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댁의 일본 食 여행
위치: 도쿄 유락초역에서 도보 5분 東京都中央区銀座2-2-6
영업시간: 11:00~20:00
아침부터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고, 너무 많이 봤고 지쳐있을 때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가본다는 유명한 그 '아코메야'는 가봐야지라는 일념하에 다시 한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큰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만약 처음 방문한 곳이 아코메야 였다면 놀랐을까? 일본 브랜드 특유의 방대한 정보, 그리고 그 정보의 리스트화, 분류화에 지칠대로 지쳤을 때 본 아코메야는 감흥이 없었다. 쌀 품종이 많은 것도 내가 처음 알았더라면 놀랐을 일이 었을지 모르겠지만, 익히 들어본 쌀품종들이 눈에 몇몇 띄었을 뿐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쌀 품종 골고루 모아 놓느라 고생했네! 재고는 어찌 처리하나?' 같은 너무도 현실적인 생각만 둥둥둥..
쌀에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 뭐하는 집이지? 싶었다. 육수, 반찬, 조미료까지 비슷한 디자인 패키지는 아코메야 기획 상품이겠고, 아닌건 소싱한 제품이겠는데... 응 여기 쌀집 이라지 않았나? 밥이랑 같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갔다놨네? 으.... 정신없어... 하루종일 일본의 다양성에 지쳤던 나에겐 정신없음으로 다가왔던 1층을 뒤로 하고 2층을 올라갔다.
지극히 사심가득히 둘러봤던 2층. 밥을 지을 도구들, 밥을 차릴 도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돌솥, 압력솥 부터 밥그릇, 반찬그릇, 물잔까지. 이렇게나 혹할 아이템이 많다니!!! 아차! 근데 여기 쌀집 아니었어? ㅡㅡ
내가 일본 쌀의 취향을 찾을 것도 아니고, 이미 반찬 같은 것은 많이 둘러봐 신박한 아이템은 보이지 않았고, 주방도구를 사자니 옆사람 김슨생의 눈치가 너무 보여 사지 못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아쉬웠던 아코메야의 팜플렛만 손에 들고 가게를 나왔다.
부암댁의 일본 食 여행 질문
1. 아코메야는 왜 만들어졌는가?
2. 아코메야는 어떻게 쌀을 풀어내고 있는가?
3. 아코메야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다른 식재료 전문샵과 다르게 쌀을 다뤘던 아코메야에 대해서는 워낙에 다른 분들이 여러모로 잘 정리해주신 자료들이 많기도 하고, 아코메야에 대한 이야기보다 쌀이야기를 조금 더 써보고 싶어 답을 빨리 마무리 짓고 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부암댁의 일본 食 여행, 그 답
1. 아코메야는 왜 만들어졌는가?
1972년 가구 수입회사로 주식회사 사자비(SAZABY) 시작. 생활잡화, 티룸, 패션 등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갔는데, 회사가 커지면서 복잡한 합병과 분할 등등을 겪다가 2011년 주식회사 사자비리그로 정리되었다. 한발 앞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겠다는 사자비리그는 그동안 해외의 제품을 다루다 '和' 일본의 것을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일본의 라이프에 중심에 있는 쌀을 주제로 하여 쌀 라이프 스타일 샵 '아코메야'를 2013년 오픈했다.
2. 아코메야는 어떻게 쌀을 풀어내고 있는가?
일본 전국에 있는 30여 종의 쌀을 취급하고 있고, 매장에 있는 쌀을 현미, 삼분도미, 오분도미, 칠분도미, 백미로 도정해 제공하기도 한다. 각 쌀의 특징, 밥 짓는 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밥과 함께 먹을 반찬, 국 의 재료와 조미료 뿐만 아니라 밥을 지을 도구, 차릴도구, 함께 할 도구 모든 것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술, 차 등 쌀을 활용한 제품들을 내기도 하고, 아코메야 제품을 내는 식당, 도시락집 등의 공간을 함께 구성하기도 한다. 아코메야는 각 지점마다 컨셉이 있어 각 컨셉마다의 '쌀 라이프'를 즐겨볼 수 있다고. (난 잘 모르겠다. 그냥 아코메야는 뭐가 많다...)
