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의 일생_ 아낌없이 주지 않는다
나물을 보러 매주 영월 망경산사 @manggyeongsansa 를 가면서 다른 나물들 보다도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던 두릅. 냉이 달래 다음으로 그나마 익숙했던 작물이기에 그렇게 매주 두릅의 나무 끝가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왔다.
날이 조금씩 풀려갈즈음 정신없이 눈개승마를 다 딸때까지도 잠잠했던 두릅이 어느날부터 나무 끝가지에 동글동글 풋사과 같이 푸르게 붉게 망울이 익더니 그것이 터지면서 웅크렸던 새순이 빼꼼 얼굴을 들어올린다. 그렇게 야들야들한 줄기와 잎은 봄 햇볕을 맡고 쭉쭉 뻗어올렸다.
올해는 갑자기 따뜻해져버린 날씨에 줄기도 쑥쑥 크고 잎도 금방 피어버렸다가, 다시 냉혹한 추위에 잎이 얼어버렸다가 다시 뜨거운 햇빛에 얼어 녹은 잎이 타버렸다가. 갑자기 훅훅 바뀌는 날씨에 두릅도 어느 장단을 맞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날씨에 지지 않는 다는 듯 자기가 힘을 낼 수 있는 만큼 힘을 내어 줄기와 잎을 드리웠다.
“스님! 두릅은 언제 따요?”
“아직은 아니야”
“아직이예요?”
“좀 더 커야해”
시장에서 보는 사이즈 만큼 컸는데도, 스님은 아직 딸 때가 아니라 하셨다. 아직은 두릅향이 나지 않는다고, 아직 다 크지 않은 거라고. 두릅도 인간처럼 너무 어리면 아직 인생의 맛도 모르고 그저 부드럽기만 한데, 어느 정도 크면 세상의 굴곡을 겪으며 단단해지고 자기만의 맛과 향을 낸다고 다 크길 기다려 줘야한다고 하셨다. 미안, 두릅. 너무 섣불리 너의 인생을 꺾어버리려 했구나.
스님의 ok 사인이 떨어지자 마자 가지끝에 딱 하나 달린 두릅을 채취했다. 나무 가지 끝을 잡고 옆으로 뉘이면 ‘똑 우지끈’ 하며 두릅이 나무끝에서 떨어진다. 어떤 두릅은 경쾌한 똑 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떤 두릅은 나무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질기게 붙어있기도 했다. 어떤 두릅은 독하게 삐쭉한 가시를 올린 것도 있었고, 어떤 두릅은 매끈한 연둣빛 줄기를 자랑하기도 했고, 또 어떤 두릅은 성질 급하게 어떤 두릅보다 빨리 잎을 피워버리기도 했다.
가지각색의 두릅을 만났다. 두릅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다 된 밥에 뜸들일때 얹어 살짝 익혀 두릅밥으로 먹기도 했고, 데친 두릅을 죽죽 찢어 메밀전에 깔아 두릅전을 부치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최고는 잘 데쳐서 스님의 막장에 찍어 먹거나, 살짝 소금만 찍어 먹는 것! 달큰함이 입에 착 붙고, 겨우내 열심히 살아온 두릅의 향이 코로 흥 하고 빠져나온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지금부터. 오로지 한 나무 가지 끝에 달린 하나의 두릅을 꺾어 먹고 나면 그 나무는..?
두릅을 따고 난 자리를 또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두릅을 따고 난 자리에는 상처 난 자리를 아물게 하려고 그러는지 겔 같은 것이 다친 자리를 덮고 있었고, 옆으로 또 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정말 애쓰고 있구나’ 때를 놓쳐 따지 못한 두릅은 이제 날 어떻게 하지 못할거야 라는 듯 보란 듯이 줄기를 단단하게 하고 잎에도 독을 바짝 올려 난 이 세상을 살아냈다는 듯 당당하게 피어있었다.
‘스님! 두릅을 다 따고 나면 나무들은 어떻게 해요?’ 두릅을 따버리고 남은 자리는 싹둑 잘라 내년을 기약하고, 따고 난 자리 옆에 싹이 올라온 두릅도 이미 다 피어버린 두릅도 따지 않고 영양분을 잘 만들어 클 수 있도록 해준다고.
자연엔 다 때가 있다고. 가을이면 잎과 줄기에서 영양분을 거둬 땅속으로, 뿌리로 저장하고, 겨우내 그 영양분을 잘 가지고 있다가 봄이되면 그 영양분을 다시 열심히 생명을 틔우는데 올리는데, 우리가 조금이라도 늦게 채취해서 영양분을 다 올리고 난 두릅을 채취하면 그 두릅나무는 살아갈 영양분이 없어 이내 죽고만다고. 그래서 그 자연의 때를 잘 알고 생명의 때를 잘 알고 따야한다고.
하마터면 자연의 때, 생명의 때를 모르고 많은 두릅나무를 돌아가시게 할뻔했다. 문득 어릴 때 읽은 #아낌없이주는나무 가 생각났다. 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소년은 정말 이렇게 까지 나무를 털어가나? 야속하다. 아낌없이 주고 난 끝은 밑둥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두릅은 먹는 것이라는 생각에 두릅의 미래를 생각 못하고 다 따버릴 뻔 했다. 또 미안해 두릅아!
농가월령가4월령을 쓰다보니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뽕 따는 아이들아 훗날을 생각하여 고묵은 가지 찍고 햇잎은 남겨두고 따소’
자연과 함께하는 법. 그것부터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