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지났지만, 전(煎)에 대하여
올해도 어김없이 전을 부쳤다. 아무생각없이 부쳐온 전인생 30년. 학교들어가고부터는 명절엔 늘 밀가루톡톡 달걀물 퐁당을 해왔다. 어릴(친정)땐 밀가루를 두껍게 했다는 둥, 계란물 골고루 곱게 해야한다는 둥 잔소리에 머리가 아팠지만, 지금(시댁)은 좀 대충하라고, 빨리 좀 하라는 눈치에 정신이 없다.� 올해는 나하고 싶은대로 하겠노라고 말씀을 드려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찬찬히 혼자 부치는데, 와! 전 무어냐! 이 깊은 요리는!
전은 꼭 바삭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불도 적당히 올려서 부쳤다. 겉바속촉 맛있지! 하면서 먹었는데, 절에서 먹은 개똥숙전의 촉촉하고 쫀득함에 ‘전이 꼭 바삭할 필요는 없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부치던 전의 조리맥락을 벗어났더니… 전을 못부치게 되었다. �
겉면의 바삭함과 속의 부드러움 그 어딘가에서 재료의 수분감과 기름의 양과 조리도구의 온도를 어떻게 조절해야하는 모르게 된 것… 전.. 이렇게 어려울 일이냐�
전에 대해 생각해보자! 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가루반죽을 쓰는 전과 밀가루와 계란물에 무쳐 부쳐내는 전. 각각 디테일을 이야기 하자면 또 길어지니까, 공통적인 것을 이야기 해본다면…
우선 부칠 메인 재료의 수분을 최대한 줄일 것. 이 두 버젼모두 재료에서 물이 많이 나오는 순간 겉이 질척여진다. 그래서 되도록 재료는 물이 많이 안나오게 할것. 고기류는 소금간을 해 수분을 빼고, 야채는 수분감이 없는 것을 선택하거나(연근, 당근) 한번 익혀부치거나(배추,무) 아니면..고온에서 부쳐 수분을 빨리 날리거나.. 하지만 또 섞어 하는 전은 밀가루도 익어야 해서 고온으로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재료를 여러가지 넣고 반죽에 섞어 부치는 전이 생각보다 어렵다.
기름은.. 발연점이 어떻고 이야기 하는데, 난 연기가 날 정도로 온도를 올리지 않기때문에 발연점 보다도 산패가 되지 않은 기름인지 확인하고 음식과 어울릴 향을 가진 기름을 선택한다. 현미유가 달아서 현미유를 선택하는 일이 많지만… 명절 전부칠땐 선택권이 없음으로 까놀라유. 하지만 확실히 기름에 따라 부쳐지는 결과물이 다르다. 정제될수록 쓰기가 편하긴 함�
밀가루..는 통밀가루를 쓰면 통밀 특유의 깊고 구수한 맛이 있긴 한데, 백밀가루가 재료의 맛을 더 선명히 보여주는 것 같다. 또 통밀가루는 수분을 머금으면서 모양을 잘 못잡는데 백밀가루는 수분을 잘 뱉어내고 모양도 잘 잡혀서 쓰기가 편하다. 반죽에서 밀가루와 물의 비율은 물이 적을수록 부치기는 쉽지만 밀가루가 빡빡하고, 물이 많을 수록 그만큼 수분을 날려야 해서 오래 부쳐야하고 모양잡기가 어렵다. 가루반죽을 할때는 찬물에 하고 오래 휘젓지 않아야 바삭하다고 하는데, 그런 디테일은 맞추기 힘들기에 기름을 잘 달궈 올리는 것에 좀 더 신경쓴다.
조리도구는 바삭하게 하고 싶을때는 온도가 많이 올라가는 철팬이나 스텐팬을 쓰고, 잘 지져 부치고 싶을때는 주물팬을 쓴다. 근데 그것보다도 팬을 잘 달구고 기름을 잘 달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봄�특히 빨리 부치고 싶다고 재료를 한꺼번에 많이 올리면 팬의 온도가 너무 떨어지고, 재료의 수분때문에 찜쪄지면서 질척해지므로 적당한 양을 올려야 하는 것도 포인트.
전을 명절마다 부쳤지만, 아무생각 없이 부쳤다. 머리로는…재료의 수분과 반죽물의 수분이 조리도구로 전달된 기름의 온도로 얼마간의 시간동안 증발하느냐에 따라 재료의 맛과 겉의 바삭 혹은 촉촉함이 결정됨을 알겠지만 이걸 어떻게 계산해서 함?� 그저 많이 부쳐가며 감각으로 익히는 수밖에… � 추석엔.. 좀 잘 부칠 수 있겠지…?�
2024.2.11