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하며 생각하기 8
장을 6년했던 이야기에 이어 음식하며 생각하기를 발효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4. 잘 발효한 맛을 알아야 한다.
발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발효한 맛을 아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박광희 선생님께 김치를 배우러 갔을 때 그중에 나에게 유독 마음에 꽂혔던 문장. ‘잘 발효한 맛을 알아야해!’☝️한국은 발효 종주국이라고 하지만, 사실 잘 발효한 맛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발효한 척 하는 수많은 ‘무늬만 발효음식‘이 너무 많다. ‘맛있다‘에 다 뭉뚱그려져서, 맛있다와 잘 발효되었다를 구분 못한다.
잘 발효한 맛을 사람에 비유한다면…자연미인이랄까. 치장하지 않아도 흰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내면에서 품어나오는 아름다움에 모두가 눈길을 주듯, 잘 발효한 맛은 재료의 맛이 양념에 지지 않고 피어나며, 깊고 질리지 않는 맛에 먹어도 자꾸 먹고 싶다. 잘 익은 김치는 양념이 적당하여 시원하며, 잘 익은 술은 쌀이 가진 꽃향과 과일향이 나면서 오미가 균형을 이루고, 잘 익은 장은 은은한 감칠맛과 깊은맛으로 여운이 길다.
잘 발효안 된 맛은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 브랜드 옷만 걸치거나, 본판 분명 괜찮았는데 성형을 잔뜩해서 성괴가 되었거나, 겉모습이 매력적이라 무심코 다가가 이야기 했는데 의외로 깊이가 없어 점점 만남이 아쉬워지는 사람이랄까. 양념이 어울리지 않는데 비싼양념 치덕치덕 발라 익어지지도 않은 김치나, 아주 잘 키운 쌀이었는데 입국, 효모, 효소, 감미료, 첨가제를 넣어 쌀 자체가 사라진 술이나, 맑고 진득한 색인데 먹어보면 깊은 맛이 없고 단조로운 감칠맛만 강력하게 치고 가는 장같이..�
그런데 요즘은 자연미인같은 잘 발효한 맛보다는 개성이라면서 꾸미고 또 꾸민 무늬만 발효인 발효음식들이 세상을 가득채웠다. 말세다.�♀️ 사람이든 발효든 다양해야하고 존중받아야한다. 그런데… 그건 기본을 지킨다음에 있는 건 아닐까. 사람도리 하고 난다음에, 온갖 발효 방법도 발효의 기본도리를 지키고 난다음에…
아름다운건, 오래가는건 기본을 지킨 위에 있으니까.�
16. 내 행위에 취하지 말자. 내 감각을 속이지 말자.
발효음식을 하다보면, 그 자체만으로 큰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사실, 김치, 장, 술은 삶인데.. 당연히 했었던 일들을 누군가가 대신해줘서 안하다보니 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하는 느낌이다. � 게다가 어렵고 힘든 이미지. 맞다. 발효는 어렵고 힘들다.
심플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다.
장은 메주, 소금, 물 끝. 술은 쌀, 누룩, 물 끝. 김치의 기본은 담을재료, 소금, 물. 거기에 향신야채를 취향대로 양념을 만들어 넣는 정도. 이 모든 과정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면, 다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데 이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알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지겨운 그 과정에 질리기도 하고, 먹는거에 뭐 이렇게 힘써야해 싶기도 하고, 또 좀 익숙해졌다고..조금 게을러 지면 나중에 맛으로 마주했을때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쉽게 하고 싶어서 대충하고, 알려하지 않고, 힘쓰기 싫어서 꾀를 부리고 핑계를 대고, 내 게으름이 보이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쓰기도 한다.
콩이 제대로 안쪄져서 메주가 잘 안뜬건데 전기장판 탓을 하고, 누룩법제가 잘 안된건데 자꾸 항아리 소독 탓을 하고, 김치는 발효가 잘되면 알아서 시원하고 달큰하고 톡소는 맛이 되는데 사이다를 넣고, 술은 쌀이 발효되면 다 포도향 딸기향이 나는데 딸기향 포도향을 첨가한다.�♀️
정성.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된 정성은 의미없다. 그냥… 맛이 불편하다. 정성은 더 많이 하고 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이해해서 딱 알맞을 만큼 하는 것이가. 더 맛있게 하려고 아무리 머리를 써봐도 더 쉽게 하려고 용을 써봤는데 결국 심플을 딥하게 익히는 것이 제일 쉽고 빠른 길이다.
뚜렷하게 마주하고, 정성의 방향을 잘 잡았을때, 꽤부리지 않고, 핑계대지 말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심플을 잘 이해하고 그저 행할때, 발효는 맑고 깊고 여운이 긴 맛으로 답한다. 분.명.히!
2024.11.15
1. 설탕을 쓰지 않는다.
2. 가공식품은 지양한다.
3. 식재료는 적어도 한살림과 생협, 마르쉐, 농부님 직거래 혹은 오일장이나 로컬푸드를 이용한다.
4. 잘 발효한 맛을 알아야한다.
5. 양념의 적당량에 대해서 생각해야한다.
6. 마늘은 과한 존재이지만 필요한 존재이다.
7. 우리는 참기름이 아니라 들기름의 민족이다.
8. 유기농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기농이 아니다.
9. 제철은 당연한 것이다.
10. 조리에 너무 과한 불을 쓰고 있다.
11. 요리를 너무 힘들여서도, 너무 대충해서도 안된다.
12. 가니쉬는 데코가 아니다 음식에서 의미가 있어야 한다.
13. 페스토, 후무스는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다.
13. 그 음식을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14. 효율적인 것이 전통이 되었다.
15. 내 행위에 취하지 말자. 내 감각을 속이지 말자.
16. 소금과 재료를 넣는 타이밍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