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그것도 3월 중순에 눈이 왕창 내렸다. 추웠다. 밖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손이 시렸고, 밖에서 일하다가도 추워서 언 몸을 녹이려 한번씩 들어가야했다.
‘올봄은 유독 춥네…’
햇빛에 눈이 녹길 기다려 냉이를 캤다. 언땅에서 냉이 캐는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몸으로 이해했다. 냉이는 저번주보다 조금 더 커있었고, 향이 좀 더 진했다. 잠깐 따뜻했던 시간동안 컸겠고, 눈이내려 추워진 기간동안 향이 진해졌으려니… 냉이를 캐는 동안 햇빛에 따뜻해지려나 했는데, 매서운 바람에 코만 찔찔… 냉이를 먹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으면 금방 내려놨을텐데…의지를 부려 냉이를 한바구니 해서 내려왔다.
냉이를 캐어두고 잠시 경내를 둘러보았다. 눈 속의 나물들이 얼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얀 눈속에 명이와 눈개승마의 모습을 확인했다. 아우 추워보여.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개승마는 서리 맞은듯 축 처져서는… 푸릇한 봄의 색이 아니라 스러져가는 가을 색을 띄고 있다. 올해 괜찮은 걸까?
농부님한테 올겨울은 춥고 가물다고 들었다. 가물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어서 익숙하기도 했지만, 눈과 비가 많이 안왔다는 것은 체감적으로도 느꼈다. 그런데 올겨울이 춥다고? 난 올 겨울이 춥다고 느끼지 못했다. 한 겨울에 비싸고 무거운 롱패딩을 한번 꺼내 입어야 ‘춥구나~’하고 느끼는데 롱패딩을 한번도 꺼내입지 않았다. 좀 추우면 속에 후리스를 입고 겉옷을 걸치는데 후리스를 입었던 것도 한두번이었다. 집에서도 보통 추워서 오돌오돌 떠는데 이번엔 그런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올겨울이 춥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내가 옷의 두께로 느끼는 추위와 겨울의 땅이 느끼는 추위는 다른 건가…?
냉이를 캐보고 나서야 추위와 가뭄을 실감했다. 작년보다 냉이의 뿌리가 얇고 길었다. 가물었으니 뿌리를 아래로 아래로 내렸어야 했을 것이고, 추웠으니 뿌리를 굵게 자라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은 일이었겠구나.
아무래도 추운 올 봄, 늦은 올 봄이어서 작년은 어땠는지 사진첩 찾아보니 너무도 판이 하게 다르다. 작년엔 2월 말부터 눈개승마의 순이 뻘겋게 올라오는 것이 보였고, 올해와 같은 작년 3월22일엔 눈개승마가 이미 많이 올라와서 스님께 언제 따냐고 계속 여쭸는데, 올해는 누가봐도 아직 딸 때가 아니다. 길이적으로도 그렇고 양적으로도 올해는 어째 신통치 않다.
스님께서 작년과 올해 이야기를 해주신다. 작년엔 봄이 빨리 왔고, 많이 따뜻해서 수확량이 많아 나물을 많이 저장해 둘 수 있었는데, 올해는 겨울이 춥고 가물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나물의 색도 전과 같지 않아서 맛도 아무래도 아쉽지 않을까 싶다고.
늦었던 만큼 추웠던 만큼 어려웠던 만큼 봄에 힘껏 새순을 올려 더 진한 맛, 더 향긋한 향이 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정도가 있다는 것, 견딜 수 있을만큼 춥고 어려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 맞아.. 뭐든 적당해야지.
너무 추웠던 겨울에 이 늦어지는 봄에 나물들은 어떻게 살아내고 맛과 향을 뿜으려나?
겨울이 추웠다고, 봄이 늦는다고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겨울의 추위와 이 늦은 봄의 땅과 봄나물을 기억하고 매해 다른 자연을 느끼는 것을 즐길 수 밖에. 하지만 추운 겨울 때문에 늦은 봄 때문에 아쉽다 생각했던 것은 접는다. 그 추운 겨울에도 이렇게 늦어지는 봄에도 나물들은 영혼을 끌어올려 오늘을 살아내려 고군분투 하고 있으니까.
자. 나도 봄나물처럼 오늘을 고군분투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