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암댁 Apr 05. 2022

붉은 줄기를 타고 푸른 잎으로

저번주엔 흉흉한 바이러스의 힘때문에 못가고 잠자코 있었다. 가고싶은데 못가니 답답했다. 내 하고 싶은대로 못한다고 답답할 즈음, 망경산사에 화장실에 있는 글들을 한번 떠올렸다.



 (내것이 아닌것을 욕심냄)

 (욕심이 마음대로 안되면 나는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

(진리를 보지 못하고, 나의 그릇된 관념에 집착하는 마음)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내고,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욕심 부리지 말지어니… 또 그렇게 생각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마음을 다잡았지만 들썩거리는 이 마음... 참 다잡기 어려웠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일요일, 급히 부랴부랴 떠나왔다. 영월 예밀리에 들어서 망경대산을 올라서 그제야 머리를 무겁게 했던 것들이 싹 걷히면서 마음이 열린다. 대체 도시에서 난 어떻게 살기에 늘 두통과 답답함을 안고 사는지…내원참.



눈 부신 복수초들이 환하게 반겨준다. ‘보고싶었다우!’


늘 그랬듯 도착하여 짐을 풀고 경내를 돌아본다. 눈 속에 쌓였던 지지난주와 달리 이제 많은 순들이 올라온다. 내가 먹을 줄 아는 잎들과 내가 볼줄 아는 꽃들의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봄기운은 땅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어리디 어린 전호나물과 삼잎국화를 조금씩 따오는 것으로. 가장 겉잎을 따오라고 하셨지만, 이제 겨우 몇 잎싹 나온 전호를 뜯자니 너무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다치게 해서 자라지 않을까 땅에 딱붙어 확인하느라 목과 허리가 뻐근하고, 너무 작다 보니 뜯는게 느리고 양도 별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삼잎국화도 마찬가지. 작년에 낫으로 휙휙 베어버렸던 삼잎국화였는데, 아직 너무 어려 낫으로 베자니 내 손을 벨 상황이라 칼을 들고 하나하나 뜯어낸다. 



한웅큼 잡힐정도 뜯는데 2시간. 그래도 처음보다는 속도가 붙는다. 

처음엔 뭘 어떻게 뜯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다가, 과감하게 베어낸다. 그래도 어린 녀석들이라 한잎한잎.

이 더딘 속도 때문에 어린 전호와 삼잎국화의 모습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작년에 봤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작년에 기억했던 모습이란...

- 그늘 진곳에서 자란 전호는 더 성장이 빠르고 향이 약하고 식감이 부드러운 대신 흙향이 난다. 

- 햇빛을 보고 자란 전호는 길이가 짤막하고 식감이 질긴대신 향이 강렬하다. 

- 삼잎국화는 성장이 빠르지만 줄기와 잎이 쫀쫀하다. 


그늘진 곳의 전호를 찾아가보니 햇빛의 전호보다 크지 않다. 그늘에서 멀대같이 크는 것도 따뜻해야 가능한 일이구나.. 햇빛의 전호도 아직은 어려 식감이 부드럽고 향도 독하지 않다. 다만 시장에서 보는 전호에 비하면 훨씬 두껍고 단단하다. 맛도 물비린내가 전혀 없다. 작년에 삼잎국화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비오는데 낫들고 베느라 '이놈의 삼잎국화!'를 외쳤던 기억이 더 진하다. 올해는 전호보다 삼잎국화에 대한 기억을 더 많이 남긴다. 이른 봄의 삼잎국화는 붉은 줄기,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잎 그리고 성장했을 때보다 더 달큰한 맛인 것으로.


유독 올해는 붉은 줄기가 눈에 띈다. 


어릴때 추워서 얼굴이 퍼렇다가 조금 따뜻한 곳으로 가면 얼굴이 붉어지던 것처럼. 너무 추운 곳의 냉이는 보라색이었다가 조금 따뜻해지면 붉으스름해졌다가 날이 완전 풀리면 푸르러 지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라고 생각해본다. 추운 겨울을 나고 조금 따뜻해진 날씨에 붉으스름한 줄기를 타고 퍼렇던 잎들이 서서히 푸르러진다. 



새벽에 본 방풍나물. 반짝 따뜻함에 먼저 나왔던 잎들은 너무 추워 얼어 시들어버렸고, 그 뒤로 이어진 추위속에서도 검붉은 줄기를 내고 땅위로 올라온 방풍이 아침 서리에도 단단히 서있다.



명이나물의 줄기도 붉었구나! 다른 식물들은 아침 서리 맞아 하얀데, 강려크한 명이 나물의 잎은 서리도 녹여버렸는지 잎 안으로 이슬만 맺혀있다.



당귀. 작년에 참 맛있게 먹었더랬는데, 이 줄기도 좀더 진한 붉은 색이구나!



부지깽이. 시장에서 보는 울릉도산 제주도 산 부지깽이는 이미 털도 없는 매끈한 잎이 되었고 줄기도 오동통 두꺼워졌는데, 추운 이곳의 부지깽이는 붉은 줄기와 잔털들이 가득하다. 단지 안단지 먹어볼껄 하는 아쉬움이!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는 춥고 춥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