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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암댁 Oct 17. 2022

부암댁의 생각_12. 장; 메주부터 2021

장을 담그러 다닌지 3년차.


처음 2019년, 장맛도 모르고 가서 짜다짜다 했고, 다 만들어진 장을 받았지만 그 맛을 몰라 퍽 난감하여 여기저기 퍼주었다. 2020년에는 응? 장이 맛있네? 하며 장을 아끼게 되었다. 이 장 저 장 찍어먹어보고, 자료를 찾고 하면서 점점 장에 진심이 되었다. 욕심에 메주 만드는 법을 배웠지만, 집에 들고와 띄우는데 물음표만 잔뜩 안고 실패하고 말았다.



2021년에는 메주부터 천천히 한번 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1/6 전날부터 불려둔 콩 3kg을 1kg씩 찌고 메주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메주 3덩이는 밑에 전기장판을 깔고 선생님이 주신 토종벼 볏단을 깔고 띄우기 시작했다.



3가지 메주는 다 지멋대로 냄새를 뿜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쪘어도 1시간이라도 좀더 불린 콩이 훨씬 무르고 성형이 잘되서 그랬는지 몰라도 처음 만든 녀석은 금방 꺼먼 곰팡이가 피었고, 할머니집 냄새가 났다. 다른 둘은 하얀곰팡이가 피었고 좋은 향이 났는데 중간부터는 또 한놈은 시큼한 향이 나기 시작했고, 한놈은 이게 메주냄새라고? 할정도로 캬라멜과 같은 좋은 향이 났다.




2/3 후숙. 메주 사이에 볏단을 잘 끼우고 이불로 동동 동여매서 높은 온도로 열을 내줬다. 선생님께선 마지막 이 단계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메주가 이미 빠짝 말라버려서 그랬는지 나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한 4일 후숙을 하고 다시 햇빛을 쐬어주었다.


2/16 장담기. 후숙을 마친, 40일 정도 띄운 메주를 재빠르게 겉면을 씻어내고 말려 준비하고, 콩의 2.5배 되는 소금물 8kg를 준비했다. 소금물 농도는 18%로 맞춰서 물 6.15L 에 소금 1.35kg을 녹였다. 메주가 각각 달라 맛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여 3가지를 1.5L용기에 메주 절반씩 담고 남은 반씩은 한데 모아 담갔다.



장은 담은 다음날 부터 색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꼈다. 메주도 소금물을 머금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다행히 넘치진 않았다. 중간중간 찍어 먹어봤지만 계속 짜디짠 소금물 맛이었는데, 40일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맛이 들기 시작했다. 장에 텁텁하고 깔깔한 맛이 돌아 장 맛이 들고는 뚜껑을 자주 열어주려했다. (미생물이 숨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셨는데 유리병이라�)

4/16 장가르기. 장 담고 60일이 지나 장 가르기를 했다. 양이 적어서 수월할 줄 알았는데, 양이 적어서 되려 준비해야할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해 녹록치 않았다. 항아리에 옮겨 담아두고 싶었는데 색을 관찰하고픈 마음에 처음부터 유리병을 썼기에, 또 유리병에 담아두기로.



검은 곰팡이가 핀 메주는 내가 알던 집간장, 할머니집 냄새 나는 장이 되었다. 시큼했던 애는 장 양이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시큼한 냄새가 살짝 감돌았다. 냄새가 좋았던 메주는 장 가를때그렇게 냄새가 좋진 않았지만 처음 먹어보는 장맛이 되었다. 담아놓고 할머니 간장을 옆에 세워두고 보니 세상 하얀 장이다. 세월이 지나가면 점점 진해지겠지.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올해 메주부터 만들면서 장에 대해서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잘하고 못하고 보다도 과정을 알고나니 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콩을 고르고, 콩을 불리고, 콩을 찌고, 콩을 으깨고, 메주를 만들고 띄우고, 후숙하고, 법제하고, 장담고, 돌봐주는 그 어떤 과정도 쉬운 것이 없었다. 메주를 띄우면서 아! 콩 더 잘 고를껄, 더 충분히 불릴껄, 좀더 치댈껄, 좀 더 돌봐둘껄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디테일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자꾸 눈으로 코로 입으로 확인하다보니 내 덜렁거리는 성격을 다그치게 된다. 


콩심는 것부터 생각하면 장(醤)은 정말 온 세월을 다 품었다. 오래된 장들의 가치를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이 장 맛을 조금씩 깨우치는 길 위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장아찌를 한다고 양조간장을 하나 샀다. 원재료명에는 콩, 소금, 물 이외에도 많은 재료가 써있었지만, 가장 원재료명 길이가 짧은 장을 골랐다. 그러나 깊은 세월의 맛보다는 단맛으로 가득한 그 맛에 놀라버렸다. 담을 줄은 몰라도 사람들이 이 단 장맛이 아니라 세월을 품은 장맛을 알았으면 좋겠다. 장을 가르치고 만드시는 분들께 무한 응원을 외치며, 장의 여정은 계속된다!



#부암댁의생각 #부암댁의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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