3. 아코메야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쌀 라이프'가 너~~~~무 광활하고 광대하도다. 아코메야가 다루는 제품수만 3,000-4,000개라니 말 다했지뭐.
난 밥을 싫어했다. 분명 맹맹한 맛인데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난다길래 오래 씹으며 미묘한 단맛을 느끼려 했다. 그마저도 반찬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단맛은 날라갔다. 어릴 땐 차가 움직이려면 기름이 필요하듯 사람이 움직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따갑게 들으며 수저에 밥을 떠 우적우적 떠밀었다. 조금 크고는 다이어트의 적은 밥이라며 밥을 멀리할 명분이 생겼다. 밥 두세수저면 끝날 양에 찌개다 생선이다 고기다 한상차림을 먹어도 밥이 아쉽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밥에 눈을 뜬건 일본에서. '아니! 밥이 맛있던 거였어?' 돈까스를 한입 베어 물고 윤기 좌르르한 밥을 한입 가득 넣고 씹는 맛는 어떠며, 규동이든 텐동이든 카이센동이든 밑에 깔려 있는 밥과 함께 먹어야만 더 맛좋은 것은 또 어떻고. 흰밥에 낫또를 올리든 김을 올리든 맛있는 밥향과 함께 입안에서 적당히 밥알이 돌다 이에 잘 얽혀 단맛과 고소한 맛이 올라오는 것이. 살찌는 것이 잊어지는 맛이었다. (그래서 살쪘다.)
일본 여행하면서 어쩌다가 먹은 밥이 하필이면 까다로운 주인이 고르고 고른 쌀로 만든 밥이어서 맛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일본에 살면서 싸디싼 돈키호테에서 무심코 있는 코시히카리를 사들고 와서, 3천엔 주고 중고샵에서 산 전기밥솥에 한 밥이 왜 맛있는 거냐고!
밥보단 면과 빵이었던 내가 이제는 밥을 찾는다. 밥의 단맛과 고소한맛 그리고 밥의 전분이 국물과 어울러져 걸죽해진 맛을 고집한다. 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맛있는 쌀을 찾는다. 내 입안에 적당히 돌아다니는 밥알의 사이즈, 이에 붙는 찰기, 잘 익은 밥의 향, 단맛과 고소한맛이 적절히 어우러진 밥의 맛을 낼 수 있는 쌀을 찾는다. 토종쌀도 찾아보고, 품종 개량되었다는 비싼 쌀도 사본다. 돌솥에도 밥을 해보고, 전기압력밥솥에도 밥을 해본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일본에서 '막' 먹을 수 있었던 그 맛있던 밥 맛에 가까운 쌀은 찾지 못했다.
먹는 것에는 상당히 공을 들이는 편인 일본인들이지만, 특히 밥으로 만드는 음식을 애정하는 것 같다. 오니기리, 스시, 돈부리, 솥밥, 볶음밥까지... 이걸 이렇게까지나 해서 만든다고? 분명 일반 가정과 맛을 추구하는 프로 집단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쨌든 정보는 어디까지 만들어져 공유되고 있는지를 보면 얼마나 즐기는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먼저 일본자료에 어떤 밥을 맛있는 밥이라 하는지(맛), 다음은 밥은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는지 (조리), 어떤 쌀로 지은 밥이 맛있는지(품종), 다음은 어떻게 지은 쌀이 맛있는 밥이 되는지(생산)를 한번 찾아보았다.
