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개나리가 곧 터질 것 같은 봄이 되었지만, 강원도는.. 영월 700m고지는 아직 봄을 맞이 하는 중이다. 작년 이 즈음에 왔을 때는 눈개승마가 벌써 검지만큼 자라서 눈개승마 수확으로 두근거렸다면, 올해는 아직도 뾰족머리한 새순이 조금 머리를 들이밀었을 뿐이다. 나물의 일거리는 없지만, 일거리가 없을리 없는 곳이 또 이곳. 간밤에 비가 내렸지만, 함께 헛개열매도 내렸다. 오늘은 헛개열매를 주웠다.
망경산사엔 큰 헛개나무가 5그루가 있다. 작년 가을에 스님께서 나무 밑으로 뭘 줍고 계시길래 따라 주웠는데, 이것이 포도인가? 할정도로 포도향이 나는, 이 포도처럼 생기다 만, 이 것의 정체를 여쭸더니 바로 헛개열매였다. 숙취를 자주 경험하는 나로써 숙취에 좋다던 헛개수를 자주 경험했지만(한번도 효과를 본적은 없고), 내가 마신 헛개수는 정녕 무엇이었는고? 난 포도향을 느낀 적이 없는데?! 보리차 보단 비릿한 구수한 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끓여보니 달달하고 끝에 포도향이 살짝 나는 맛이었다.
헛개열매는 숙취에 좋다고 알려져있다. 숙취로 인한 갈증을 풀어주고, 간기능을 개선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양조장 근처엔 헛개나무를 심지 말라는 이야기, 술에 헛개열매를 넣었더니 물이 되었다라는 중국의 이야기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숙취엔 헛개로는 해결이 되지 않던걸…?ㅎㅎ
헛개열매. 이런 것은 처음 받아들면 사실 대략난감이다. 요리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봤자 끓여마시는 것인데.. 과연 끓여놓으면 먹기나 할런지.. 약재란…그런 재료가 아니던가. 집에 가득한 한약재 냄새가 싫어 받아둔 딱딱한 버섯과 온갖 가지들은 고이고이 보관 중인데…하지만 헛개열매는 포도향이 너무도 좋아서 신나서 끓여보게 되었다. 독성(?)이 있어서 많이, 오래 먹으면 안된다 그러는데.. 얼만큼 많이? 얼만큼 오래? 인지 대체 알 수가 없다. 약성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것을 정량적으로 정할 수 없을텐데 말이다. 내 본능에(?) 맡겨본다. 먹기 싫을 땐 안 마시는 것으로.
작년 가을께 주웠던 헛개는 포도향 뿜뿜이었다면, 가을의 햇빛에 마르고 겨울의 눈에 촉촉해지다 떨어진 헛개는 대추향이 그윽하게 낫다. 향도 계절을 타는구나. 겨우내 달려있던 열매들이 건조함에 바짝 마른 나뭇가지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있다 봄이 되면서 부는 봄 바람에. 봄이 와서 움직인 새의 몸짓에 후두둑 땅에 떨어졌다.
향을 따라 줍는다. 방울 모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 잘 마른 것들은 흔들어보면 털럭털럭 소리도 난다. 무속인이 흔드는 방울처럼도 생겼다. 한 나무에서 떨어진 것만 한껏 주워도 바구니를 가득 채운다. 헛개열매는 매년 많이 나는 것이 아니라 2-3년에 한번씩 달린단다. 올해 이렇게 많이 주워도 내년에 못 주울 수도 있다고. 이 향, 이 감각 잘 기억해 둬야겠다.
주우면 또 떨어져 있고, 계속 떨어진다. 요놈들 때문에. 얘네들이 자꾸 헛개열매를 쪼아댄다. 줍다보면 마디마디에 상처난 부분이 있는데, 아마도 새들이 쪼아서 그런 모양이다. 방울보다는 마디가 달달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