분나쁜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기분 좋은 것으로 조금씩 채워가라고. 꽃이 해결해 주는 건 없지만 잠깐 바라보는 시간만이라도 기분전환하고 또 버텨낼 힘을 가져보라고.




나도 꽃을 사는 것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로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를때, 돈 만원 비싸다고 아까워할때, 매주 오천원씩 꽃을 샀다. 멍때리며 꽃을 바라봤다. 그 뒤로 나를 위한 물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갔다. 그것도 엄청 공들여서.



그냥 대충 믹스 먹어도 될것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까페와 가치관이 멋진 주인이 로스팅하는 원두를 사와서 굳이 수동그라인더로 드륵드륵 커피를 갈고 드리퍼를 온수로 다 데우고 천천히 향을 맡아가며 커피를 내려마셨다. 빵도 맛난 식빵을 사서 토스터기에 굽고 열심히 다져만든 사과 콩포트에 농후한 버터를 발라 곁들였다. 귀찮은 일이었는데, 그 귀찮음을 이겨내고 보낸 시간이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갈 힘이 되었다.




그 뒤로 열심히 귀찮음과 대충과 싸웠다. 귀찮음은 내 일상을 망가뜨리는 구나 싶었다. 귀찮음은 내가 하고싶었던 일도 다 지워버리는 구나 싶었다. 생활 곳곳에 숨어있던 귀찮음을 찾아냈다. 귀찮아 대충 했던 청소를 공들여 했고, 귀찮아 대충 했던 빨래를 하나하나 팡팡 해서 널었다. 설거지 귀찮아 안쓰던 접시들을 꺼내 썼고, 하기 귀찮아 치워뒀던 일들을 꺼내 꾸역꾸역 처리했다.




일상이 달라졌다. 하기 싫었던 것들이 그렇게 하기 싫지 않은 일이 되었다. 되려 하기 싫은 일들에 공들이다 보니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일상을 되찾고 나니 세상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짜증도 욱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보였다. 아... 난 이런걸 좋아하는 구나. 난 이런게 하고 싶구나. 난 이런 사람이구나...




일상을 좋아하는 일로 가득 채웠다. 아침에 오래 멍때리며 차를 마시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나만 아는 깨끗함을 만들고,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글과 이야기를 읽고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든다. 그런 힘으로 싫은 사람, 싫은 상황을 버텨낸다. 싫은 것도 버틸만 하다.



일상이 회사에 있고, 나보다 남을 더 신경쓰며 살아가야 하는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일상을 되찾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귀찮음을 이겨내야하는데..... 이 부분에서 막혀버렸다. 귀찮음은 누구도 무찌를 수 없는데... 오롯이 나만 할 수 있는 건데... 어쩌나...



어떻게든 귀찮음을 이겨내라고 이야기 하려다, 그저 나만 그랬던 것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동생한테는 소용없을지도 모르겠어서, 이내 말을 접었다. 검증도 안된 이야기라, 그저 보낸 꽃을 보며 잠깐이라도 기분 전환이라도 된다면 좋겠네


난 사는게 즐겁고 재미있고 그리고 행복하다 동생아.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매일 즐거운 이벤트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든일이 없어서도 아니야. 공들인 일상에서 시작되어 점차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게다가 그것을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 하고 싶구만! 힘내! 너도 곧 행복해질거여!



#부암댁의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부암댁의 생각_9.요리를 배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