일본은 어떤 밥을 맛있는 밥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은 매해 일본곡물검정협회에서 각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20명의 전문가들이 외관, 향, 맛, 찰기, 단단한 정도를 보고 등급을 매겨 순위를 발표한다. 이 20명의 전문가들은 쌀 마이스터, 쌀 소믈리에, 쌀 어드바이저 등 각 협회에서 발행한 자격을 갖추거나, 쌀의 생산 유통 등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로 구성한다고 한다. 각 전문가들은 각 항목의 쌀의 특징을 종합하고, 최근 찰기와 감칠맛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반영하여 순위를 매긴다.
맛있는 쌀이란?
* 윤기가 있다. (투명감이 있고 하얗지 않다), 수분감이 적당하다
* 밥알이 둥글고 표면이 매끈하다.
* 냄새를 맡으면 밥 특유의 향이 있다.
* 입안에 넣으면 담백한 단맛이 퍼지고 감칠맛이 감돈다.
* 찰기가 있어서 밥알이 서로 붙어있다. 적당히 부드럽고 입안에서 풀어진다.
* 밥 이외의 다른 맛과 향이 안난다.
* 퍼석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먹어도 입에 걸리는 것이 없다.
* 밥이 식어도 밥 맛이 크게 변화가 없다
등을 맛있는 쌀이라고 한다는 공통적인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일본은 어떻게 지은 밥을 맛있는 밥이라고 하는 걸까? 밥짓는 것은 한 20% 맛을 좌우 하려나? 그래도 실제로 밥하는 사람들은 제일 고민이 어떻게 하면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을까? 이다. 쌀은 동일하다고 한다면 우선 씻는 물은 어떤물을 써야하는지, 어떻게 쌀을 씻어야 하는지, 도구마다 어떻게 밥을 지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한 사이트 들이 많다. 참 친절하군 그래. 뭐 정답이랄 것은 없겠지만, 왜 그렇게 해야하는 건지 이유가 있으니 나같은 청개구리도 이내 납득하고 그 방법을 따르게 된다.
밥을 잘 지으려면?
* 물은 수돗물(염소성분 함유)이 아닌 정수물을 쓰고,
미네랄이 밥의 향을 살려주지 못하니 미네랄이 적은 난수를 쓴다.
* 물의 양이 중요하니 되도록 계랑을 해서 짓도록한다.
* 천천히 씻으면 쌀겨 냄새를 쌀이 흡수 하므로, 첫물은 재빠르게 씻어 버린다.
* 쌀을 씻을 때는 쌀알이 부서지지 않게 적당한 힘을 주고,
쌀끼리 마찰이 필요하므로 많은 물을 붓지 않고 씻도록 한다.
* 도구에 맞게 밥을 짓는다.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가장 자세하게 써놓은 사이트가 있어서 소개해본다.
<출처> 시로이고항닷컴 白ごはん.com
물 고르는 법 https://www.sirogohan.com/recipe/suihan-mizu/
쌀 씻는 법 https://www.sirogohan.com/recipe/suihan-togu/
냄비밥 짓는법 https://www.sirogohan.com/recipe/yukihira/
전기밥솥 짓는법 https://www.sirogohan.com/recipe/suihan-taku/
돌솥밥 짓는법 https://www.sirogohan.com/recipe/donabegohan/
현미밥 짓는법 https://www.sirogohan.com/recipe/genmai/
이런 미묘한 차이까지 말을 하고 있지만, 글쎄 이렇게까지 안해도 대충 씻은 쌀에 싸디싼 밥솥도 밥이 맛있었다. 아니 이것을 지켜서 밥을 했다면 더 맛있었을까? 어쨌든 물을 고르는 법이든, 쌀을 씻는 법이든 방법을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어 좋았다. 한국은 백종원이 나오거나 아니면 제품 선전일 경우가 많은데, 정말 '밥짓는 법'만 알 수 있어 좋았다.
