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밥 찌기
술을 빚어 제낄 계절인데 날씨가 영 훈훈하여 술 빚을 생각을 못하다 오늘에서야 겨우 첫 삽을 떴다. 우야뜬 고두밥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올해 첫 고두밥을 찌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급하게 주절주절 적어본다.
보통 술을 처음 시작하면 초심자의 운으로 처음엔 어찌어찌 그럴듯한 술이 만들어지면서 고두밥이 어렵다는 생각을 못하는데, 몇번 빚다보면 ‘고두밥 찌는 것이 어렵구나’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나도 아직 헤어나가지 못했다�
1. 쌀 씻기
고문헌엔 백세하라고 적혀 있다한다. 누구는 예전엔 도정상태가 안좋아서 그랬던거라 지금은 그럴 필요없다 하고 누구는 세상 조심스럽게 백세를 해야한다고 한다. 난 고두밥을 짓든 밥을 짓든 쌀은 깨끗하게 씻는다. 깨끗하게 씻으면 맛이 깔끔해진다.
2. 쌀 불리기
어느 온도에서 얼마나 불리느냐인데. 온도는 기본 실온으로 하고 찹쌀기가 많으면 반나절 멥쌀기가 많으면 만하루 이상은 불리는데, 그것도 꼭 정한건 아니다. 잘 불릴 수록 잘 익는데, 너무 불리면 겉면이 탱글해지지 않는다. 불리는 것이 익히는 것만에만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불리는시간을 조정하며 빚는 것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3. 쌀 찌기
1) 찜기 선택
난 그냥 엄마가 사준 찜기가 있어서 휘슬러 스텐 찜기로 한다. 찜기의 사이즈와 재질이 영향을 주겠다. 찜기 사이즈는 높이가 낮고 넓으면 빨리 익을 테지만 찜쪄지기 보다 마를 수 있다. 밑물 냄비 재질에 따라 열전도율이 달라 금방 끓어오르거나 늦게 끓어오를 수 있고, 윗 찜기 재질에 따라 찜기가 증기를 머금는 정도가 달라지겠다.
2) 아래 냄비에 물 넣는 양
전통주 연구소에서는 넣는 물양도 알려주긴 했는데, 아래 물 양은 냄비에 따라 찔 쌀 양에 따라 다르겠다. 물이 많으면 증기에 습이 많아 무르게 쪄지고, 물이 적으면 증기의 양도 적어 좀 마르는 느낌이다. 난 1/3 정도 넣고 찌고, 찌고나면 1/5 정도 물이 남게 한다.
3) 물이 끓어오르고 쌀을 얹는다? 처음부터 넣는다?
난 처음부터 넣는 쪽이 맞다고 생각한다. 쎈 증기가 바로 닿으면 머금은 수분이 갑자기 팽창해서 쌀겉이 더 갈라진다고 느껴졌다.
4) 물이 끓어오르고 윗뚜껑이 뜨거워지면 불을 약불로 줄인다.
저번에 쌀,밥을 하면서 쌀의 익힘을 생각하다 고두밥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도 처음 물이 끓어오르기까지 너무 짧아도(불이 쎘다) 너무 길어도(불이 약했다) 안된다. 충분히 끓어야 익고, 너무 불이 약하면 익지 않는다. 증기가 윗뚜껑에 아슬아슬 닿는 정도의 약불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과하면 윗뚜껑에 이슬만 잔뜩 맺힐뿐…
5) 약불로 줄이고…*분뒤에 불을 끈다.
몇분뒤에 불을 꺼야 할지 모르겠다. 전엔 20분이었던 것 같은데 또 어디는 40분 60분도 말한다. 밥을 할때 생각하면 15분을 넘어가면 윗쌀이 마르기에 20분도 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자료중에 15분찌면 전분은 익고 그 이후부턴 단백질 변성이 된다는 것도 있긴 했다. 오늘 해봤을때 20분도 아슬아슬 했다�
6) 살수? 뜸들이기
전에 배울때 아주 차디찬 계량된 양의 물을 살수하고 뜨겁게 불을 올려 뜸들인다고 배웠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살수가 되려 쌀이 충분히 잘 익혀지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을 잘 써서 쌀이 머금은 물로 충분히 익힐 수는 없을까? 고민해본다. 뜸은 위아래 온도차가 어느 정도 자리잡는데 10분정도 생각한다. 이것도 너무 오래 방치하면 떡짐.
4. 쌀 식히기
급하게 쌀을 식힌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키거나 바람을 불진 않는다. 공간이 건조하거나 쌀이 너무 건조하게 쪄지면 식히다가 노화하기도 한다. 마르는게 아니라 식히는 것이 포인트라고 본다.
고두밥은 겉은 단단하고 안은 말랑하게 쪄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균들이 어렵게 전분를 분해해야 알콜이 높고 색도 투명하게 된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머리로는 아는데,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보면 매번 다르다.� 뭐 고두밥을 무르게 쪘다고 술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율이나 알콜, 향을 생각하면 고두밥을 잘쪄야 한다�
처음에는 몇도 몇분 얼마나에 목숨걸었는데, 하다보니 정확히 한다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다. 시간, 온도의 숫자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향, 김의 뜨거움, 맛의 달달함 같이 몸의 감각으로 기억해 내야한다. 아직도 잘찐 고두밥이 궁금하다�
202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