어떤 품종이 맛있는 품종일까? 일본에 가면 어딜가든 코시히카리이다. 찾아보니 일본인들의 취향에 쌀알크기, 윤택, 단맛, 찰기 정도가 코시히카리라고. 현재 쌀 생산량의 30%정도를 코시히카리 품종이 차지 하고 있고, 생산량 상위 10위권 품종들이 코시히카리 계라고 한다. 품종 개량도 코시히카리를 기준으로 파생되어 이루어 지고있고. 하지만 산지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져 코시히카리면 맛있다! 라고 할 수도 없다고 한다. 결국 품종 이전에 어떤 기후에서 어떻게 지었느냐도 크게 중요하다는 이야기. 어떤 품종이 맛있다라는 정답이 있다기보다, 내 취향을 파악하여 내 취향에 맞는 품종을 찾기를 권하고 있다.
어떻게 지은 쌀이 맛있는 밥이 되는걸까? 결국 '맛'은 '농사'로 연결된다. 맛있는 쌀이 맛있는 밥이 되는 당연한 사실. 그런데 맛있는 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너무도 당연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해보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상 조건'이 가장 크다. 온도, 습도, 일조량 등에 의해서 생산량 뿐만 아니라 맛도 좌지 우지 된다. 자연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맛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재배법이나 비료, 농약 등 관리 같은 것부터 적당한 시기의 수확, 충분한 건조, 조건에 맞는 저장이 있다고. 문제는 자연의 힘 이외의 부분에서는 너무 인간은 고달프고 힘든데, 또 희안한건 인간이 고달프고 힘들수록.. 그러니까 관리에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쌀의 맛은 더 좋아진다는 사실.
내용 참고 출처
https://business.nikkei.com/atcl/report/15/252376/012100030
https://www.fukuimai.com/sub71.htm
일본 밥이 맛있는 이유에 대해서 찾다가 문득 '밥의 맛을 좋게 하고 싶은 몇몇 사람의 의지만으로 밥 맛이 좋아질 수 있는 것일까? 이 것은 개개인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싶어져 일본의 쌀 정책에 대해서 간략히 찾아보았다.
일본은 전쟁 때 식량 보급을 위해 쌀 농사를 권장했고, 그렇게 지은 쌀을 나라가 사들여 식량을 관리했다(식관리제). 그러다 1960년 후반 식사의 서구화로 사람들은 쌀을 먹지 않기 시작했고 (1인당 연간 쌀소비 118 kg(1962) -> 56kg (2012)), 농업은 기계화 품종개량등을 통해 점점 생산량은 늘어, 쌀이 점점 남기 시작했다. 남은 쌀을 다 사들이기가 슬슬 정부의 부담이 되, 1970년부터는 생산량 조정을 위해 減反정책을 실시 했다. 減反이란 쌀 경작지를 줄인다는 것. 논을 쉬게 하거나, 논에 밭작물을 키운다거나, 논의 생산량을 줄인분 만큼에 대해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펼쳐나갔다. 그러다 1993년 큰 흉년이와 더이상 나라에서 식량을 관리한다고 실효가 있지 않다고 판단 1995년 전쟁때부터 실시했던 식관리제도를 폐지했다. 그 이후로 쌀이 수입되고, 쌀 수입 관세가 없어지고 하면서 경쟁력없는 국내산(일본) 쌀 때문에 농가들은 고민이 많아졌다. 게다가 2009년부터 減反정책으로 지급했던 보조금도 減反폐지로 더이상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났다. (2018년 완전 폐지가 되었다). 정부의 관리 아래 수입쌀 앞에서 경쟁력 없는 쌀이 되어 농가들은 고민을 많이 했고, 그 고민으로 쌀의 품종개량, 재배관리, 쌀의 브랜드화에 힘을 쏟았다. 그러한 노력이 맛있는 쌀, 맛있는 밥으로 결실이 맺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http://www.highschooltimes.jp/sp/detail_report98.html
지금까지 간장, 소금, 된장 그 자체만을 다루는 정말 식재료 전문샵이었다면, 아코메야는 식재료 전문샵이라기보다는 식재료 라이프 샵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신선했다. 하지만 너무 광대한 분야는 신기하면서도 질리는 부분이 있었고, 뭐랄까 전문적이라는 느낌보다는 패셔너블 하다랄까. 깊이가 없어서 아쉬웠던 한편으로 식재료를 다루는데 꼭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 패셔너블 해야 사람들이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 쌀 참 맛있다 했는데, 찾아보니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있었다. 일본밥이 최고이고 한국밥은 아니다, 한국은 노력하지 않고 일본만 노력하고 있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기나긴 식민시대와 6.25전쟁 그리고 정신없는 돌풍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너무도 많이 잃어버렸고, 그저 일본이 조금 빨리 시작했을 뿐이다 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대로 앞을 잘 헤짚어가면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쌀을 맛있게 먹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쌀에 대해 맛을 감각해보는 워크샵, 토종쌀을 둘러볼 수 있는 전시, 직접 쌀을 골라 도정해 먹을 수 있는 정미소도 있고, 쌀을 브랜딩 하는데 그 감각 또한 기발하다. 뿐만 아니라 이젠 마트에서도 내 취향에 맞는 쌀을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쌀을 놔두고 있고, 또 기능성 쌀과 쌀 가공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어 우리의 노력도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난 지금 쌀이 왜 먹고 있나 하면 단순하게 '맛있어서'다. 나이의 문제인지 아니면 정말 쌀 맛이 좋아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밥을 지어야 비로소 식사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현미면 조선향미, 흰쌀이면 한살림 백미로 밥을 짓는다. 보들보들 조심히 씻어서 솥에 밥을 앉힌다. 끓기 시작하면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에 한번 반하고, 뚜껑을 열어 예쁘게 앉아 윤기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또 한번 반한다. 제철에 나는 재료들로 솥밥을 해서 먹어도 좋고, 흰밥에 맛난 반찬들과 얼큰한 찌개가 어우러져도 좋다. 아무래도 막걸리로 먹는게 제일 좋은지도. 허기졌을 때 따뜻하게 속을 채워주고, 입맛없을 때 푹 끓여 죽으로 만들어 훌렁훌렁 먹기도 좋고, 쌀을 '잘' 먹게 된 후로 생활이 한층 풍요로워 졌다.
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서 다행이다 싶다. 전에는 엄마가 보내주거나 시댁에서 받거나 맛있다더라 하는 쌀을 사서 먹었다. 쌀에 한번도 신경을 써본적이 없는 내가 인식을 달리 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 SBS '폼나게 먹자' 토종쌀편부터. 한국엔 1400여종의 품종이 있었고, 벼들이 조선 들녘을 색색들이 물들였다고. 그리고 주막마다 마을마을마다 술의 맛이 달랐다는 이야기. 그 후로 토종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쌀을 사서 먹어도보고 전시나 워크샵도 참석했다. 되도록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 토종이 좋은 것이여 하고 싶은데, 먹다보니 입안에서 겉돌기도 하고 밥알이 너무 크기도 하고... 진짜 이것을 밥으로 먹었다고? 하는 물음이 생겼다. 그러다 '한국에 이렇게 쌀 품종이 많았던 것은 쌀마다 밥용, 술용, 식초용, 떡용이 있어서였다'는 글을 보고 쌀을 밥으로만 생각했던 내 인식에 변화가 일었다. 그래 내가 먹었던것은 밥용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 우리나라만 볼게 아니라 해외도 볼 수 있겠구나. 리조또, 아란치니, 필라프, 끝도 없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쌀을 공부해봐야겠구나 싶었다. 아직은 밥용 쌀도 겨우 골라 먹고 있는 중이지만, 차차 술도 식초도 떡도 리보또도 쌀을 골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쌀을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쌀 라이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